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취미 - 요리 편

기사 요약글

적극적으로 요리를 배우고 즐김으로써 삶에 풍미를 더한 사람들의 이야기

기사 내용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집에서 챙겨 먹는 남자를‘삼식이’로 희화하는 세상입니다. 때 되면 으레 차려줄 것으로 생각했던 밥상이 더 이상‘당연’하지만은 않다는 의미죠. 그래서인지 요즘은 뒤늦게 요리를 배우러 다니는 중년 남성들이 꽤 많은데요, 그들의 속사정을 듣고자 벌써 10년 이상 운영되고 있는 서초문화원의‘아버지 요리교실’을 찾았습니다. 30대 후반의‘젊은 아빠’도 있었지만 평일 저녁, 앞치마를 두른 채 나타난 이들은 대부분 은퇴를 경험한 50+였습니다. 평생 부엌일이라고는 모르고 살았던 67세 허춘 씨는 아픈 부인을 위해 요리를 배우러 왔다는군요.

“두 내외뿐이니 아내가 아프면 당장 먹고 사는 문제에 제동이 걸려요. 며느리한테 부탁하거나 나가서 사 먹는 것도 한두 번이죠. 평생 얻어먹었으니 이젠 내 손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아내와 며느리의‘협공’으로 마지못해 이곳에 온 65세 이석경 씨는 “막상 해보니 스트레스도 풀리고 재미있더라” 며 요리가 일상에 새로운 활력을 심어줬다고 설명합니다. ‘은퇴 후 식당이나 차려볼까’ 싶어 왔다는 49세 안지훈 씨는 ‘적성에 안 맞는 것 같다 ’며 미리 겪어보길 잘했다고 웃었습니다. 모인 이유야 제각각 다양하지만 15명 남짓한 학생들은 강사 임승미 씨의 지도에 따라 레시피를 적고, 요리 시연을 꼼꼼히 지켜보며, 서툰 솜씨로나마 파를 썰고, 돼지고기에 양념 간을 했습니다. 고군분투 끝에 근사한 제육볶음과 숙주고기무침이 완성되자 초보 요리사들의 얼굴엔 뿌듯함이 가득합니다. 조별로 둘러앉아 오순도순 요리를 나눠 먹으며 오늘 배운 요리를 꼭 식구들에게 해주겠다는 등, 이제 와이프가 곰국을 끓여놓고 나가도 두렵지 않다는 등의 우스갯소리로 요리에 대한 자신감과 흥미를 드러내는군요. 이렇듯 적극적으로 요리를 배우고 즐김으로써 삶에 풍미를 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오리엔탈 투움바 파스타와 꽈리고추를 곁들인 연어스테이크

‘아버지 요리교실’에서 시작해 양식 조리사 자격증까지 거머쥔 이원영 씨. 그에게도 삼식이가 될 뻔한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일류 셰프가 부럽지 않다.

그가 선보인 요리는?

오리엔탈 투움바 파스타와 꽈리고추를 곁들인 연어스테이크. 자칫 느끼할 수 있는 크림소스 파스타에 간장과 고춧가루를 가미해 깔끔하고 독특한 퓨전 스타일의 음식을 완성했다. 노릇하게 구운 연어에 데리야끼소스를 얹고 아삭한 식감의 꽈리고추를 함께 곁들인 센스도 최고. 여느 레스토랑의 음식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멋진 요리들이다.

 

 

온 식구들의 셰프가 된이원영 씨 사진

온 식구들의 셰프가 된 이원영씨

현대모비스 이사로 인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그는 공식적인 업무에 요리를 끌어 들였다. 직원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이를 나눠 먹음으로써 소통과 유대를 쌓을 수 있기 때문.

 

 

요리를 배우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2006년 집사람이 공인중개사 시험을 본다기에 제가 뭐 도울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서초구의 ‘아버지 요리교실’에 등록하게 됐어요. 끼니 걱정이라도 좀 덜어주고 싶었거든요. 요리라고는 명절날 전 부치는 것밖에 안 해봐서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는데 막상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우니 적성에 딱 맞더라고요.
 

조리사 자격증까지 딴 이유가 있나요?

와인 관련 일을 했던 이유도 있지만 아버지 요리교실에서 2~3달간 기본적인 요리를 배우다 보니 특히 이탈리아 요리 쪽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라퀴진’이라는 쿠킹 클래스에서 여는 수업을 들어보기도 했고요. 기왕 할 거면 제대로 하자는 마음에 2007년에는 요리학원에 다니면서 양식 조리사 자격증에 도전했습니다. 첫 번째는 떨어졌고 두 번째 시도 끝에 붙었죠. 그 후에는 월간 요리 잡지<수퍼레시피>를 구독하며 거기에 소개된 레시피를 따라 했어요. 그렇게 차츰차츰 만들 수 있는 음식의 가짓수를 늘렸죠.
 

