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재취업 - 취미로 시작해 전문가가 된 사람들

기사 요약글

한 발 한 발 멈추지 않고 꾸준히 정진해 전문가가 된 사람들.

기사 내용

50대의 나이에 뒤늦게 취미생활을 시작해 전문가가 된 사람들. 그림 전시회를 연 이시형 박사, 수제 기타의 장인 최동수 씨, 관광 자격증 3관왕 이호균 씨, 과하주를 복원해 낸 한현희 씨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 가지다. 목표를 갖고 뭔가를 이루려고 했다기보다 그저 한 발 한 발 멈추지 않고 꾸준히 정진했다는 사실이다. 헤이데이에서는 취미로 시작해 전문가가 된 4인의 노하우를 듣고, 그들이 일러준 몇 가지 팁을 함께 전한다.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 뒤늦게 배운 문인화로 전시회를 열다

국민학교 시절, 미술 시간에는 늘 열외. 친구들이 그림을 그리는 교실을 돌아다니며 장난에 열중하던 아이가 자라서 여든의 나이에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 아이가 바로 정신과 의사인 이시형 박사다.

 

이시형 박사의 작품, 작업실(사진)

 

흙 속에 묻힌 진주를 발견하기까지

“작년에 여든이 된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일들이 떠올랐어요. 모든 일들이 참 어려웠지만 대부분 다 이루어졌지요. 그래서 이번엔 내가 가장 못하는 것을 한 번 해보자고 결심하게 됐죠. 그게 그림이었어요.”

그는 즉시 주변의 지인들 중 ‘초등학교 때 한 번도 뒷벽에 그림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을 모았다. 20명 정도 되었다. 이왕이면 좋은 분께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안성 움막으로 김양수 화백을 직접 찾아가 선생님으로 모셨다. “사군자부터 시작했는데 한두 달 하고 역시 난 안 되겠다는 결론을 냈어요. 그런데 그만둘 수도 없었어요. 내가 그림을 배우자고 사람들을 모았는데 혼자 그만둔다는 게 쉽지는 않았죠.” 그래서 다시 붓을 들었다. 자신이 그릴 수 있는 것을 그리기 시작했다. 산과 나무, 바위를 그렸다. 그림에 집중했던 다른 회원들과 달리 자기 생각을 글귀로 써넣었다. 그렇게 그림을 배운 지 6개월 정도 지나고 열린 내부 작품 전시회에서 김양수 화백은 그의 작품을 “그림을 그려본 사람의 입장에선 평생 그려보고 싶어도 못 그리고 죽는 그림”이라고 평했다. 평소 그의 그림을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그는 “꿈보다 해몽”이라며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의 지인들은 생각이 달랐다. 그의 작품을 모아 화첩을 출판하고 그림 전시회를 열겠다고 나섰다. 그림을 배운 지 겨우 1년여. 사태는 긴박하게 돌아가 이미 그가 ‘하지 말자’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그의 첫 번째 문인화첩 <여든 소년 산이 되다>가 세상에 나왔고, 개인전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좀 어리둥절해요. 내가 그림을 그려서 전시회를 한다는 건 꿈에도 생각해본 일이 아니니까요. 내 그림을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지만 전시회를 열고 보니 스스로가 대견스럽기도 하네요.”


전시회까지 연 초보 화가

80세의 정신과 의사로서 뒤늦게 자신이 가장 못한다고 생각했던 일에서 성공을 거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문인화는 50세 이전에 하는 게 아니에요. 산전수전을 겪은 사람들에게서 폭발하듯 쏟아져 나오는 거죠” 란 말을 들어보면, 그의 성과가 그저 운이나 이름값만으로 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뭉크의 <절규>를 보기 위해 오슬로 골짜기까지 일부러 찾아간, 그림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온 끝에 얻은 성과 아닐까.

“저는 이 문인화를 널리 알릴 생각입니다. 제가 힐리언스 선마을에서 장기 환자를 돌보는데, 그곳에서 문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계획 중이에요. 이걸 배우면 창의적이 되고, 마음이 차분해지고,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느낌을 받아요. 요즘 다른 문인화를 보면 화려하게 그리고 한문으로 시를 쓰는데 그럴 필요 없어요. 아마 쓰는 본인도 잘 모르는 내용일 겁니다. 그냥‘할매, 나는 밥 잘 묵고 잘 있습니다’ 이런 것처럼 가슴에 와 닿는 한두 문장이면 충분합니다.”


