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치매 환자에게 오해하고 있는 것들

기사 요약글

치매 돌봄이 어려운 것은 환자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치매환자 보호자 교육 프로그램 'I-CARE'를 개발한 정지향 교수는 치매 증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기사 내용

 

*치매 명의가 말하는 치매 돌봄 시리즈*

1편. 아주대학교병원 홍창형 교수, 치매환자를 대하는 '감정 대화법'

2편. 한림대학교성심병원 홍나래 교수, '완벽한 돌봄'의 강박에서 벗어나기

3편. 이대서울병원 정지향 교수, 치매환자 보호자를 교육하는 'I-CARE 프로그램'

4편. 분당차병원 이강수 교수, 최소한의 자존심과 자아를 지켜주는 방법

5편. 건국대학교병원 한설희 교수, '지혜로운 돌봄'을 위해 꼭 알아야 할 것들

 

정지향 교수는 이대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이자 웰에이징센터장을 맡고 있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13년 동안 강서구 치매안심센터장을 맡아 치매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대한치매학회로부터 국민포장을 수상했다.

 

 

 

 

가족이 치매 진단을 받으면 억울함을 호소하는 보호자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보호자들에게 환자가 치매에 걸렸다고 말씀드리면 굉장히 고통스러워하세요. 암 진단을 받은 것처럼 우는 분도 많고요.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왜 우리 가족한테 치매가 생겼느냐’는 거예요. 그럼 저는 교통사고와 같은 거라고 말해요.

운전할 때 교통사고가 나지 않도록 항상 대비하잖아요. 다른 차가 끼어들면 부딪힐까 봐 속도를 줄이고, 앞차가 급제동할까 봐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조심히 운전합니다. 그런데 안전 운전을 해도 교통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어요. 결국 교통사고라는 건 항상 마음속으로 조심하지만 100% 예방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죠. 마찬가지로 치매도 누구한테 생길지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치매환자의 단편적 모습 때문에 가족들이 치매환자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도 있나요?

 

 

치매 증상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환자의 행동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치매환자는 기억력이 점차 떨어지기 때문에 같은 질문을 반복하곤 합니다. 환자 입장에서 매번 새롭게 던지는 질문인데 보호자는 그것이 자신을 귀찮게 하거나 투정을 부리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환자의 행동을 이해하기보다 오히려 화를 내거나 통제하려고 하죠. 

 

 

자꾸 되묻는 행동이 치매 때문에 생기는 증상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거군요. 

 

 

그렇죠. 이뿐만 아니라 치매환자들은 종종 남을 의심하는 증상을 보이는데요. 분명 환자 본인이 했던 행동인데도 기억을 못하기 때문에 다른 가족이 그 행동을 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손자가 용돈을 줘서 서랍에 넣어놨는데, 그걸 잊어버리고 다른 가족이 가져갔다고 생각하는 식이죠. 이런 이유로 치매환자가 의심을 하는 건데 보호자는 환자가 자신을 미워해서 의심한다고 생각해요. 의심하는 행동도 되묻는 행동과 마찬가지로 치매 때문에 생기는 증상인데 말이죠. 제가 ‘I-CARE 프로그램’을 만든 것도 이러한 오해를 풀기 위해서였어요.

 

 

그럼 ‘I-CARE 프로그램’은 치매환자 보호자들을 교육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가요? 

 

 

네. 치매환자 보호자 교육 프로그램으로는 국내 최초예요. 예전에는 치매환자가 망상이나 의심 증세를 보이면 보호자들이 그런 행동을 견디지 못해 더 강한 약을 요구했어요. 그럼 환자들의 인지기능은 더 떨어지고 심하면 파킨슨병이 생기는 부작용까지 겪었죠. 치매환자에 대한 낮은 이해도가 환자의 증상을 악화시킨 거예요.