실력 발휘할 일이 많겠어요?
 

설, 추석, 부모님 기일. 이렇게 1년에 4번은 온 식구들에게 꼭 요리를 해주고 있습니다. 주로 파스타와 샐러드, 스테이크 종류인데 한 번에 20인분 가까운 음식을 준비하려니 제가 꽤 애를 먹죠. 그래도 다들 감탄하며 맛있게 먹어주니 기분이 좋습니다. 특히 처갓집 식구들을 불러다 근사한 식사를 차려줄 때면 아내의 어깨가 으쓱해지죠. 장모님도 사위에게 이런 요리를 대접받는 사람은 본인밖에 없을 거라며 무척 좋아하셔요. 그럴 때마다 요리를 배운 보람을 느낍니다.
 

확실히 외식이 줄겠어요?

아무래도 그렇죠. 나가서 먹는 것도 좋지만 기왕이면 좋은 재료로 직접 요리해 먹는 게 의미도 있고 더 좋지 않겠어요. 작년에 두 아들 녀석이 다 장가를 갔는데 집에 예비 며느리들을 초대해 요리를 만들어줘서 점수도 많이 땄어요(웃음). 나한테 찌개, 파스타 한두 가지 정도를 가르쳐 달라더니 지들 와이프한테 종종 해주는 모양이더라고요. 예전엔 주말에도 식구들이 각자 뿔뿔이 흩어져 보내기 바빴는데 제가 요리를 하고부터는 일요일 저녁에는 으레 모여 같이 식사를 하게 됐다는 점도 변화예요. 일종의 가족 문화가 생긴 셈이죠.
 

앞으로 더 배워보고 싶은 요리 분야가 있나요?

제과· 제빵을 배워보고 싶네요. 곧 손주가 태어날 텐데 쿠키 등과 같은 아기를 위한 요리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요리를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가족 사이에서 제 역할이 명확하게 생겼다는 점이에요. 앞으로도 사랑하는 가족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살면 더 바랄 게 없죠.

 

요리는 어떤 사람이 배우면 좋은가요?

마음이 싱숭생숭한 사람
씻고, 썰고, 데치고, 볶고, 요리하는 동안 잡생각에 빠질 겨를이 없다.
 

소심한 사람
요리는 완결을 향해가는 일련의 과정이다. 요리만큼 단시간 내에 성취감을 안겨줄‘놀이’는 없다. 치매가 걱정되는 사람 요리는 양손을 쓰는 데다 끊임없이 다음 과정을 생각해야 한다.
 

가부장적인 사람
무거운 솥을 들었다 놓고 한껏 벌려놓은 요리 도구를 정리하며 그간 당연하게 받았던 수많은 밥상이 떠오를 것이다.
 

봉사하고 싶은 사람
홀몸 어르신이나 소년 소녀 가장에게 직접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을 대접할 수 있다.
 

가족과 화목해지고 싶은 사람
요리를 잘하면 식구들의 관심과 애정이 쏠리게 마련이다.

 

 

요리로 직원들과 소통하는 고동록 씨 사진

요리로 직원들과 소통하는 고동록 씨

현대모비스 이사로 인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그는 공식적인 업무에 요리를 끌어 들였다. 직원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이를 나눠 먹음으로써 소통과 유대를 쌓을 수 있기 때문.

 

‘남성 전용’ 요리교실에 가는 이유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아주머니들 틈에 끼어서 민망해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조별로 진행되는 요리교실의 특성상 기본기가 되는 아주머니들은‘요리 왕초보’ 당신에게‘칼질 한 번 해볼’ 기회조차 주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하향 평준화’가 전제된 남자 요리교실에서라면 당당하고 자신 있게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냥 책 보고 배우면 안 되나요?

아무리 쉽게 설명한 요리책이라도 기초 지식이 없다면 이해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시행착오를 겪은 50+의 조언입니다. 그러니 공간, 도구도 잘 갖추어져 있고, 눈앞에서 바로 선생님의 시연을 확인할 수 있는 요리교실을 적극 추천합니다. 또 여러 사람이 한 팀을 이루는 만큼 서로 모르는 부분을 묻기도 하고, 친교, 정서적인 면에서도 도움을 받게 됩니다.
 