문인화 배우는 법

1 문화센터 강좌를 이용

북촌으로 가보자. 북촌문화센터에서 3개월 과정(월 5만원, 재료비 별도)으로 배울 수 있다. 다른 문화센터에서도 배울 수 있겠지만 역시 문인화라면 한옥이다.
 

2 미술학원의 동양화 수업을 이용

그림 공부는 부자나 하는 것이라 생각할 필요는 없다. 문인화는 생각보다 저렴하다. 어떤 취미생활을 해도 한 달에 10만원 남짓은 사용하지 않는가?
 

3 동영상 강의를 이용한 독학

예술은 어차피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것. 문인화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는 인터넷에‘문인화’라고 검색하면 잘 나온다. 돈이 들더라도 정식으로 동영상 강의를 듣고 싶다면‘도약아트(www.doyacart.com)’ 같은 사이트를 활용하자.


 

기타 장인 최동수(사진)

기타 장인 최동수 취미로 만들려다 명장이 된 전 건설사 임원

최동수 씨의 안내를 따라 들어간 그의 집 거실엔 기타 석 대가 놓여 있었다. 유약에 푹 담갔다가 갓 건져 낸 도자기처럼 반질반질한 표면, 머리 및 소리 구멍 주위에 덧대어진 섬세한 장식이 시선을 끌었다. 그는“2주 만에 뚝딱 만든 기타하고 내 악기를 비교하지 말라”고 했다.

 

잔뼈 굵은 건설업자에서 기타 제작자로

최동수 씨는 ‘기타 장인’으로 불린다. 1971년부터 지금까지 총 38대의 기타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설계사무소도 운영했고, 현대건설에서 임원을 지냈을 만큼 건설업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통기타를 쳤어요. 좋은 기타가 있었으면 했는데 그때는 돈이 있어도 좋은 기타를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어요. 제가 발이 넓은 것도 아니라서 어디서 파는지도 잘 몰랐어요. 그런데 제가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해서 직접 기타 비슷한 걸 만들어본 거죠. 오동나무 서랍장을 잘라서 반조(현악기의 일종) 비슷한 걸 만들기도 했고요. 그러다 사회 초년생 때 일본에서 기타 재료랑 책을 주문해서 만들어봤죠.”

그는 “그냥 기타가 좋았어요. 이 나이 되도록 기타를 못 버리는 걸 보면 하나의 숙명인 것 같아요”라고 했다. 그러나 그 숙명에도 단절이 있었다. “어느 날 집사람이 그러는 거예요.‘아이들 학교라도 제대로 보내고 난 뒤에 만드는 게 어떻겠느냐’고. 그 무렵에 현대건설에 들어가서 해외로 나갔죠. 그때부터 퇴직할 때까지 내 손으로 기타를 만들진 않았어요. 기타 공방을 찾아가거나 재료나 관련 서적은 모았어도.” 숙명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1994년 1월 3일, 그는 현대건설 신년 하례식을 마치고 박재면 당시 현대건설 회장을 찾아갔다. “이제 기타를 만들려고 합니다. 일 때문에 미룬 제 오랜 취미와 함께 남은 인생을 보내렵니다.” 박 회장은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어디 아픈 거 아냐”라며 되물었다고 한다.

 

기타 제작을 배우는 법

수제 기타(사진)

1 기타 제작 강습반 이용

수제 기타 공방 등에서 운영하는 클래식 기타 제작 강습반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재료비와 강습비만 내면 모든 준비를 다 해주기에 편리하다. 하지만 그 수가 적고 정기적이지 않아 찾기가 쉽지 않다.
 

2 제작 키트를 이용한 독학

손질된 재료를 직접 조립하며 기타 제작을 익힐 수 있다. 이베이 옥션(ebay.auction.co.kr) 등 구매 대행 사이트를 이용하면 해외에서 판매하는 키트를 구입할 수 있고, 국내 공방 중 알음알음으로 제작 키트를 판매하는 곳도 있다.
 

3 기타 제작 서적 이용

한글로 된 기타 제작 서적은 아직 없다. 최동수 씨는 Robert Hale& Company에서 나온를 추천했다.

