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두 번째 인생, 마라톤으로 인생 2라운드

기사 요약글

그저 달렸을 뿐인데 삶이 달라졌다? 마라톤으로 두 번째 삶을 얻은 사람들을 알아보았다.

기사 내용

 

 

어떻게 달라졌느냐는 우문에 현답이 돌아왔다. ‘달려라, 그럼 알게 될 것이니.’ 달림으로써 인생에 변화를 맞이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인생의 참맛, 이은영 씨

 

 

“마라톤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면 대회에 한번 참여해보세요. 서울국제마라톤처럼 큰 대회는 사실상 축제입니다. 을지로, 청계천, 종합운동장까지 서울 시내를 안전하게 돌아볼 수 있죠. 같은 옷을 입은 수만 명이 서울 시내를 같이 뛰는 경험은 평생 못 잊을 즐거움입니다.”

 

체코의 전설적인 장거리 육상선수 에밀 자토페크는 “인생을 경험하고 싶다면 마라톤에 도전하라”라는 말을 남겼다.  15년째 마라톤을 하고 있는 이은영 씨는 에밀 자토페크의 말처럼 마라톤이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끝이 정해져 있고, 처음부터 너무 힘을 내면 완주하기 어려운 것이 인생과 꼭 닮았기 때문이다.

 

“마라톤은 굉장히 정직한 운동입니다. 제대로 훈련하지 않으면 완주를 할 수 없고, 무리해서 뛰면 부상을 당합니다. 평정심과 항상심을 갖고 해야 하는 운동이지요. 뚜벅뚜벅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야 하는 우리 인생과 같지 않나요?”

 

사업을 시작하고 쉬는 날 없이 살아온 그는 어느 날 삶에 뭔가 부족함을 느꼈다. 그러다 몸을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마라톤을 만났다.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일하다 보니 삶이 좀 팍팍했어요.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이것저것 해보았는데 마라톤이 잘 맞더군요. 그리고 제가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참 좋아하는데, 그의 책에서 종종 마라톤에 대한 내용이 나오거든요. 저도 모르게 동경한 것 같아요.”

 

 

 

 

그는 오랜 시간 마라톤을 할 수 있는 이유로 무엇보다 온라인 동호회를 꼽았다. 매주 만나 같이 운동하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이 한 주 고생한 자신에게 위안과 위로를 가져다준다고.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과 거친 호흡을 내뱉으면서 함께 운동하고 이야기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 스트레스가 사라집니다. 게다가 나이도 비슷하거든요. 자녀 문제, 직장 문제 등 사회 경제적으로 접점을 가진 중년이 또래를 만나 운동하며 마음 편히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요.”

 

마라톤을 하면서 생활도 규칙적으로 변화했다. 가을에 풀코스 마라톤을 한다면 미리 그에 맞춰 움직인다.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술처럼 건강에 해가 될 것 같은 음식이나 활동은 피한다. 하지만 그는 전문 선수처럼 순위나 기록을 생각하며 뛰는 것을 경계한다. 옆 사람과 함께 호흡하며 자신의 능력에 맞게 뛰어야 즐겁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라톤은 순간적으로 격렬한 힘을 낼 필요가 없고 같은 동작을 꾸준히 반복하기 때문에 몸에 크게 무리가 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마라톤이 고되고 힘든 운동이라고 오해하고 있어서 안타까워요. 꾸준히 하다 보면 뛰면서 옆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기거든요. 그 대화에서 마라톤의 참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은영 씨는 취미로 즐겁게 마라톤을 하는 것이라고는 했지만 15년 동안 30,000km를 뛰었을 만큼 베테랑이다. 대회를 앞두고는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32km를 뛴다. 내년에 있을 도쿄마라톤을 준비하는 그는 오늘도 달린다.

 

 

 

 

몸과 마음의 조화, 이영란 씨

 

 

“어떻게 해야 마라톤을 잘하는지 검색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전거를 잘 타는 방법을 아무리 검색해도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운동화를 신느냐, 어떤 옷을 입느냐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집에 있는 옷을 입고 운동화를 신은 다음 걷기부터 해보세요.”

 

“많은 사람이 마라톤을 육체적 운동이라고 말하는데, 저는 심리적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지요? 저는 마라톤으로 마음의 건강을 되찾으면서 비로소 온전하게 건강해졌습니다.”

 

오랜 세월 기자로 산 이영란 씨는 마라톤을 하기 전 굉장히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다고 했다. 게다가 자신감도 부족해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남들에게 자신을 내보여야 하는 기자 업무가 잘 맞지 않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런데 마라톤을 접하면서 서서히 달라졌다.

 

“살아서 뭐 하나 싶을 정도로 냉소적이었어요. 남편이 특별히 속을 썩이지도 않고, 아이들도 문제없이 학교에 잘 다니는 데다 경제적인 문제도 없어서 남들에게는 제가 참 이상해 보였을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 마음의 문제이지 않았나 싶어요. 마라톤을 하면서 그런 마음이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행복’이란 단어를 마음에 품고 있어요.”

