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아이콘에서 실패 홍보대사로, 성신제 대표

기사 요약글

누군가 말한 것처럼, 삶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실패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되돌아볼 때다.

기사 내용

 

해당 콘텐츠는 2019년 진행된 인터뷰 내용을 재가공하였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국내 프랜차이즈업계 신화의 몰락

 

 

서울 개포동의 평범한 주택가 골목에 위치한 16㎡(5평) 남짓의 작은 공방에서 일흔을 막 넘긴 백발의 노인이 매일 마카롱을 만든다. 주인공은 바로 지지스코리아의 성신제 대표.

 

과거 프랜차이즈 업계의 대부라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풍채 좋은 사업가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는 이 작은 공방에서 매 순간 존재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성신제 대표는 1985년 국내에 피자헛을 들여오면서 큰 성공을 거뒀다. 1994년 국내 개인 종합소득세 1위를 기록하며 ‘성공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그때 그가 현금으로 낸 세금액만 무려 110억 원이다.

 

하지만 그 후 뜻하지 않게 본사와 경영권 분쟁을 겪으면서 결국 사업권을 본사인 펩시코사(현재 피자헛의 소유권은 ‘얌 브랜즈(YUM! Brands, Inc.)’에 있다)에 넘기게 됐다. 뒤이어 시작한 케니로저스 로스터스 치킨은 외환 위기로 문을 닫았고, 자신의 이름을 건 ‘성신제 피자’로 재기에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 2007년 부도를 맞았다.

 

“망했다고 하는데도 사람들은 제가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큼은 되겠지 하며 오해하더라고요. 부자는 망해도 3대가 먹고살지 않냐고 하면서요(웃음). 그런데 정말 무일푼 신세가 됐어요. 아침에 눈을 떴는데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오늘은 아침 먹고 나갈 수 있겠구나’ 생각할 정도였죠. 가족, 특히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고 면목이 없었어요.”

 

사업이 실패하자 하루 종일 울리던 전화기가 조용해졌다. 찾아오는 사람이라고는 빚쟁이들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망연자실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금세 마음을 다잡고 사업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전부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잘 다루지 못했던 PC를 공부했다.

 

대중교통을 즐겨 타는 습관도 그때 생겼다. 컵케이크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그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1년 5월, 암 진단까지 받았다.

 

“젊은 시절부터 워낙 운동을 좋아해서 온몸이 근육 덩어리였어요. 덕분에 건강 하나만큼은 자신했죠. 어느 날부터 속이 거북하고 화장실 가는 것이 불편했는데, 병원을 안 갔어요. 단돈 10원이라도 아끼려고요. 다른 건 몰라도 몸한테 배신당할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웃음).

 

의사가 나한테 ‘대장암이 3기, 간암이 2기입니다. 각오 단단히 하세요’ 하는데 몇 초 안 되는 사이에 머릿속이 하얘지더라고요. ‘인생이라는 게 뭐 이래?’ 싶더라고요. 그런데 정작 나는 슬프고 화날 겨를도 없었어요. 그 얘기를 옆에서 같이 듣던 아내가 무너져 내렸거든요. 견뎌야겠다는 생각밖엔 안 들었어요.”

 

 

부와 명성은 내가 아니다

 

 

그때가 65세 되던 해였다. 이미 전이가 시작된 암은 손쓸 틈도 없이 온몸으로 퍼졌다. 폐, 위, 대장, 간까지 번져 수술만 열아홉 번을 했다. 그 사이 독한 항암 치료와 방사능 치료도 병행했다. 가족들에게 아픈 내색을 할 수 없어 고통이 찾아올 때마다 어금니를 꽉 물었더니 치아까지 망가졌다.

 

“암 병동에 가면 다들 눈동자에 힘이 없어요. 암은 내려놓기 시작하면 금방 갑니다.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려고 병동 복도를 걸으면서 낯익은 사람들도 여럿 봤어요. 그러다가 ‘어, 저 사람 눈빛에 힘이 없네. 저러면 안 되는데’ 싶으면 몇 달 있다가 예외 없이 뉴스에 부고가 떴습니다. 그러니 이가 부서져라 버틸 수밖에요.”

 

 

 

 

읽고, 쓰고, 걸으면서 나를 찾다

 

 

그의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4개월에 한 번씩 검사를 받고 그 사이 몸에 이상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체크해야 한다. 때문에 그는 우스개로 “4개월에 한 번씩 인생이 갱신되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여러 번 숨을 골라야 겨우 들을 수 있는 얘기를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툭툭 뱉었다. 성신제는 그런 사람이다. 그 많던 재산이 신기루처럼 사라졌을 때도 그는 특유의 긍정 에너지를 잃지 않았다.

 

“새벽에 맺힌 이슬, 땅속에 스민 물이 냇가를 이루고 강물이 돼서 결국 바다로 가잖아요. 저는 돈도 물과 같다고 생각해요. 돈이 나를 거쳐서 더 큰 곳으로 갔을 뿐이지, 그게 원래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돈은 돈이고, 나는 나예요. 돈이 없어졌다고 내가 없어진 게 아니라는 의미죠.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것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삶의 중심에 내가 아니라 재산, 성공, 명예만 있으면 혹시라도 실패했을 때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돼요. 실패하더라도, 나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해요. 그리고 내일을 또 살아가는 거예요.”

 

지금 작업하는 공방을 차린 건 3년 전이다. 그동안 그는 집이 있는 수원과 공방이 있는 개포동을 매일 아침 대중교통으로 오갔다. 수많은 사람과 같은 버스, 같은 지하철에 몸을 싣고 아침에 나와 마카롱을 만들고, 글을 쓰는 일상을 반복했다. 요즘은 그저 매일 할 일이 있음이 감사할 뿐이다.

 

수많은 사람과 진솔하게 나눈 이야기와 자신의 생각을 담은 책 <괜찮아요>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에서 조금이나마 인생의 힌트를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각자의 해답은 각자 찾아가야 해요. 성공한 사람이라고 해서, 또는 삶의 경험이 많다고 해서 모든 면에서 내가 누군가의 등대가 되어줄 수는 없어요.

 

요즘 흔히 겪는 갈등이나 고통은 우리 사회가 성장하기 위해 겪어야 할 성장통 같아요. 이를 해소해 줄 수 있는 건 결국 소통이라고 생각하고요. 각자 자기 얘기하기 바쁜 시대에 잠시나마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고, 그 안에서 나름의 통찰이나 해답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썼어요.”

 

 

그는 힘든 사람들에게 “읽고, 쓰고, 걸으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면 복잡했던 마음도 어느덧 정리가 되고, 일순간 ‘아!’ 하고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그는 지금도 매일 스스로에게 말한다. 잘해왔다고, 매일 할 일과 소명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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