 

취미 그 이상의 취미

직장을 그만둔 그는 기타에 매달렸다.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열린 국제 기타 페스티벌에 참가해 기타 제작 과정을 수료했다. 미국 힐즈버그(Healdsburg) 아메리칸 기타 스쿨에서 단기 코스도 밟았다. 그가 해외에서 수집한 120권의 기타 서적에는 밑줄과 메모가 시커멓게 달려 있다. 한 대, 두 대 기타가 늘면서 실력도 늘었다. 수제 기타를 제작하는 동호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름이 알려지자 2009년 일본의 한 기타박물관에서 찾아와 기타 두 대를 전시용으로 구입해 갔다. 그때부터 기타를 판매용으로 제작했고 지인에게 선물로 주던 기타를 서정실, 변보경, 배장흠 등 유명 기타리스트에게 헌정하기 시작했다. 특히 배장흠 씨는 그의 기타를 두 대 더 구입했다. 지난 7월 6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배장흠과 친구들’ 공연 무대에 오른 것도 그의 기타였다. 4천만원 상당의 해외 명기를 사용하던 아티스트가 1천만원짜리 최 씨의 악기를 선택하기도 했다. 그는 “취미로 기타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더 이상 취미가 아니에요”라며 “나무를 깎고 줄을 달았는데 ‘천상의 소리’가 들리는 듯한 희열 때문에 지금껏 기타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고 한다. 그는 지금은 사라진 19세기 유럽풍 디자인을 복원하기 위해 한 달 반 동안 지하 작업실에 틀어박혀 기타를 만든다. 나무가 습기를 먹지 않도록 여름에는 작업을 일절 하지 않는다. 모양이 나오면 제대로 된 소리를 얻기 위해 대덕연구단지에 보내 진동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시 튜닝을 한다. 그의 기타가 1년에 딱 2대밖에 나오지 않는 이유다. 그는 현재 기타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원래 기타는 일흔넷까지만 만들고, 기타에 관한 책을 한 권 쓴 다음 끝내려 했어요. 그런데 무리하다 응급실로 실려 갔죠. 몸 상태가 나아지자‘건강이 받쳐주는 한 계속하자’고 결심했어요. 기타를 통해‘천상의 소리를 들려주고, 책을 통해‘기타에 대한 세상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제 꿈입니다.”


한국은행 조사국 관리총괄팀장 이호균(사진)

한국은행 조사국 관리총괄팀장 이호균 20개국 여행자에서 관광 자격증 3관왕으로

이호균 한국은행 조사국 관리총괄팀장의 취미는 다름 아닌‘공부’다. 그는 마흔이 넘어 시작한 공부로 국내여행안내사, 국외여행인솔자, 관광통역안내사(영어)까지 ‘여행 관련 자격증’을 모두 취득했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여행 안내의 달인이 된 그에겐 어떤 사연이 있을까?

 

영어는 기본, 중국어와 일어는 필수!

그의 공부는 ‘여행’에서 시작됐다. 20여 개국에 걸쳐 여행을 다니다 보니 언어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느껴지더라는 것.

“그저 관광만 하고 오는 게 아쉬웠어요. ‘그 나라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알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죠.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겠다 싶어 중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날, 바로 중국어 학원에 등록했어요.”

마흔 넘어 시작한 그의 공부는 거침이 없었다. 한자능력검정시험 1급을 통과했고 한자지도사 자격증까지 땄다. 앎의 재미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일본어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 “중국어와 한자를 공부하다 보니 ‘도대체 일본어란 무엇인가?’ 싶더라고요. 그래서 ‘이왕 공부하는 거 한중일(韓中日)로 가자’라는 생각에 일본어 공부도 시작했죠. 현재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학부 4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중국어와 일본어에 이어 그다음은 영어였다. 본인의 실력 검증을 위해 아들과 함께 종종 토익 시험을 봤는데 영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관광통역안내사(영어)’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 것이다. 이 자격증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하는 통역 분야의 유일한 국가 공인 자격증으로 취득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외국어를 공부하고 자격증에 도전하다 보니 종국엔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된 점이다. “관광통역안내사 자격 시험 과목 중에 관광국사와 관광자원해설이 있는데, 그 과목을 공부하면서 우리 민족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선조들의 업적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그 길로 ‘우리 역사를 처음부터 제대로 공부해보자’는 마음에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도 도전하게 됐어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까지 취득한 그는 현재 숭의여자대학교, 인하대학교를 비롯한 교육기관에서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다.


