헤이데이를 읽는 당신이라면, 스트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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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프 티셔츠는 그 어떤 마법보다, 그 어떤 성형 시술보다 입은 사람을 어려 보이게 만든다. 줄무늬엔 경쾌함, 자유 그리고 열린 마음 같은 젊음의 DNA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얼마나 많은 스타들이, 지성인들이, 예술가들이 그리고 문학가들이 스트라이프 티를 자신의 시그너처로 삼았는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만약 젊은이들과 교감하고 싶다면 백 마디 훈화보다 스트라이프 티 한 번 입어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란 걸 명심하자.

 

스트라이프의 흑역사


트렌치코트가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로 험프리 보가트를 꼽는다면, 스트라이프 티를 가장 쿨하게 소화해낸 배우는 영화 <빠삐용>의 스티브 맥퀸일 것이다. 그렇다! 탈옥 영화의 주요 모티프로 나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블랙&화이트의 줄무늬 조합은 원래 죄수복의 패턴이었다. 왜 죄수에게 줄무늬 옷을 입혔을까? 이는 눈에 잘 띈다는 현실적 이유 말고도, 역사적으로 줄무늬가 악마의 패턴으로 사용되던 유러피언의 관점에서 찾을 수 있다. 중세에는 줄무늬가 시선을 혼동시키고 그래서 악마를 상징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영화 속 스트라이프


영화 <슬픔이여 안녕>의 진 세버그는 스트라이프를 가장 멋지게 소화해낸 여배우다. 그녀는 영화 <네 멋대로 해라>에서도 다양한 스트라이프를 주구장창 입고 나온다. <코코 샤넬>에서 샤넬을 연기한 오드리 토투는 이젠 우리에게 너무 친숙해진 브랜드 세인트 제임스를, 프렌치 시크의 아이콘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귀여운 반항아>에서 오르치발의 티셔츠를 입고 나온다.

 

스트라이프를 사랑한 디자이너와 셀러브리티
 

앤디 워홀(사진)


앤디 워홀, 헤밍웨이 같은 예술가부터 제임스 딘, 메릴린 먼로, 오드리 헵번처럼 희대의 아이콘들이 스트라이프에 열광했다. 그중 누가 뭐래도 스트라이프에 애정이 각별했던 유명 인사는 파블로 피카소일 것이다.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지 않으면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한다”는 그의 말을 반증이라도 하듯 사진 속의 그는 항상 세인트 제임스의 티셔츠와 함께하고 있다. 스트라이프를 하이패션에 처음 접목한 디자이너는 그 이름도 유명한 코코 샤넬이다. 1917년 샤넬은 세인트 제임스의 스트라이프 티에서 영감을 받은 노티컬 패션을 매치해 컬렉션을 발표한다. 최고의 트렌드세터이자 샤넬이라는 브랜드를 가장 잘 소화한 훌륭한 모델이기도 했던 샤넬이 프랑스 남부 생트로페를 활보하자 이때부터 스트라이프 패턴은 부유층의 여름 휴양지 스타일로 각광받는다. 당시 그녀가 매치했던 플레어 팬츠와 스트라이프 티의 조합은 여전히 최고의 스트라이프 티셔츠 코디네이션으로 남아 있다. 스트라이프와 인연이 깊은 또 한 명의 디자이너로 장 폴 고티에가 있다. 1976년 세일러복과 스트라이프에서 영감받은 세련된 파리지엔으로 자신의 등급을 한 단계 높였다. 스트라이프 티셔츠는 장 폴 고티에의 시그너처 룩으로 그가 영화 의상을 맡은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의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나 뤽 베송의 <제5 원소>를 보면 이 귀여운 악동이 얼마나 줄무늬 마니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스트라이프가 프렌치 시크의 대명사이긴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얼마든지 멋진 스트라이프를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영국의 폴 스미스는 가장 유쾌한 줄무늬를 세상에 내놓은 디자이너일 것이다. 그는 완벽한 핏을 자랑하는 슈트 안쪽에 현란한 형광색 멀티 스트라이프를 숨겨놓았다. ‘DEFINITIVE STRIPE’라 불리는 폴 스미스의 스트라이프는 근엄한 영국인 표정 속에 숨겨진 위트를 가장 잘 상징한다. 일본의 해체주의자이자 미니멀리스트였던 레이 가와쿠보는 꼼데가르송 플레이에선 사랑스러운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자주 선보인다. 그 밖에 스트라이프를 브랜드 로고로 활용하는 디자이너들이 꽤 된다. 벽돌색과 짙은 그린의 조합으로 이뤄진 구찌의 삼색줄은 말을 타는 기수들의 줄무늬 패턴에서 비롯되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김수현이 극 중에서 입었던 톰 브라운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삼색 심볼을 보여줌으로써 묘하게 남자들의 ‘허세’를 자극한다.

 

해군의 제복, 스트라이프

장 폴 고티에(사진)


브레톤 스트라이프(2도 배색의 스트라이프)는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승리한 횟수인 21개의 줄무늬로 이뤄진 티셔츠인데 1858년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해군 유니폼으로 지정된 뒤, 전 프랑스 해군의 공식 유니폼으로 지정되었다. 매우 실용적인 이유에서였다. 바다에 빠졌을 때 줄무늬가 파도 속에서 잘 보였기 때문이다.

 

바로 당신이었으면!

여기서 언급된 스트라이프를 사랑한 유명 인사들의 리스트를 보라. 평범함을 거부한 이들이 클래식의 대명사인 줄무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여름엔 이런 옷차림을 한 중년-깡총한 실루엣 가운데 어디선가 발견되는 삼색선이 위트 넘치는 톰 브라운의 재킷을 입은 중년의 남성을, 바짓단을 대충 접고 칠부 소매의 바스크(basque) 티셔츠를 커플룩으로 입은 채 석양의 해변을 걷는 중년의 커플- 을 잡지 속에서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만나보고 싶다. <헤이데이>를 읽는 당신이라면 또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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