 

 

 

 

사실 그녀는 마라톤을 할 수 없는 신체를 갖고 있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하고 발가락은 기형인 데다 평발이다. 정형외과에서는 그런 발로 뛰면 발이 완전히 망가진다며 말렸을 정도. 그런데도 뛸 수 있었던 데에는 남편의 역할이 컸다. 그녀보다 앞서 마라톤을 시작한 남편이 모임에 나와 그냥 밥이나 한 끼 같이 먹자며 초대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남편이 마라톤을 하면서 귀가 시간이 늦어지더라고요. 졸지에 ‘마라톤 과부’가 됐길래 잔소리를 좀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마라톤 동호회가 재미있다며 같이 나가 밥 한 끼 먹자고 한 것이 1km, 2km 달리기로 이어졌죠. 처음에는 힘들고 어려웠어요. 그런데 분위기가 좋아 꾸준히 나가게 되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니 저도 모르게 풀코스를 꿈꾸고 있더군요. 자신감이 생겼다는 뜻이지요.”

 

마라톤을 한 지 15년이 흘렀다. 건장한 남자도 힘들다는 극한 마라톤인 울트라 마라톤에 세 번이나 참여했고, 풀코스는 50회 이상 완주했다. 15년 전보다 몸과 마음이 단단해졌음은 물론이다. 그녀는 중년이 마라톤을 경계하는 것이 참 안타깝다고 말한다.

 

“이 나이에 무슨 마라톤이냐, 무릎 안 좋아지면 어쩌려고 달리냐 하는데, 마라톤을 하면 자연스럽게 근력운동이 됩니다. 무릎 주변 근육이 강화돼서 오히려 안 좋았던 무릎이 건강해지지요.”

 

그녀는 노년을 앞두고 남편과 마라톤으로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찾은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모든 계획에 남편과 마라톤이 연결되어 있다. “나이가 들면 외로워서 결혼한 자식에게 놀아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지요. 바쁘게 사는 젊은 사람들에게 그러면 안 됩니다. 스스로 재밌게 지내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저희는 그런 의미에서 마라톤을 합니다. 내년이면 남편이 환갑입니다. 기념으로 제주도 마라톤에 참가할 계획이에요. 동참하지 않으실래요?”

 

 

 

 

달리며 찾은 건강, 임환석 씨

 

 

“두려움만 떨치면 누구나 달릴 수 있습니다. 일단 밖으로 나가 걸어보세요. 걷다 보면 뛰고 싶고 그러다 보면 자신감 있게 달리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주변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숨이 점점 가빠온다. 몇 번의 숨을 토해내자 몸이 점점 가벼워지고 알 수 없는 황홀감에 빠진다.’ 8년째 마라톤을 하고 있는 임환석 씨는 달리면서 느끼는 쾌감 덕분에 마라톤에 흠뻑 빠지게 됐다고 말한다. 시작은 친구가 걸어온 내기 때문이었다.

 

“마라톤을 하는 친구가 대회를 나가는데 풀코스를 ‘3시간 50분 안에 들어오면 술을 사겠다.’ 하더라고요. 제가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4개월 정도 연습하고 풀코스에 도전했습니다. 목표 지점에 들어오니 3시간 38분 기록이 뜨더군요. 친구는 대단하다고 했지만, 솔직히 죽는 줄 알았어요.”

 

너무 힘들어 다시는 못 하겠다 생각했지만, 그 대회 이후로 마라톤에 관심이 갔다. 우연한 계기로 마음을 잡는 마라톤 동호회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마라톤 인생이 시작됐다. 그는 마라톤을 하기 전 술과 담배 없이는 살 수 없는 대사증후군 환자였다. 고혈압, 지방간, 콜레스테롤 등 수십 가지 알약을 3년 넘게 먹을 만큼 건강이 좋지 않았다. ‘마라톤을 하겠노라.’ 의사에게 말했을 때 의사는 죽을지도 모른다며 말릴 정도였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달리고 나서 혈압을 쟀는데, 신기하게 뛰고 나면 혈압이 떨어지더군요. 그리고 3일 정도 뛰지 않으면 다시 혈압이 올라가 있고요. 마라톤을 한 지 2년 정도 지나서 병원에 가니 혈압을 비롯해 콜레스테롤, 지방간 등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와 있더라고요. 의사도 깜짝 놀랐죠.”

 

 

 

 

몸이 건강해진 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규칙적으로 생활하게 된 것은 물론 마라톤을 하기 위해 술과 담배를 끊었다.

 

“아내가 ‘당신은 절대 술, 담배를 못 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었는데 깜짝 놀라더군요. 일과 후 술을 안 마시고 바로 귀가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니 어느 순간 가정적인 남자가 되어 있더라고요. 게다가 몸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몸과 대화를 한다고 할까요.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있으면 달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라톤 하나가 제 삶 전반에 이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서브스리(Sub Three) 주자가 되어 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 목표다.

 

“70세가 넘어서도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보면서‘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어요. 사실 운동해서 나쁜 것보다 하지 않아서 나쁜 게 더 많거든요. 그리고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데, 학생들에게 나처럼 나이 든 사람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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