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흥국탄광 사장 채현국 편

기사 요약글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

기사 내용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서릿발 같은 일침을 쏘아 붙이며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으로 등극한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그의 어록은 ‘꼰대’에 지친 사람들에게 신선한 반향이었고, 곧 SNS를 통해 빠르게 번져나갔다. 가감 없는 솔직한 ‘독설’로 인생 후배들을 뉘우치게 했던 그를 만나기 위해 꼬박 4시간을 달려 경남 양산으로 향했다. 말은 높이고, 허리는 굽힌 채 기자 일행을 마주한 그는 “어른은 무슨 그냥 할배요” 하며 너털웃음을 짓고는, 오밀조밀한 교정을 돌며 날카로운 촌철살인을 시작했다.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고 언급한 맥락을 묻자
그건 노인들에 대한 경고나 질책이 아니라 젊은이들에 대한 충고였어요. 그간 노인들이 살아온 세월을 보면 비겁해야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거든. 그런 사정을 이해하되 절대 봐주진 말아야 돼요. 원래 젊은 아들이었던 그들이 아비가 돼 썩고 말았듯, 지금의 젊은이들도 문제의식을 가져야 거름이 되고 씨앗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요즘 ‘시대의 어른’ ‘풍운아’로 곧잘 소개되곤 한다는 말에
어른들이 하도 어른 같지 않아서 나 같은 것한테 ‘어른’ 소리를 다 해요. 나는 학교 애들 아이스크림이나 빼앗아 먹는 철부진데 말이지. 풍운아도 과해요. 그냥 깡패가 딱 맞아. 작은 키가 콤플렉스라 그랬는지 남한테 지는 걸 용납을 못했어요. 앞에 가는 사람 떠다밀어서라도 일등을 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친구들이랑 언쟁이 붙을 때면 쫙 째려보면서 “임마 니 내보다 키 크다 가만있어라” 안 그랬습니까(웃음). 작고 약한 친구는 그래도 봐줬어요.

나이에 관한 생각을 묻자
나이로 존중받고 싶거든 인류의 나이부터 존중해야 해요. 누구에게나 똑같은 하루가 주어지지만 어떤 이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어떤 이는 하루하루 죽어간다는 점이 다릅니다. 늙어감에 따라 지혜로워진다면 전자고, 노회해진다면 후자죠. 나이 든 사람들이 곧잘 ‘열심히 살았다’는 말을 하는데 그 말에는 인정받고, 대접받고 싶은 심보가 숨어 있어요. 잘하는 것, 신나서 하는 것, 열심히 하는 것은 비슷비슷해 보여도 사실 다 달라요.

왜 신문과 뉴스를 보지 않는지 묻자
오늘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단편적으로 아는 것보다 내가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다 알진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늘 그 점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내 말이 다 맞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우리는 ‘잘못 알고 있는 것, 틀린 것’만 고정관념을 생각하지만 사실 확실히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에요. 심지어 해가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진다는 사실도 뒤바뀔 수 있는 고정관념이죠.

왜 자꾸 불행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지 묻자
자기를 자꾸 착각에 빠뜨리거든. 남이 좋다면 내 기준과 상관없이 왠지 모르게 그게 좋은 것 같은 거예요. 대표적인게 와인과 캐비아인데 우리네 입맛에 다 그렇게 맞을 수가 없어요. 차라리 나는 막걸리에 명란젓이 더 맛있더라고. 그런데 비싸다니까 별로라고 말하면 별난 놈이 될 것 같아서 잠자코 있는 거라. 하물며 맛조차도 통념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데, 다른 문제야 오죽하겠어요.

왜 사업을 정리했는지 묻자
“돈이 그냥 벌리진 않아요. 그만큼 나쁜 짓을 해야 돈이 들어오거든. 나 때문에 죽어간 광부들, 그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죠. 그런데 더 큰돈을 벌게 생겼으니 깜짝 놀랐죠. (1960년대 말 한창 사업이 성공 가도를 달리던 그때 그는 한 달에 100만 달러의 순이익을 올렸다.) 욕망의 귀신이 되도록 훈련을 받았으니 다들 성취가 뭔지도 모르고 쫓아다니지만, 권력과 돈을 쥐고도 행복한 사람은 절대 없어요. 그건 진짜 성취가 아니지. 뭣하러 돈 앞에 종살이를 합니까.

은퇴 후 성공적인 삶의 방향을 묻자
내가 지금껏 세상에 맞춰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부하 직원이든 가족이든 자기한테 맞추도록 유도하면서 살기도 했거든요. 은퇴 후 젊게 살려면 새로운 세상에 내가 맞추는 수밖에 없어요. 자발적으로 일거리를 찾고 나무를 심고 산보를 나가고 하면서 새 습관을 들이는 거지. 그동안 있는 대로 악습에 절어 살다가 얼마나 좋아요.

자식에 관한 질문에
애비, 애미가 얼마나 시원찮은지 아직 시집, 장가 안 간 애들이 둘이에요. 그래도 빨리 결혼하라는 얘기는 한 번도 안 했어요. 성인인데 내가 지들한테 잔소리할 건 아니지 않아요. 애들 입장에서는 아마 ‘부모가 압박을 가했으면 벌써 갔지’ 하는 핑계 대고 싶을걸요. 사람이 자기 합리화 없인 하루도 못 살거든.

학교 내 바위에 적힌 ‘쓴맛이 사는 맛’ 이란 뜻을 묻자
학생들은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뜻으로 곧잘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이건 옛날 호된 시집살이를 견뎠던 우리 할머님들이 하셨던 말인데 다 지나서 생각해보니 쓴맛도 결국 사는 맛이라는 결론이 내려지더라는 거죠. 쓴맛마저 사는 맛으로 느껴질 만큼 긍정을 할 수 있는데 다른 맛이야 뭐 말할 것도 없지.

기자의 나이를 물은 직후
학생 때부터 사회 초년생인 서른다섯 살까지는 기백이 있어요. 권리는 적고 외부적인 압박을 견뎌야 하는 순수한 때라고 볼 수 있죠. 서른다섯 살부터 쉰 살까진 이제 일을 밀고 나가는 배짱이라는 게 생겨요. 거기까지만 해도 괜찮은데 쉰이 넘고 힘과 권력이 생기면 뻔뻔함이 되는 거라. 그 뻔뻔함을 넘어서면 이제 악마 같은 놈이 되는 거지.

채현국 이사장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중앙방송 (현 KBS) PD로 입사했지만, 3개월 만에 그만두고 아버지가 운영하던 강원도 흥국탄광을 맡게 된다. 이후 20개가 넘는 계열사를 꾸려 한때 납세 순위 2위를 기록하기도. 1970년대 초반 모든 사업체를 정리해 동업하던 친구들, 광부들에게 나눠준 뒤 현재까지 효암학원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최근 그의 인터뷰를 정리한<풍운아 채현국>이라는 책이 발간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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