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의 얼굴 강수진 편

기사 요약글

혹시 후회할까 걱정되시겠지만 오히려 안 하면 후회하게 되는 게 인생이죠.

기사 내용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을 맡은 지 딱 1년이 지났어요. 기존의 클래식 발레를 바탕으로 모던 발레 등 활동 영역을 확대했다는 평인데, 되돌아보니 어땠나요?
저로서도 최선을 다한 보람 있는 한 해였고, 발레단의 모든 단원, 직원들이 정말 열심히 해줬어요. 모든 일이 그렇지만 발레단도 한 사람의 힘으로 굴러가지 않거든요. 군무가 있어야 수석 발레리나가 있는 것처럼 뒤에서 든든히 받쳐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거예요.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로서 여전히 세계 최정상이지만, 뒤늦게 ‘행정 업무’에 뛰어든다는 부담은 없었나요?
저도 겁났죠. 근데 어릴 때부터 늘 할 일은 다 해가면서 겁을 내는 스타일이었요 제가(웃음). 무섭다고 가만있으면 현재 상황에서 달라질게 하나도 없잖아요. 당연히 실수할 거고, 되는게 있으면 안되는 것도 있고, 그게 다 좋거나 다나쁘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내가 예술감독 자리를 수락했으면 그때부턴 그냥 최대한 좋은 결과가 나도록 움직이면 되는 거예요. 행정 경험이나 아이디어가 없는 대신 직원들에게 늘 물어보고 도움을 청하는 방법을 택했더니 하나하나 배워지더라고요. 출근 첫날 봤던 서류랑 지금 보는 서류랑 내용은 비슷비슷할 텐데 이해도는 천지 차이예요. 혹시 지금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망설이는 분들이 있다면 뭐가 됐든 한번 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혹시 후회할까 걱정되시겠지만 오히려 안 하면 후회하게 되는 게 인생이죠.

요즘도 새벽에 일어나세요?
새벽 5시면 눈이 딱 떠져요. 그 후 커피 마시고, 개인 연습하고 사무실에 들어가 업무를 보고, 점심시간에 인터뷰를 하고, 오후가 되면 단원들 코치해주고 또 외부 미팅이 생기고…. 늘 비슷비슷한 일상이죠.

한때 하루 18시간씩 연습에 매달렸는데, 그런 ‘고행’에 가까운 삶이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제 생활이 간단하면서도 참 풍부해요. 매일 똑같아 보이지만, 그 속에서 다른 생각, 다른 느낌을 갖게 되니 매일이 새롭죠. 그래서 한 번도 개인적인 시간이 부족하다고 불만을 가져본 적은 없어요. 물론 남들이 말하는 ‘노는 재미’는 잘 몰라요. 하지만 주어진 하루를 낭비하지 않고, 후회 없이 살겠다는 목표가 있어요.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매일매일, 순간순간 열심히 살기가 제일 힘들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살면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큰 목표에 서서히 다가가게 되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저는 토끼보다 거북이에 가까운데 많은 분이 인정해주시고 칭찬해주시는 걸 보면 잘못 산 것 같진 않아요.

게으르게 사는 분들을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하나요?
다 저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분들은 제 생활방식을 두고 왜 저렇게 피곤하게 사나 하실 수도 있어요. 각자 삶의 패턴이 있고 그것을 존중해야죠. 다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그래서 결과적으로 본인이 행복하냐’는 거예요. 나에게 맞지 않는 남의 생활방식을 동경하기보단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삶의 가치를 찾는 게 중요해요.

“아무도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누가 ‘아무도’이고 싶겠는가?”라는 말씀을 하신 걸로 유명해요. 발레리나로서 늘 ‘완벽’을 추구하며 살았는데, 100% 완벽한 무대를 경험한 적이 있나요?
없죠. 완벽이 좋은 의미인 것 같지만 결국 그다음이 없는 끝, 죽음과 마찬가지예요. 인생이든 발레든 완벽이란 세상에 없기 때문에 연습이 필요한 거죠. 저도 공연에서 실수를 곧잘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더 잘하고 싶어서 연습하는 거거든요. 단 완벽을 추구하되 그 과정을 즐기려는 마음이 필요해요. 당연히 실수하겠지만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강박적으로 굴면 아마 너무 피곤해서 기절할걸요.

발레 외에 나를 힘들게 했던 건 뭐예요?
아무래도 인간관계죠. 젊었을 땐 서투르기 때문에 내 의도와 다르게 다른 사람의 기분을 언짢게 할 수 있잖아요. 그런 오해 하나하나가 상처가 됐는데,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반복되면서 점점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스스로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관계 향상을 위해 노력했어? 그랬으면 이제 충분해' 라고 말할 수 있는 내공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그래도 가끔 20대 시절이 그립기도 한가요?
아니요. 그땐 아무리 열심히 해도 되는 게 별로 없었어요(웃음). 20대가 다 아는 것 같아도 아직 머리가 덜 깨였을 때라 넘치는 힘을 제대로 컨트롤할 줄 모르는 시기거든요. 경험도 부족해서 실수 연발이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에 쌓이는 것이 많아지니 살기가 좋더라고요. 그래서 내 나이가 참 자랑스럽고 좋아요. 앞으로 60대가 되면 더 자신감 있게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마<헤이데이> 독자분들도 저처럼 50대 전후를 맞이하고 계실 텐데 우린 잘 알잖아요, 인생 경험에서 비롯된 지식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러니 자신감을 갖고, 앞으로 남은 50년 후회 없이 사셨으면 좋겠어요.

