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를 잃어간다면

기사 요약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기사 내용

어린 시절 이발소나 미장원, 사진관 등에 가면 이런 글귀가 적힌 액자가 많이 걸려 있었다. 대개는 숲속의 나무들을 그린 커다란 풍경화 한쪽에 적혀 있었다. 자주 마주하다 보니 눈에 익긴 했지만 어린아이가 그 뜻을 알 길은 없었다.

다만 왠지 막연하게 어른들의 세계란 쓸쓸한 거구나 하는 느낌은 있었던 것 같다. 그 문장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에 아픔 같은 것이 느껴지곤 했으니까. 중학교에 다니면서 푸시킨을 알았다. 하지만 이미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에게는 그런 시 자체가 유치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 후로 세상은 변했고 그런 풍경화들 역시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지금 나는 비로소 그 문장이 주는 울림에 깊은 공감을 느끼고 있다. 그 느낌이 얼마나 절실한지 스스로 당혹스러움을 느낄 정도다. 결국 삶은 일정 부분 ‘기만’이며, 그것에 속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각’이 이제야 마음에 사무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얼마 전 스웨덴 작가이자 연극 연출가로 잘 알려진 헤닝 만켈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푸시킨의 시구를 떠올렸다. 1948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만켈은 한 살 때 어머니가 가족을 떠난 뒤, 판사인 아버지의 부임지를 따라 여러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16세에 학교를 자퇴한 그는 화물선에서 노무자로 일하거나, 파리로 가서 보헤미안처럼 살며 세상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 후 스톡홀름으로 돌아온 그는 극장에서 무대 담당 스태프로 일하며 희곡을 쓰기 시작한다. 1973년 첫 소설을 출간한 무렵 그는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여행했으며, 작가로 성공한 뒤에는 모잠비크에 극단을 세워 30여 년간 운영한다. 스릴러 문학의 거장이라는 명성(40여 개 언어로 번역되고, 수천만 부 이상 책이 팔려나가는 작가만이 누릴 수 있는)을 얻은 그는 연극 연출을 통해 아프리카의 현실과 고통을 세상에 알리는 일에 평생을 몰두했다. 또한 그는 평생 핵무기와 원자력발전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적극적으로 펼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그는 2014년 갑작스럽게 폐암 진단을 받는다. 2015년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집필한 자서전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처음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릴 때 책에서 읽은, 사람을 가차 없이 집어삼키는 모래 늪에 대해 느꼈던 공포를 다시 떠올린다. “나는 그 모래 늪에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반항했다. 모든 저항력을 무너뜨리는 공포가 날 완전히 마비시키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잡는 데 열흘이 걸렸다. 그건 모래 늪에서 살아 나오고자 하는 무언의 투쟁이었다. 그리고 나는 빨려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모래 늪에서 기어 나와서 내게 다가온 도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 후로도 힘든 시간은 이어진다. 고통스러운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그는 책과 그림과 음악(그의 표현대로라면 그 모든 것이 삶과 관계된)에서 위안을 얻었노라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우리 존재는 근본적으로 하나의 비극이다. 우리는 평생 동안 지식과 경험을 키우려고 노력하지만 마지막엔 결국 모든 것이 무(無)가 되어버린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인생의 굽이를 돌고 돌아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에 이르러본 사람이라면 그의 말에 담긴 통렬함을 이해할 것이다. 내 경우에 만켈의 그 말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는 시구와 동의어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비로소 그 모든 ‘무(無)와 기만’을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한편으로 앞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는 살아 있는 한 이 삶을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켈은 그 방법에 대해 “우리에게 있는 것은 여기 그리고 지금뿐”이라고 말한다. ‘여기 그리고 지금’을 살아내는 것에 바로 ‘우리 삶의 유일무이함, 우리 삶의 경이로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깊이 동의한다. 결국 그 또한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임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주 과거에 발목을 잡히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에 흔들리면서 가장 중요한 현재를 낭비하곤 한다.

그래서 나는 현재에 집중하는 것을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에 비유하곤 한다. 우리가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는 그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어떻게 먹을까 망설이거나,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하거나, 지난번에 먹은 게 더 맛있는데 하면서 후회하는 시간에도 아이스크림은 계속 녹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스크림이 녹는 것이 큰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녹아 없어지는 것이 나의 잠재력과 에너지라면 그보다 더 큰 인생의 손실도 없다. 그런 손실을 막으려면 결국 “우리에게 있는 것은 여기 그리고 지금뿐”이라는 자각으로 현재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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