여행을 외국어 학습으로 이어가는 노하우

1 해외여행 갈 때는 그 나라의 기본 회화는 익히자

해외여행은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떠나기 전에 기본적인 회화는 익히고 가자. 여행지에서 직접 써보고 경험하면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2 문화와 역사를 함께 공부하자

언어를 배울 때에는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함께 공부하면 훨씬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또 그 나라의 노래로 외국어를 익히면 더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3 유튜브(YOUTUBE), 테드(TED) 등을 잘 활용하자

유튜브나 테드에는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알려주는 정보가 가득하다. 특히 언어는 발음이 중요하기 때문에 유튜브나 테드의 다양한 동영상을 통해 정확한 발음을 알 수 있어 더 유용하다.

 

배움에는 부끄러움이 없다

언어, 관광, 역사까지. 보통 사람들은 회사만 다니기도 벅찬데 어떻게 다양한 분야의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을까?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요. 출근 시간이 50분 정도 걸리는데, 이때 스마트폰을 이용해 공부하죠. 주로 동영상 강의를 듣거나 단어를 외워요.” 그에겐 ‘내 나이가 몇인데…’ 하는 고정관념도 없다. 학생들 틈에서 공부하다 보면 부끄럽기도 할 텐데 그는 ‘나는 꿈이 있다’는 신념 하나로 버텼다고 한다. “한참 공부를 할 때는 저녁 약속도 안 잡고, 독서실에서 공부했어요. 대부분 중·고등학교 학생들이라‘저 아저씨 뭐야?’ 하는 눈총도 받았죠. 2010년 6월에 중국어 말하기 대회에 나갔더니 제가 장년 중에서도 최연장자이더라고요.” 그의 공부 열정은 아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집에서는 자연스럽게 면학 분위기가 조성됐고, 고등학생인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따라 오는 8월에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볼 예정이다. 재미 삼아 시작한 공부는 어느새 노후 대비로 이어졌다. 관광 관련 자격증에 역사, 언어 자격증까지 갖췄으니 마음이 든든하다. “지금은 겸직할 수 없어 그냥 회사 생활에 집중하고 있지만 퇴직 후에는 경복궁이나 창덕궁에서 가이드로 활동하고 싶어요. 외국 관람객들에게 우리나라 역사를 그 사람들 언어(일어, 중국어, 영어)로 들려주면 좋겠지요.”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공부가 얼마나 즐겁고 신나는 취미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좋은 중국 글귀 하나를 들려줬다.‘活到老 學到老’ 늙을 때까지 움직이고, 죽을 때까지 공부하라는 뜻이다. 이 짧은 문장 안에 그의 행복의 근원과 노후의 삶이 모두 녹아 있다.


과하주 ‘술아’의 개발자 한현희 막걸리 학교 수강생에서 전통주 제조자로

과하주‘술아’의 개발자 한현희(사진)

남편과의 사별 뒤 삶의 활력을 잃었던 한현희 씨는 막걸리 학교에 다니며 술의 세계에 푹 빠졌다. 술이 익어가듯, 자신을 숙성시키고 싶었다던 그녀는 단순히 먹고, 즐기는 것을 넘어 전통주 제조자가 됐다. 비결을 묻자 딱 한마디한다. “취미도 남들보다 더 열심히 즐기면 된다”고.

