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식증은 습관이 아닌 질병
어쩌다 보니 저녁을 건너뛰어 어쩔 수 없이 야식을 먹게 될 수 있다. 하지만 하루 일과처럼 야식이 습관이 되었다면 질병에 가깝다. 실제로 ‘야식증후군’이라는 질환이 있다. 의학적으로 야식증은 폭식증이나 거식증과 같은 섭식장애의 일종으로, 단순히 다이어트를 위해 교정이 필요한 습관이 아니다.
심각하게 말하면 건강을 위해 반드시 치료해야 하는 질환일 수 있다. 진단 기준에 따르면 아침에 식욕이 없고, 저녁 식사 외에 야식으로 하루 섭취 칼로리의 25% 이상을 먹으며, 수면장애나 우울증 증상이 있다면 야식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더 살찐다
야식을 먹는다고 해도 하루에 섭취하는 총칼로리가 높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밤에 먹으면 살이 더 찐다. 낮에는 우리 몸이 에너지를 소모하는 쪽으로 움직이지만 저녁에는 에너지를 저장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섭취 칼로리 중 남은 에너지를 인슐린 호르몬이 지방세포에 저장하는데 낮에는 글루카곤이라는 지방세포 분해물질이 분비되어 그나마 지방세포에 전부 저장되지 않지만 밤에는 인슐린만 분비되기 때문에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더 많이 지방세포에 쌓인다. 또 밤에는 몸이 휴식 상태에 들어가기 때문에 음식이 들어오면 최대한 쉬려고 재빨리 지방으로 저장시킨다. 아침에 구워 먹는 삼겹살과 늦은 밤 술안주로 굽는 삼겹살은 몸에 작용하는 칼로리가 전혀 다르다는 뜻이다.
그럼, 소화시키고 늦게 자면 안 될까?
음식을 소화하는 데는 4시간 정도 걸린다. 그렇다면 10시쯤 야식을 먹고 2시에 잠을 자면 괜찮지 않을까? 그런데 생각해보자. 밤을 새우고 새벽에 잠들어 7시간을 자고 일어나면 컨디션이 어떤가? 여전히 피곤하고 졸리다. 몇 시간을 잤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몸이 휴식 모드일 때 휴식을 취했느냐다.
식사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소화까지 걸리는 시간을 따질 게 아니라 대사 과정에 작용하는 호르몬들이 작동하는 시간대에 식사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그럼 식사와 관련된 호르몬의 기능이 가장 활발한 시간대는 언제일까? 아침, 점심, 저녁 순으로 활발하며, 저녁 7시 이전까지는 음식을 섭취해도 체중에 안전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생체시계가 고장 났다는 신호
야식을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것은 이미 생체시계가 망가졌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호르몬들과 자율신경계는 생체시계의 24시간 주기에 맞춰 적절하게 조절되며 대사 과정을 조율한다. 밤이 되면 멜라토닌 호르몬이 수면을 유도하고 식욕 억제 호르몬이 식욕을 가라앉혀 밤새 푹 잘 수 있게 하고, 아침이 되면 하루 동안 받을 스트레스에 대응하기 위해 코르티솔 호르몬 수치를 급격히 올린다. 그러면서 에너지 보충을 위해 식욕 촉진 호르몬을 분비한다.
그러니 원래는 저녁을 먹고 나서 다음 날 아침까지 배가 고프지 않아야 정상이다. 수면-각성, 섭식-단식 주기가 딱딱 맞춰 돌아가고 있다면 말이다. 야식을 끊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어긋난 생체시계를 다시 맞춰야 한다. 그래야 잠을 자야 하는 야밤에 식욕이 치솟지 않는다.
이게 다 스트레스 때문
먹는 것이 조절이 안 되는 것은 대부분 정신적 문제 때문이다. 야식증후군의 원인도 우울증이나 불안, 스트레스 등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스트레스를 야식으로 해소하면 그 자체로 중독이 될 수 있다는 것.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 뇌가 자꾸 식욕 중추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로 인한 감정적 허기인지 진짜 배가 고픈 건지 간단하게 구분할 수 있는 질문이 있다. ‘나는 배가 너무 고파서 지금 브로콜리라도 먹겠다?’ ‘예’라면 진짜 배가 고픈 것이고 ‘아니다’라면 감정적 허기인 것이다.
감정적 허기라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식욕이 가라앉을 수 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 불가능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내려갈까?
원시인류는 사냥을 나갔다가 큰 동물과 맞닥뜨리면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거나 맞서야 했다. 이 스트레스 상황이 종료되면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도 멈춘다. 현대인에게도 이 시스템은 유효하다. 최대한 신체 활동을 하는 것,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낮추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즉, 운동을 해야 한다.
최선의 방법은 밤 11시 전에 잠드는 것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야식을 끊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식욕억제제보다 수면유도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만큼 수면이 스트레스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개인차가 있지만 식욕 촉진 호르몬은 보통 밤 11시 전후로 가장 왕성하게 분비되어 새벽 1시 정도까지 이어진다. 그러니 야식을 끊고 싶다면 무조건 밤 11시 이전에 잠드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 그 시간에는 잠이 안 온다고 말한다.