보호자들이 치매환자에게 나타나는 행동을 이해하면 강한 약을 쓰지 않아도 되고, 오해를 하지 않아 환자들의 행동에 훨씬 관용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실제로 ‘I-CARE 프로그램’을 두 달 동안 진행하고 나서 보호자들이 환자 때문에 느끼는 우울감이나 고통의 수치가 통계학적으로 확실히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보호자들이 치매환자를 돌보는 게 처음일텐데, 꼭 기억해야 할 점이 있을까요? 

 

 

결국 치료의 핵심은 약입니다. 환자가 약을 잘 먹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약과 관련된 병원을 하나로 통일하는 게 좋아요. 그래야 헷갈리지 않고 잘 챙겨 드실 수 있거든요. 그게 어려울 때는 약국이라도 하나로 통일하고 약을 최대한 간소화해야 합니다. 하루에 약을 여러 번 먹는 것보다 한두 번 정도 먹는 것이 간단하고 좋지요. 그리고 일반적으로 의사들은 약을 처방할 때 식후 30분으로 안내하지만, 식후에 바로 먹도록 하는 게 좋아요. 30분 후에 드시라고 하면 약 먹는 걸 항상 잊어버려요. 

 

 

스마트폰이 치매환자와 보호자에게 효자 노릇을 한다는 기사를 본 적 있습니다. 

 

 

효자나 마찬가지죠. 저는 보호자들에게 환자들이 스마트폰에 더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해요. 요즘 어르신을 위한 스마트폰을 보면 어느 정도 인지장애가 있더라도 유튜브도 열어볼 수 있고 카톡도 할 수 있거든요. 나중에 환자가 길을 잃었을 때 내비게이션 앱으로 길을 찾을 수 있고, 길을 잃고 갑자기 쓰러졌을 때 스마트폰으로 위치 추적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환자의 인지활동을 돕는 도구가 되기도 해요. 병원에서 매일 인지치료 프로그램을 보내면 환자는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숙제하듯 회신을 하는 식이죠.

 

 

그 밖에 치매환자 보호자가 꼭 알아야 할 사회제도나 서비스가 있을까요? 

 

 

일단 치매 진단을 받으면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바로 신청하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쓰라고 말씀드려요. 인공 삽관, 혈액투석, 심폐소생술 등 회생 불가능한 상황이 됐을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혀두는 거죠. 초기 치매에서는 이것이 가능하지만 나중에는 환자가 자신의 의향을 똑바로 밝힐 수 없는 상태가 되니까 미리 해두는 게 좋습니다. 

 

 

치매친화사회 점수를 매긴다면 우리나라는 몇 점 정도일까요? 

 

 

70점 정도요. 왜냐하면 암의 경우 본인이 걸리지 않아도 매우 많은 분이 암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요. 그래서 동정심은 아니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내재하고 있죠. 그런데 치매에 대해서는 아직 배타적이고 공감도 결여돼 치매환자를 돌보는 보호자들이 자신의 고통을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어요.

유일하게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이 병원인데, 사실 의료진은 너무 바쁘거든요. 현재 치매안심센터가 있긴 하지만 피상적 교육만 받은 상담원들이 많기 때문에 보호자들의 다양한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해줄 수 있는 환경은 미흡한 편입니다. 

 

 

치매친화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 있다면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치매를 너무 희화화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어르신을 집중적으로 케어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강서구에 ‘시니어스타워’라는 곳이 있어요. 어르신들의 주거부터 의료·편의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죠. 각자 생활공간은 따로 있지만 식사와 약은 한 공간에서 제공해줘요. 거기에 사우나, 도서관, 수영장도 있어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죠. 대신 입주비가 많이 비싸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분들만 이용할 수 있죠.

이런 커뮤니티 시설을 80세 이상 어르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면 치매를 적극적으로 관리 및 예방할 수 있고, 내 가족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어르신들까지 챙기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기획 우성민 사진 채우룡

 

 

[이런 기사 어때요?]

 

>>쓰레기 버릴 때마다 헷갈려, 올바른 분리수거 완결판

 

>>막장이라 욕해도 결국 당신이 <펜트하우스>를 보는 이유

 

>>벌레자국부터 히터 냄새까지, 달인의 완벽세차법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