취미가 사업이 되다

한현희 씨를 만난 곳은 독마다 술이 익어가는 가양주(집에서 담근 술)연구소였다. 고운 개량 한복에 앞치마를 두른 그녀는 얼마 전 담가둔 복분자 막걸리를 시음하고 있었다. “향이 참 좋아요. 온도, 습도, 농도 등 아주 미세한 차이에도 전혀 다른 맛이 나니 신기하죠. 쌀, 고구마, 옥수수 등 응용할 수 있는 재료도 방법도 무궁무진하고요.” 그녀가 이렇게 주조 예찬론을 펼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뉴스에도 소개될 정도로 화제가 됐던 과하주를 복원해 낸 인물이기 때문. ‘여름을 넘긴다’는 뜻의 과하주는 조선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명주였지만 고문헌 속에만 존재해 그동안 맛볼 수 없었다. 지난해 한국가양주협회의 전통주 마스터 과정에 등록했던 그녀는 함께 공부하던 학생들과 힘을 모아 이를 연구, 개발해 올해 ‘술아’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과하주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다. 현재 퓨전 한정식집 ‘수불’에서 판매되는 ‘술아’는 모던한 디자인에 깔끔한 맛을 자랑하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일본 바이어들에게도 호평을 받아 해외시장 진출에 대한 기대도 걸고 있는 상황이라고. “술을 접한 뒤 인생이 술술 풀린다”며 넉살 좋게 웃는 그녀. 왜 하필 ‘술’에 빠져들었을까?

 

취미생활도 남들보다 열심히 하라

초반에 남편과 사별하게 된 그녀는 50대 초반까지 시립도서관에서 근무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혼자 몸으로 아이들 셋을 키우다 보니 심적인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얼마나 손, 발을 꾹 움켜쥐고 살았던지 퇴근 후 집에 오면 제대로 펴지지도 않을 정도였다고. 그런 그녀가 우연히 막걸리 학교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막걸리에도 학교가 다 있어’라는 호기심이 일자 강한 추진력을 발휘해 일단 입학부터 하고 봤는데 그곳에서 우리의 음식 문화를 배웠고, 순례하듯 유명 막걸릿집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즐기는 것에 익숙했던 그녀가 학습, 연구 쪽으로 시야를 돌린 건‘마시는 데 만족하지말고 세상에 둘도 없는 술을 만들어보자’는 마음이 들면서부터다. 취미 수준이었던 막걸리 학교를 마친 뒤 한국가양주협회를 찾아가 초급, 중급, 고급반을 거쳐 마스터 과정까지 밟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산에서 협회가 있는 방배동까지는 왕복 4시간. 이 거리를 기꺼운 마음으로 오가며 고문헌 속 주조 기술을 배우고, 직접 술을 띄우며 자신을 숙성시킨 그녀는 지도자 과정까지 밟아 현재 보조강사로 협회 수업을 돕고 있다. 전문강사 자격증을 따면 그때는 본격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계획도 갖고 있다.“이 나이가 되면 시간이나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쓸지 신중하게 선택해야 돼요. 취미도 좋지만 거기서 한 단계 나아가면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생길 수 있거든요. 단 이걸 열심히 해서 뭘 이루겠다는 목적은 두지 마세요. 그럼 지레 지쳐버리니까요. 그저 즐기면서 남들보다 조금 더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라는 거죠. 그 한 끗 차이로 취미냐 전문가냐가 나뉘어지는 거라고 봐요.” 한국 전통주에 매료된 그녀는 일 년에 한 번씩 술과 관련된 여행도 계획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유명 증류소를 둘러보며 싱글몰트 위스키에 대해 배운다든가 포르투갈에서 포트 와인의 자취를 느끼겠다는 식이다. 전통주 전문가가 된 그녀가 언제 와인 전문가, 위스키 전문가가 될지 모르는 일이다. 취미로 시작해 사업까지 벌인 화려한 전력이 있으니까.


전통주 배우는 방법

1 전문 아카데미에 등록한다

막걸리 학교, 전통주 학교 등 전문 아카데미에서 마련한 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하면 단기간에 효율적으로 확실한 주조 방법을 익힐 수 있다. 한국가양주연구소의 경우 한 달 만에 술 빚기의 기초를 배우는 과정을 운영하는데 총 교육비 50만원 중 국비 지원이 50%이므로 도전할 만하다. 문의02-583-5225

2 책을 통해 독학한다

전문가들이 집필한 책을 보며 집에서 직접 실습하는 방식이다. 고두밥 짓기부터 누룩 빚기 같은 기초적인 방법들을 상세히 설명해놨다. 일반 가정의 주방 기기로도 얼마든 술을 빚을 수 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해보자.
추천 책<한국 전통주 교과서>(류인수, 교문사),<막걸리 만들고 마시고 즐기고>(김성만, 크라운출판사),<전통주 집에서 쉽게 만들기>(이석준, 미래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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