원래 요리에 관심이 있었나요?

그럼요. 14살 때부터 자취를 했기 때문에 요리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죠. 중2 때 김치를 담갔을 정도니까요. 군대에선 당연히 취사병을 했습니다(웃음).
 

그렇다면 ‘요리하는 가장’이겠네요?

네. 주말 아침이면 냉장고 문을 열어서 곧잘 아침을 차립니다. 참치김치찌개, 계란말이 같은 소박한 밥반찬만 만들어놔도 식구들이 좋아하죠. 집사람이 교사여서 수학여행 같은 학교 일로 집을 비울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제가 늘 식사를 책임졌어요.
 

전문적인 요리 수업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지난해 우연히 쿠킹앤(요리 수업 컨설팅업체) 정동수 대표를 만나 그가 진행하는 ‘행복한 남자들의 요리교실’이란 수업을 듣게 됐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총 4회 수업을 했는데 참치회덮밥, 등심스테이크, 닭갈비, 해물누룽지탕 등 손님 접대용으로 내놓을 만한 요리를 배울 수 있어 좋더라고요. 마지막 수업 시간에는 지인들을 불러 그동안 배운 요리를 선보이는 시간을 갖기도 했는데 집사람이 아주 좋아해서 뿌듯했습니다. 같이 수업을 들었던 분 중에 요리 배운다는 사실을 숨기고 그날 깜짝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회사 업무에 요리를 접목시킬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요리교실에 나가보니 혼자 뚝딱 음식을 만들 때와 달리 여럿이 힘을 합쳐 요리를 완성하고, 나눠 먹는 과정에서 화합, 소통, 배려 같은 긍정적인 기운이 생기더라고요. 이건 회사 운영에도 필수적인 요소거든요. 그래서 요리로 직원 교육을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제안했나요?

해외 주재원으로 나갈 직원들에게 비빔밥, 불고기, 잡채, 구절판 같은 음식을 가르쳤어요. 현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한국 음식을 직접 만들어주면 훨씬 좋은 인상을 줄 수 있거든요. 이 수업에 부인을 동행하게 했는데 다들 “이제부터라도 남편이 요리를 했으면 좋겠다”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더군요(웃음). 또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 중에 조별로 채소, 스낵, 과일 등을 활용해 회사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표현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 전에는 찰흙을 활용했는데 아무래도 활동 후 같이 먹는 시간을 갖게 하니까 훨씬 더 유연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더군요. 굉장히 반응이 좋아서 앞으로도 주재원,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요리 교육을 할 계획입니다.
 

아직도 요리를 멀리하는 분들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모든 관계의 갈등은 ‘먹는 것’ 앞에서 부드러워집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애들 어릴 때 목욕 한 번 같이 안 시켜줬다고 집사람이 많이 섭섭해했는데 때때로 식구들의 식사를 준비하며 만회할 수 있어서 다행이죠(웃음). 황혼에 쫓겨나지 않으려면 요리를 배워야 합니다.
 

괜찮은 남성 요리교실을 추천해주세요

요즘 대부분의 지자체에서는 ‘아버지 요리교실’ 이란 이름으로 ‘남성 전용 요리교실’을 열고 있습니다. 성황리에 운영 중인 강남구 평생학습센터, 양천구 여성교실, 서초문화원 등이 대표적인 예이죠. 서초문화원의 경우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이 열리며, 3개월가량 진행되는데 대부분 가정에서도 쉽게 선보일 수 있는 요리를 제시하고, 한식, 중식, 양식을 가볍게 다룸으로써 요리에 대한 흥미와 이해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입니다.
사설로 운영되는 ‘남성 요리교실’ 중에는 쿠킹앤(02-568-1003)의 ‘행복한 남자들의 요리교실’, 샘표 식문화연구소 지미원(02-3393-5593)에서 운영하는 ‘남자들의 맛있는 수다 쿠킹 클래스’ 등이 있습니다.
 

그가 선보인 요리는?

비빔밥, 불고기, 잡채. 그의 요리는 ‘실용성’에 포커스를 맞췄다. 평소 레시피에 적힌 대로 재료를 다 갖추기보단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최대한 활용, 대체하는 방법으로 음식을 만든다고. 그는 “불고기와 비빔밥, 잡채에 각기 다른 버섯을 넣기보단 한 종류로 통일해 사용해도 무방하다”며 “서로 재료가 중복되는 요리를 택해 가급적 재료를 단순화하는 것도 요령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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