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랭이떡으로 절망 속 인생 2막을 찾은 전업주부

기사 요약글

남편의 사업 실패로 집을 잃고 생계까지 책임지게 된 한 전업주부가 있다. 위기의 순간, 가족의 생존을 위해 뛰어든 식당에서 그녀는 뜻밖의 기회를 찾았다. 어릴 적부터 먹어온 조랭이떡으로 다시 일어선 그녀의 인생 2막 스토리.

기사 내용

 

 

 

 

오늘도 A한정식집에 조랭이떡을 배달하고 왔다. 벌써 3년 째 거래하고 있는 단골이다. 개성음식 전문점인 그 집에서는 내가 만든 조랭이떡만 사용한다. 요즘에는 포장 판매하는 기성 제품도 많아 쉽게 사서 쓸 수도 있건만 우리집 조랭이떡의 전통 방식 그대로의 손맛을 고집한다. 덕분에 나도 일거리가 있어 수입이 생기니 고마운 일이다.

 

 

영혼의 음식, 조랭이떡

 


부모님 두 분 모두 고향이 개성이다. 6·25 때 월남하신 어머니는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음식으로 달랬는지 개성 음식을 즐겨 만드셨다. 개성은 고려의 수도였던 때부터 음식 솜씨가 이어져 내려와 호화롭고 격식 높은 음식이 발달한 곳으로 꼽힌다. 그런 만큼 음식 만드는 데 손이 많이 간다. 그럼에도 음식 솜씨가 좋으셨던 어머니는 김장 때 보쌈김치를 빼놓지 않으셨고, 설에는 늘 조랭이떡국을 끓이셨다. 여름이면 애호박을 썰어 넣고 만두처럼 빚은 편수로 더위를 이겨내곤 했다.

 

어려서부터 개성 음식을 먹으며 자란 나는 서울 태생인데도 입맛은 완전 개성 토종이다. 특히 재미있는 모양, 부드러우면서도 탱글탱글, 쫀득한 맛으로 떡국 먹는 즐거움을 더하는 조랭이떡을 무척 좋아했다. 설이 가까워지면 어머니는 방앗간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을 뽑아왔다. 그러면 온 가족이 대나무로 만든 작은 칼을 하나씩 갖고 둘러앉아 조랭이떡을 빚는 게 익숙한 풍경이었다.

 

내가 이제 그 칼을 물려받아 어머니처럼 조랭이떡을 빚는다. 예전엔 우리 가족이 먹기 위해서였다면 지금은 내다 팔아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조랭이떡이 내게 주는 기쁨은 크다.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음식은 있다. 힘든 삶 가운데 지친 영혼이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음식을 ‘영혼의 음식’이라고 한다면 내게는 바로 조랭이떡이 그 것이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시작한 주방일

 


5년 전 남편이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해 제법 큰 규모로 운영하던 가구점을 날리고 쓰러졌다. 남편은 뇌출혈로 의식을 잃은 채 중환자실에 누워 있고, 살던 집마저 채권자들에게 넘어갔을 때 나 역시 막다른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남편은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퇴원했지만 후유증이 컸다. 한쪽 팔다리 마비, 감각이상, 언어장애가 와서 정상적인 일상 생활이 어려웠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두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집을 팔아 빚을 갚고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는 남편 병원비도 빠듯했다. 당장 먹고 사는 것뿐 아니라 거처할 곳도 문제였다. 일단 어머니 혼자 살고 계시는 친정집으로 들어갔고,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전업주부로 살림만 해오던 내가 이제서야 무언가를 찾는 건 막막하기만 했다.

 

어머니 고향 친구 중에 음식점을 하시는 분이 있었다. 개성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정갈한 한정식 집이다. 개성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어서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 식구도 종종 가던 곳이다. 어머니의 주선으로 우선 그 식당에서 일하기로 했다. 직장 경력이나 특별한 자격증도 없이 살림만 하던 내가 당장 돈을 벌기 위해 그나마 시작해볼 수 있는 게 주방 보조 일이었다.

 

그 집은 개성음식 전문점이니만큼 조랭이떡국, 개성만두국 등이 주요 메뉴 중 하나였는데 시판되는 떡이나 만두를 사지 않고 직접 만들어 쓰고 있었다. 조랭이떡과 만두는 원하는 손님들이 사 갖고 갈 수 있게 따로 판매도 했다. 오후 쉬는 시간에는 주인 할머니를 중심으로 직원들이 모두 둘러앉아 한쪽에서는 조랭이떡을 만들고, 또 다른 쪽에서는 만두를 빚었다. 나도 함께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조랭이떡을 만들었다. 어릴 때 집에서 늘 보던 익숙한 모습이었다.

 

 

 

 

주방보조로 일한 지 1년만에 찾아온 기회

 


아침 일찍 출근해서 종일 주방장을 도와 식재료를 손질하고, 음식을 담아내고, 조랭이떡을 만들고, 만두를 빚으며 1년 여를 지낸 어느 날, 주인 할머니께서 뜻밖의 제안을 했다. 조랭이떡을 전문적으로 납품해보지 않겠냐는 것. 좀 더 효율적인 식당 운영을 위해 아웃소싱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우리 친정 내력을 잘 아시는 까닭에 떡의 품질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신 듯 했다.

 

좋은 기회였다. 당장 월급은 못 받지만 고정 거래처가 이미 확보된 셈이고 점차 확장할 수도 있어 길게 보면 더 낫겠다 싶었다. 게다가 나이 드신 어머니께 살림이며 남편 뒷바라지까지 모두 맡기고 매일 출근하는 것도 죄송하던 터였다. 어머니께서도 조랭이떡이라면 눈 감고도 만들 수 있다며 함께 해보자고 하셨다. 어머니의 응원을 받으니 용기가 솟았다.

 

 

생계 걱정하던 전업주부에서 이제는 어엿한 사업가

 


그날부터 조랭이떡을 만들기 시작했다. 재활치료로 많이 좋아진 남편도 거들고, 바쁠 때는 아이들 손도 빌린다. 예전에 집에서 먹던 것처럼 좋은 쌀로 정성껏 만드니 품질이 좋다고 소문이 나서 납품처도 늘어났다.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하고 납품 기일을 정확하게 맞춰 신용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큰 돈은 아니라도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돈을 벌고 있고, 남편 건강도 많이 회복되었다. 아이들도 다 컸으며, 어머니도 건강하시니 더 바랄 게 없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고 즐겨 먹던 조랭이떡. 아버지와 동생들 대신에 남편과 우리 아이들이 둘러앉아 떡을 빚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내가 10살이던 40년 전 친정집 대청마루의 풍경이 겹쳐 보인다. 이제는 그 덕분에 우리 식구가 먹고 살고, 어엿한 인생2막을 살게 되었으니 진짜 내 영혼의 음식 아닌가.

 

 

기획 임소연 김경화 사진 배달의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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