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맨발에 이렇게나 많은 해석이?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로 해석되던 ‘여자의 맨발’에 대하여.
동양문화권에서는 여성의 맨발을 성기처럼 함부로 드러내선 안 되는 ‘은밀한 부위’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경향이 어릴 때부터 천으로 발을 꽁꽁 묶어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하는 중국의 ‘전족’으로 나타나기도 했는데 당시 이를 지키기 않으면 미인소리는커녕 결혼조차 하기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물론 함부로 천을 풀러 맨발을 드러내는 일도 없었다. 전족을 통해 성기 발육의 촉진을 기대했을 뿐만 아니라 혹시 모를 도망의 위험성까지 막고자 했다니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할 폭력적인 남성중심 문화가 아닐 수 없다. 당시 여성의 맨발은 억압, 희생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여야 하는 여가수에게 맨발은 돋보여야 할 ‘매력 포인트’가 됐다.
맨발로 자유를 향해 뛰다
프랑스 미술을 논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림이 있었으니 바로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다.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려는 정부에 대항해 민중이 봉기를 일으킨 이른바 ‘7월 혁명’을 표현한 이 그림에서 한 손엔 장총을 다른 한 손엔 프랑스 공화국의 삼색기를 휘날리는 여신의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젖가슴을 훤히 드러낸 채 쓰러진 민중 위에서 뛰고 있는 그녀가 만일 신발을 신고 있었다면 과연 루브르 박물관에 걸릴만한 명화가 됐을까? 이처럼 ‘여신의 맨발’은 자유로움, 자유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상징하는 훌륭한 매개체로 작용한다.
자유에 대한 갈구를 ‘맨발’로 드러낸 사례는 종종 무대 위에서도 나타난다. 신발이라는 허영을 벗고 ‘맨발의 디바’가 된 가수 이은미는 그런 과정 자체가 “초심을 잡는 자신만의 의식”이라고 밝혔고 몇 해 전 미국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딸과 함께 맨발로 레드 카펫을 밟은 엠마 톰슨은 “사회적 압박 때문에 육체를 학대하거나 변형하고 싶지 않다”며 굽이 15cm쯤 되는 킬 힐을 집어 던졌다.
맨발로 매력을 어필하다
여가수의 맨발은 때론 기회가 되기도 한다. 가수 현아가‘ 섹시지존’으로 꼽히게 된 계기는 2011년 당시 한 시상식에서 벌어졌다. 빨간 하이힐을 신고 무대에서 춤을 추던 그녀는 예상치 못한 폭우에 무대가 미끄러워지자 힐을 휙 집어 던진 채 맨발로 공연을 계속했다.
심하게(?) 관능적이었던 그 모습 덕분에 패왕지존이란 별칭이 생겨나기도. 한편 ‘24시간이 모자라’에 이어 ‘보름달’까지 두 곡을 연이어 히트시킨 가수 선미도 ‘맨발’로 자신의 매력을 한껏 발산한 바 있다. 소녀 같으면서도 여성스러운 면을 보여주기에 맨발만큼 좋은 콘셉트가 없었다는 설명.
맨발로 땀방울을 흘리다
거칠고 울퉁불퉁한 맨발이 훈장처럼 빛나는 순간이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이상화의 발이 꼭 그랬다. 언뜻 카메라에 비친 그녀의 발에는 굳은살과 물집, 상처가 뒤덮여 있었다. 0.01초라도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맨발로 스케이트 화를 신는 탓이었다. 스스로 “내 발은 예쁘다. 아름답다”며 웃어넘겼지만 그녀는 발은 그간의 땀과 눈물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기형적으로 뼈가 튀어나와 도저히 사람 발 같지가 않은 발레리나 강수진의 맨발, 양말을 신을 수 없게 퉁퉁 부은 김연아의 맨발, 마디마디 딱지가 내려앉은 손연재의 맨발.
그녀들의 맨발은 성실함의 다른 모습이었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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