50+에게 용기를 주시는 말씀인데요, 공교롭게도 오늘 버스 안에서 친구에게 같이 발레를 배우자고 조르던 60대 아주머니를 보았어요.
좋은 생각이에요. 타이즈에 슈트 입고 무대에 설 목적으로 발레를 배우는 건 아니잖아요. 어디까지나 취미나 건강 증진이 목적이라면 요가를 배우는 것처럼 나이는 문제될 게 없어요. 좋은 음악을 들으며 땀을 흘리는 만큼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도 도움이 될 거예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85세인데도 여전히 적극적으로 발레를 가르치고 즐기고 계신걸요.

한 종군기자가 “돌이켜보니 시작은 별 게 아니었는데 여기까지 와 버렸다”는 표현을 한 적이 있어요. 강수진 씨가 처음 발레를 시작한 계기는 뭐였어요?
원래 한국무용으로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혹시 발레를 배워볼 사람 없느냐기에 손을 들었어요. 그때만 해도 발레를 할 만한 재목이 없어서 그랬지, 요즘(신체 조건이 좋은 아이들 사이에서라면) 같으면 아마 끼지도 못했을걸요(웃음). 중2 때 발레에 대한 애착이 생기면서부터 혼자 새벽 4시에 일어나 남산도서관에서 아침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기도 했죠. 학교 가서 다른 애들 밥 먹을 때 연습하고, 수업 끝나면 또 공부하고 그렇게 규칙적으로 살았어요. 굉장히 피곤하긴 했는데 어린 마음에도 절제하면서 사는 방식이 괜히 마음에 들더라고요.

강수진

 

어머님이 “유학 보낸 뒤로 수진이를 내 딸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실 만큼 강한 분이라고 들었어요.
그런 어머님이 계셨기에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우리 엄마가 외할아버지(강수진의 외조부는 한국 최초의 야수파 화가인 구본웅이다)의 영향을 받아서 그랬는지 어릴 때부터 동네 작은 미술관이나 음악 학원 같은 데를 데리고 다니셨어요. 음악을 전공한 언니나 동생에게도 마찬가지였지만, 뭘 강요하는 스타일은 아니셨는데 “싫으면 가지 말아라. 나중에 배우고 싶거든 그때 배워라”라고 곧잘 말씀하셨죠. 발레로 모나코까지 유학을 가게 됐지만, 엄마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유학이 뭔지 몰랐기 때문에 그런 용감한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요즘 학생들이야 영어도 미리 배우고, 스파게티나 피자도 먹어본 상황에서 유학을 가지만, 저는 영어도 몰랐고 음식이라고는 밥, 김치밖에 몰랐거든요. 굉장히 내성적이고 조용한 스타일인데도, 가서 살다보니 활동적으로 성격이 바뀌더라고요. 모나코에서든 독일에서든 적응하고 마음을 여는 데 딱 2년씩 걸린 것 같아요.

선배 발레리노였던 남편과 결혼한 지도 벌써 25년이 지났어요. 처음에 어떤 점이 서로를 매료시켰어요?
저는 딱 한 가지에 집중하는 편이고 남편은 다방면에 재주가 많은 편인데 그런 점을 서로 존경했어요. 무엇보다 남편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사람이에요. 제가 나 자신으로 살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면이 가장 고마웠어요. 그래서 저는 몇 번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 남편밖에 없어요.

발레의 오스카상 격인 ‘브누아 드 라 당스’ 여성무용가상도 받았고, 독일 최고의 장인 예술가에게 주어지는 캄머탠처린(궁중 무용가)이란 칭호도 받았어요. 늘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꼽히는데 그에 따른 부담감도 있나요?
저는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 안 해요. 그냥 나한테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결과가 좋았고 그게 국위 선양으로 이어진 정도잖아요. 만약 제가 나라의 이름을 드높일 목적으로 연습했다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전 지금껏 뭘 바라고 살진 않았어요. 주체는 ‘나’에게 있어야 해요.

기형적으로 변한 당신의 발가락 사진이 큰 화제가 됐죠. 왼쪽 정강이뼈에 금이 간 상황에서도 이를 꽉 물고 다시 무대에 섰어요. 그렇게 지독하게 연습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뭐예요?
어떤 선택을 앞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둘 중 하나예요. 할까, 말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는 게 지금보다 나은 상황을 만들어준다는 걸 알아요. 그런데 안 해요. 그게 더 편하거든요. 저는 그런 선택의 순간에 할지 말지만 생각했어요. 힘들다, 귀찮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정신적으로 금방 무너져버리니까. 또 하나 제가 선택한 일에 책임을 지고 싶었어요. 안 하면 안 했지 일단 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노력하는 게 맞잖아요. 그게 반복되다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한 견고한 믿음이 생기는 거죠. 저랑 일해본 사람들은 잘 알아요. 아침에 열이 40도 이상 나지 않는 한, 어떤 일이 있어도 예정된 하루 일과를 끝낼 거라는 점을요.

내년 은퇴 무대가 어떻게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관객이 나를 어떻게 기억하든 상관없어요. 어떤 공연이든 저는 항상 똑같이 다 중요했거든요. 그게 은퇴 공연일지라도 특별한 의미를 두진 않으려고 해요. 물론 무대를 내려오면서 슬프긴 하겠죠. 내가 평생 해온 것과 작별해야 하는 순간이니까. 하지만 은퇴를 하는 시점에 또 다른 삶이 시작될 거란 걸 알아요. 아마 제 성격으로 봤을 때 소파에 누워 있기만 하진 않을 것 같고요(웃음). 근데 그건 그때 가서 봅시다. 예술감독 임기가 2년 더 남은 지금 시점에서는 “내년에 내가 이렇게 기억됐으면 좋겠어요”가 아니라 오늘 국립발레단을 위해 뭘 할지를 더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오늘 할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내일은 또 내일 닥친 일에 100% 열중하면서, 책임지고 사는 게 그게 내 삶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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