새로운 취침 시간에 적응할 기간이 필요하다. 잠이 안 온다고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을 보면 안 된다. 비만 전문의 박용우 박사는 잠은 차의 시동을 끄는 것이므로 시동을 끄지 못했다면 최소한 주행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래도 안 되면 기상 시간을 앞당긴다. 아침 일찍 일어나면 결국 잠이 오게 되어 있다. 불면증의 가장 좋은 약은‘안 자는 것’이다.
TEST - 나는야식증일까?
□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불규칙하다.
□ 새벽 1시 전에는 쉽게 잠들지 못한다.
□ 음식을 먹고 바로 잠드는 일이 많다.
□ 배가 고파 잠에서 깰 때가 있다.
□ 종종 인스턴트식품으로 식사를 대신한다.
□ 야식을 먹으면 죄책감이 든다.
□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하면 폭식을 한다.
□ 일주일에 2회 이상 저녁 식사 후에 야식을 먹는다.
□ 우울한 기분이 자주 든다.
□ 아침을 안 먹는데도 점심 때 배가 많이 고프지 않다.
* 5개 이상이면 야식증후군 위험군
식욕 조절 호르몬이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생체리듬은 14시간의 공복(저녁 식사~다음 아침 식사)과 7시간 이상의 숙면이 지켜질 때다.
저녁 식사를 한두 시간 늦춘다
생체시계에 맞춰 생활 습관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삼시 세 끼 제때 식사를 하는 것이 기본이다. <12주로 끝내는 마지막 다이어트>의 저자이자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강재헌 교수는 식사 간격은 4~5시간이 적당하고 최대 6시간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식사 간격이 지나치게 길어질 것 같으면 중간에 간식을 먹거나 다음 식사를 미리 당겨 먹도록 한다.
예를 들어 저녁 8시 이후에 집에 돌아와 식사해야 한다면 오후 5시쯤 간단히 간식을 먹거나 퇴근길에 회사 근처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사 먹고 들어오는 게 낫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늦다면 아예 저녁 식사 시간을 한두 시간 늦추는 것도 야식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꼭 먹어야 한다면 치킨 대신 바나나
밤 11시에 야식으로 치킨이나 족발, 라면을 먹고도 살이 안 찌고 다음 날 컨디션이 좋을 방법은 없다. 꼭 먹고 싶다면 다음 날 컨디션을 해치지 않는 건강한 야식을 먹는다. 야식 대용으로는 우유, 바나나, 두부, 아보카도, 닭 가슴살 정도가 적당하다. 먹었을 때 위장에 자극이 적고 열량은 낮고 포만감은 크다. 특히 우유와 바나나에는 수면을 유도하는 성분이 들어 있다.
사각사각 씹어 먹을 수 있는 오이, 당근도 좋은 선택이다. 미숫가루나 검은콩가루를 물에 타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 탄수화물이기는 하지만 소화가 잘되고 혈당을 천천히 올린다. 이런 야식이라고 해도 잠들기 2시간 전에는 끝내야 한다.
TIP. 야식 막는 오후 간식
바나나(중간 크기) 1개
포도 38알
오렌지/단감 1개
연두부 1개
검정콩 2큰술
삶은 달걀 1~2개
치즈 1.5장
우유 1컵(200mL)
플레인요구르트 1개
식욕 호르몬 정상화를 위한생활 습관
♦ 낮 동안 햇볕 쬐기
낮 동안 햇볕을 충분히 쬐면 생체시계가 적절히 작동하여 밤에 식욕 억제 호르몬이 분비되는 데 도움이 된다.
♦ 잠들기 전 칼슘·마그네슘·비타민 D 보충제 섭취
칼슘과 마그네슘을 함께 먹으면 진정과 이완 효과가 있어 수면 유도에 도움이 된다. 비타민 D도 숙면에 도움이 된다. 비타민 D가 부족하면 잠들기까지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 오후 2시 이후로 커피 금지
커피를 마셔도 잠자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미 카페인 중독으로 봐야 한다. 일주일만 커피를 끊으면 수면이 질적으로 달라지는 걸 경험할 수 있다.
♦ 휴일에도 2시간 정도만 더 자기
한두 번만 기상 시간과 취침 시간이 바뀌어도 생체시계가 어긋나기 시작한다. 특히 기상 시간이 중요한데 주말에도 두 시간 이상 늦게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
♦ 잠들 때는 어둡게, 일어날 때는 밝게
잠자기 1시간 전부터 조명을 어둡게 하면 멜라토닌 분비가 원활해 잠이 잘 온다.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스탠드 조명이라도 켜야 몸이 빨리 깨어난다.
"야식을 먹는 사람이 야식을 먹지 않은 사람보다치아가 4개이상 더 상실됐다."_ 덴마크 코펜하겐대 연구팀
"야식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우울한 정도가 높다."_ 대한비만학회지
"밤 9시 이전에 먹고 최소 2시간 이후에 잠자리에 든 여성은 10시 이후에 먹고 1시간 후에 잠자리에 든 여성에 비해 유방암 위험이 23% 낮았다."_ 스페인 유방암 환자 대상 연구
"야식으로하루 전체 칼로리의 25% 이상을 먹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총섭취칼로리가 남성은 1000칼로리, 여성은 300칼로리가 더 많았다."_ 동아시아식생활학회지
[이런 기사 어때요?]
>> [전성기TV] Dr.YOU 닥터유 유태우박사의 20대 몸으로 사는 법
>> '배불러도 계속 먹게 돼' 먹방의 시대, 과식 피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