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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속초시 외곽에 위치한 도문동. 설악산과 가까운 이곳은 속초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로 속초 토착민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도문동은 행정구역상 상도문리, 중도문리, 하도문리 세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나지막한 산과 넓은 들로 포근하게 둘러싸인 소담한 마을 중도문리에는 2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을 어귀에 자리 잡은 파란색 지붕 집은 시골 생활 6년 차 오경아 씨 부부의 살림집이자 사무실 겸 공방이다.
철제 대문의 감각적 디자인이 눈길을 끌어 가만 들여다보니 글자가 새겨 있다.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랫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가장 좋아하는 곳에서 가족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시인의 마음에 집주인의 마음이 닿아 있다고 느끼는 건 단순한 감상일까?
방송작가 출신의 정원 디자이너
정원 디자이너 오경아 씨는 정원 관련 디자인, 설계, 컨설팅, 시공을 하는 1인 기업 ‘오가든스’의 대표다. 그녀는 원예와 가든 디자인 관련 소규모 강의를 진행하는 ‘오경아 정원학교’와 가드닝을 공부하고 실습할 수 있는 수업 공간을 겸한 정원 카페를 운영한다. 아울러 정원을 주제로 꾸준히 책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한때 그녀는 방송작가였다. MBC 라디오 , <이종환·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등 16년 동안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활약했다.
일산의 작은 마당이 딸린 단독주택에서 연년생 두 딸을 키우며 맞벌이 주말부부로 바쁘지만 안정된 삶을 살았다. 방송작가라는 예민한 직업의 특성상 몸과 마음이 지치고 다칠 때면 집 앞마당에서 꽃과 식물을 가꾸며 마음을 추슬렀다. 작은 정원이 그녀에게 안식이었던 것. 자연스럽게 정원 문화에 호기심이 생겼고, 영국 유학을 준비했다.
“처음부터 가든 디자인을 깊이 있게 공부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저 3년 뒤에 돌아오자는 가벼운 마음이었죠. 그런데 막상 공부를 시작하니 너무 좋았어요.” 식물, 원예, 조경 등을 공부하면 할수록 정원 문화에 깊이 빠져들었다. 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하고 석박사 과정까지 수료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식물원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영국 왕립식물원인 ‘큐 가든’에서 1년간 인턴십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영국에서 7년을 보내고 2011년 말 귀국한 그녀는 40대 중반에 정원 디자이너로서 인생 2라운드를 시작했다.
도시 생활자에서 시골 생활자로
아내의 느닷없는 유학은 부부의 직업을 바꾸게 했을 뿐 아니라 삶의 터전도 옮기게 했다. 대학교수였던 남편은 아내와 딸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일산 집을 팔았고, 전세에서 다시 월세로 옮겼다. 아내가 귀국했을 때는 살 집이 마땅치 않아 월세로 얻은 창고를 가든 디자인 스튜디오 겸 살림집으로 사용했다. 1년 반 정도 살았는데, 주거용이 아닌 탓에 이웃의 민원이 잦았다. 어쩔 수 없이 아파트라는 불가피한 선택을 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정원 디자이너가 마당 없는 집에 산다는 것, 도시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까 고민이 많았다.
“어느 날 남편에게 말했어요. ‘정원에 대한 글을 써야 하는데 도시에서는 한 줄도 쓸 수 없다. 그러니 도시를 벗어나야 할 것 같다’고.” 그러다 2013년 업무차 방문한 속초의 중도문리에서 너른 마당을 품은 오래된 한옥 한 채를 만났다.
안방과 사랑방 등 방 3칸과 마루, 부엌을 나란히 배치하고, 부엌에 외양간을 덧붙인 ‘ㄱ’자형 겹집 구조의 옛집. 양양에 있던 100년 전 한옥을 그대로 뜯어와 1970년경 다시 조립한 집이라고 했다. 3년째 비어 있다는 집은 누추했고 곳곳이 녹슬고 무너져 있었으며 마당은 잡초로 무성했다. 그러나 마음이 출렁였다. 설렘이었다. 바로 집을 계약했다. 홀연히 영국으로 떠났던 그녀는 또다시 홀연히 속초의 오래된 시골 마을로 들어왔다. 중도문리는 햇살을 가득 품은 마을이었다.
시골 생활에 따른 현실적 문제들
시골은 홀로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곳이다. 마을 주민이라면 마을 경조사, 크고 작은 연례행사와 공동 작업 등을 피할 수 없다. 원주민들과의 어울림, 마을 공동체 생활은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부부 또한 그 점을 고려해야 했다.
“시골의 정서를 좋아하는 것과 시골 사람의 정서를 공유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저는 서울 토박이로 태생이 도시 사람입니다. 도시 DNA와 시골 DNA는 다르다고 할까요?(웃음) 시골 사람의 정서를 그대로 공유할 수는 없어요. 어느 정도 친분을 쌓을 수는 있지만 유대감이나 공감대를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요.”
부부는 일단 마을 사람들과 불필요한 위화감을 만들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집을 수리할 때부터 그 점을 고려했다. 그래서 옛집의 흔적을 지우기보다는 원래 모습을 찾아가는 방향으로 고치고 다듬었다. 마을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집이기를 바랐다.
“집수리를 마치고 나니 마을 부녀회장님이 그러시더군요. 집이 지어졌던 1970년대의 원래 그 모습으로 돌아갔다고, 옛 추억이 소환되어 친근하다고요.”
부부는 마을 공동체 생활과 관련해서도 나름대로 원칙을 정했다. “힘들고 힘쓰는 일에는 무조건 참석하지만, 놀고 먹는 일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이를테면 마을 사람들 생일잔치나 결혼식에는 불참해도 장례식이나 마을 공동 청소에는 반드시 참석하는 식이다. 어느덧 시골 생활 6년 차. 비록 시작은 긴장됐지만 적응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거기에는 동네 일꾼을 자처한 남편의 공로가 컸다. 먹고사는 일에 대한 걱정은 여전하지만, 실제로 살아보니 막연한 우려가 예상보다 좋게 해결되곤 했다. 그렇게 부부의 시골 생활은 안정되고 있다.
“도시에서의 삶은 어쩌면 저장과 잉여를 위해 인생을 지나치게 혹사시키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시골 생활은 잉여를 없애는 삶입니다. 굳이 도시에서 살지 않아도 되는 직업군이라면 시골 생활을 추천합니다. 귀촌하라는 게 아니라 생활 터전을 시골로 옮겨보라는 거죠. 제 경우도 가든 디자인 스튜디오가 굳이 강남에 있을 필요가 없어요. 도로망이 좋아 속초에서 서울까지 차로 2시간 거리예요. 시골에 살면서도 얼마든지 도시 생활을 누릴 수 있지요. 도시의 1/10쯤 되는 생활비로 열 배 이상의 풍요로움을 경험할 수 있어요. 앞으로는 어디에서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장기 플랜을 세워 차근차근 준비한다면 시골에서도 얼마든지 질 높은 생활이 가능합니다.”
부부는 좀 더 진화한 시골 생활을 꿈꾸고 있다. 지금까지는 시골에서 생활만 하는 일상이었다면 앞으로는 자급자족하는 시골 생활을 계획 중이다.
기획 이인철 글 김남희 사진 지다영(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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