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돌봄의 시작, 치매 환자의 감정 읽기

기사 요약글

홍창형 교수는 치매환자를 대할 때는 인지기능보다 환자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라고 말한다. 환자의 감정을 세심하게 읽을수록 치매환자가 더 오래 건강할 수 있다.

기사 내용

 

*치매 명의가 말하는 치매 돌봄 시리즈*

1편. 아주대학교병원 홍창형 교수, 치매환자를 대하는 '감정 대화법'

2편. 한림대학교성심병원 홍나래 교수, '완벽한 돌봄'의 강박에서 벗어나기

3편. 이대서울병원 정지향 교수, 치매환자 보호자를 교육하는 'I-CARE 프로그램'

4편. 분당차병원 이강수 교수, 최소한의 자존심과 자아를 지켜주는 방법

5편. 건국대학교병원 한설희 교수, '지혜로운 돌봄'을 위해 꼭 알아야 할 것들

 

홍창형 교수는 아주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이자 수원시 행복정신건강복지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다. 2013년 치매 예방 프로그램 ‘금메달 사업’을 개발하고, 2019년 국회자살예방대상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았다.

 

 

 

 

교수님에게는 ‘환자와 가족 입장에서 진료하는 의사’라는 수식어가 따릅니다. 어떤 관점으로 진료를 하시나요? 

 

 

치매의 정의를 살펴보면 인지기능이 나빠져 일상생활을 못하는 상태라고 나와 있어요. 진료할 때마다 ‘백 점 만점에 몇 점’ 하는 식으로 인지기능이 얼마나 더 나빠졌는지 계속 평가하는 거죠. 이 병의 특성상 인지기능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약으로 속도를 늦추긴 해도 결국 나빠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인지기능에 초점을 맞추면 모두가 좌절해요. 환자는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는 자신을 수치스러워하며 자존감이 떨어지고, 보호자도 속상하고 우울해지죠. 치매 치료는 인지가 아니라 감정에 초점을 맞춰야 해요.

 

 

환자의 감정 상태가 중요하다는 말씀이죠? 

 

 

자주 웃고, 즐거워하고,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치료 목표로 삼으면 환자의 기억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치료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어요. 관점을 바꾸지 않으면 증상이 더 나빠졌다고만 생각하며 계속 절망하게 돼요. 인지훈련을 할 때도 환자의 감정을 살피고 상처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해야지, 잘하고 못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특히 60~65세 조발성 치매환자는 진행이 빠르기 때문에 인지기능이 남아 있을 때 얼마나 더 웃고 행복할 수 있느냐를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결국 보호자가 환자의 감정을 세심히 읽어야겠네요. 

 

 

그러려면 주보호자가 건강해야 해요. 긴병에 효자 없다고, 처음에는 열심히 잘 해드리려고 하지만 1년, 2년 지나면 점차 힘들어지는 시기가 찾아옵니다. 그런데 가끔 찾아오는 친척이나 지인들이 그것을 보고 잘못을 지적하고 잔소리를 하면 가족 불화로 이어지죠. 주보호자 중에는 화병이나 우울증, 소진증후군을 앓는 분도 있어요. 보호자의 정신 건강은 환자 상태와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보호자로 인해 환자의 치매 증상이 더 나빠지기도 합니다.

 

 

사실 보호자 입장에서는 예전과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는 환자를 바라보는 게 쉽지 않지요.

 

 

보호자는 반드시 병의 경과에 대해 이해해야 해요. 치매에 걸리면 어떤 증상이 생기고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런 지식이 없으면 치매 초기 진단을 받고도 ‘당장 대소변을 못 가리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에 빠져요. 초기에는 일상생활에 큰 문제가 없고, 소소한 증상이 있더라도 관리를 잘하면 10년까지 괜찮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면 놀라는 분도 있어요.

 

 

 

 

2009년과 2013년, ‘금메달 사업’이라는 치매 예방 프로그램으로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으셨습니다. 어떤 사업인가요? 

 

 

치매 예방 수칙으로 유명한 ‘진인사대천명(진땀나게 운동하고 인정사정 없이 담배를 끊고 사회활동·대외활동 많아진 천박하게 술 먹지 말고 명을 연장하는 식사를 하자)’이 있죠. 모두가 이것이 좋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실천하지 못하는 게 문제죠. 그래서 동기부여를 통해 실천을 격려해보자는 취지로 메달이라는 보상을 만든 겁니다. 실천할 때마다 스티커를 붙여줬는데, 확실히 꾸준히 실천하는 사람이 늘어났어요. 인간의 행동을 바꾸는 데는 동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 결과죠.

 

 

동기는 곧 보상이라 볼 수 있겠네요? 

 

 

핀란드에서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는 핑거스터디(FINGER Study)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이를 국가별로 적용해 실험해보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슈퍼브레인’이란 명칭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요. 혈관 관리, 인지훈련, 운동, 영양 교육, 동기 강화로 구성돼 있고 제가 맡은 부분이 동기 강화예요. 경도 인지장애 환자나 치매 예방이 필요한 150명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프로그램을 실천할 때마다 가족의 응원이 담긴 동영상을 보여드리는데,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고 있어요.

 

 

가족의 응원 영상이 효과가 있다는 건 결국 보호자의 보살핌과 관심이 동기부여가 된다는 거네요?

 

 

저는 ‘패밀리 코치’라고 표현해요. 치매환자의 가족이 해야 하는 역할이 바로 이거예요. 환자의 의욕이 떨어질 때 전문적으로 환자를 격려해주는 거죠. 일본은 국제 치매케어전문가라는 자격증도 있고, 기관에서 관련 교육이 많이 이루어져요. 50시간이 넘는 교육이지만 자발적으로 배우는 사람이 많아요. 치매는 가족이 준전문가가 되어야 효과적으로 보살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케어하기 어려울 정도로 증상이 심해지면 요양병원과 요양원을 생각하게 되는데요. 

 

 

그곳이 마지막이라는 인식 때문에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분이 많습니다. 간혹 보호자들이 “언제 요양원을 가야 하나요?” 하고 물어보시는데, 사실 정답은 없어요. 보호자가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요. 대소변을 못 가리고 걷지도 못하는 환자를 업어가며 돌보는 보호자가 있는 반면, 한 번 대변 실수를 한 걸로 곧장 요양원에 보내는 보호자도 있어요.

 

 

어느 강의에서 치매환자인 할머니를 돌보신 이야기를 하셨어요. 경험자로서 해주실 조언이 있다면요? 

 

 

치매에 걸리더라도 관리를 잘하면 문제 행동이 없는 ‘예쁜 치매’로 가족들이 함께 지낼 수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예민함, 공격성, 환청, 망상 같은 문제 행동은 약으로 조정돼요. 이렇듯 치매환자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는 이상적인 치매 사회는 어떤 것인가요? 

 

 

지금 치매는 남녀노소 모두의 관심사고, 국가에서도 중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돼 지원을 하고 있거든요. 치매환자를 사회적 약자로 정의하고 이를 관리할 수 있는 곳에 예산을 편성한 거예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점을 넓히면 이 모델이 더 많은 소외계층에게 적용될 수 있어요. 노인 정신 건강이든 신체장애 문제든 지금처럼 인프라와 서비스를 적용해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는 거죠. 저는 사회통합의 키워드가 치매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획 문수진 사진 채우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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