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리뷰, 은퇴를 준비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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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이라는 낯선 나라 by 홍혜원


만일 노인이 된 느낌이 어떤가를 알고 싶다면, 먼지 낀 안경을 쓰고 귀를 솜으로 틀어막은 뒤 커다랗고 무거운 신을 신고 장갑을 낀 채 정상적으로 하루를 보내보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로 이민을 간다고 생각해보자. 꼭 필요한 건 바로 가이드북일 것이다. 행동주의 심리학의 거목으로 알려진 스키너의 저작 <스키너의 마지막 강의>는 노년이라는 나라를 여행하기 위한 가이드북과도 같다. 그의 나이 78세에 집필한 이 책은 즐겁게 나이 드는 지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마치 이웃집 할아버지와 환담을 나누는 듯 문장 하나하나가 세심하기 그지없다. 약 먹는 것을 자꾸 잊어버린다면 아침 저녁 사용하는 칫솔에 약 주머니를 달아놓으라든지, 비가 올 것 같은 날이면 즉시 문고리나 가방손잡이에 우산을 걸어놓으라는 유머 섞인 조언까지 덧붙인다. 별로 길지 않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어느덧 노년이라는 불가해한 강이 그리 두렵지만은 않다. 그가 때론 시시콜콜해 보이기까지 한 문장들을 책 곳곳에 남겨놓은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그건 바로 누구나 겪게 되지만 결코 미리 경험할 수 없는 노년이란 나라에 먼저 이민 간 인생 선배로서 건네는 따뜻한 조언이었다.

 

 

너무도 불행한 아침이 왔다 by 최동석


뒷산에 올라가 “나는 실직자다!”라고 한 번만 크게 외쳐보자. 그러면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데, 그다음에는 금세 마음이 후련해진다. 세상에 실직자가 나 혼자인 것도 아니고, 실직했다고 죽을 죄를 지은 죄인인 것도 아니다. 단지 아침에 눈을 떠서 출근할 곳이 없을 뿐.

솔직히 한창 나이인 40~50대에 갑자기 실직하면‘답’이 없다. 모아놓은 돈도 없고, 당장 수입이 끊기면 생계가 막막해진다. 그럼에도 저자는 실직을 회피할 수 없으면 실직을 데리고 놀면 되고, 살림이 궁하다면 아껴 쓰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마치 “암세포도 생명인데 죽이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한 어떤 드라마 속 누군가가 생각나지만, 얼마 안 되는 퇴직금을 받아 급한 마음에 창업했다가 빈털터리가 되는 다른 퇴직자들을 생각해보라. 시궁창 같은 현실에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보다는 자신을 괴롭히는 현 상황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발전적이다. ‘남 탓하지 않기, 배우자와 잘 지내기, 꿈 명함 갖기, 죽음 체험해보기’ 같은 방법이 듣기 좋게 포장된 사탕발림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어느 날 갑자기 백수가 된 저자가 직접 체득한, 그 누구도 백수가 되기 전까진 그 효과를 알 수 없는 방법들이다.

 

 

후회로 깨우치다 by 장혜정


‘100세 시대’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라· 자신만의 취미를 세 개 이상 만들라· 후배와 동료들에게 희망을 준 사람으로 기억되라· 자식에게 돈과 인생 모두를 걸지 말라· 아내와는 무조건 친해두라· ‘불혹’ 하지 말고 ‘열정’ 하라· 꿈을 담은 자신만의 명함을 만들라· 혼자 사는 기술을 지금부터 배우라

학창 시절 국사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 책은 300명의 은퇴남들이 전한 구구절절한 후회의 기록이다. 그들의 리스트에 ‘은퇴’ 하면 으레 연상되는 연금, 퇴직금, 재테크, 노후 대비 자금 등 ‘돈 얘기’는 없다. 오히려 ‘악기 하나쯤 연주할수 있었더라면’, ‘글을 썼더라면’, ‘나만의 멋과 매력을 가꿨더라면’, ‘자식 투자에 대한 상한선을 정했더라면’, ‘여자들처럼 사는 법을 배웠더라면’ 등 너무 소소해서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리스트가 잔뜩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다. 우리가 아무 때 나 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들이 사실은 인생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다는 것. ‘멈추고 나서야 비로서 보이는 것들’을 그들은 후회라는 포장지에 담아 인생 후배들에게 선물했다. 한창 일과 경력에 몰두할 30~40대에겐 인생의 풍향계가 되어주고, 은퇴를 겪은 50~60대에겐 따뜻한 위로를 건넬 이 책은 축 처진 아버지의 어깨를 바라볼 자식에게도, 부쩍 겁 많고 소심해진 남편을 대하는 아내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진짜 부부 생활은 은퇴 후부터 by 김현경


아내가 퇴직한 남편에게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세 가지는? “어디 가려고?”, “몇 시에 들어와?”, “내 밥은?”이라고 한다. 남편의 입장이기도 한 필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내 밥은?” 이 말은 상대를 속박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고 치자. 하지만 “어디 가?”, “몇 시쯤 들어올 건데?”는 한집에 같이 사는 가족이라면 당연히 궁금한 건 아닐까?

은퇴한 남편은 갈 곳이 없어 집 안에 ‘방콕’하고 아내는 그런 남편 때문에 자유를 빼앗겨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 바로 당신의 얘기가 아닐까? 이 책은 ‘애물단지’ 신세가 되어버린 남편과 그런 남편과 남은 인생을 즐겁게 살고 싶은 아내에게 유용한 가이드를 제공한다. 저자가 권하는 ‘은퇴 후 부부 생활’의 핵심은 이심이체. 즉 너무 붙어 있으려 하지 말고 서로 ‘가장 가까운남’이 되라는 것. 구체적인 방법으로 각방을 쓰며 저녁 식사 후에는 취미생활 등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것을 권한다. 은퇴 생활의 질을 결정하는 건강과 자산관리에 대한 실제 사례는 물론 봉사활동과 죽음에 대한 조언도 풍부하다. 책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부부 관계를 만들고 더 나아가 인생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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