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창공원 부근의 한 갤러리 카페. 카페이면서 사진 갤러리다. 이곳에서는 프로 사진작가가 아닌 사진이 마냥 좋아 부지런히,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는 평범한 사람들의 작품들이 주로 전시된다.
아마추어 사진가 강미순 씨의 첫 개인전 ‘유량(流量)’. 벽에 전시된 사진들은 모두 바다, 바위, 바람, 파도, 포말을 포착하고 있다. 수면 위 솟아 있는 바위의 윤곽들은 마치 바다 위 산처럼 표현되어 있다. 하얀 포말은 구름이 덮인 바다처럼 보인다.
아름답지만 평범한 풍경과 대상을 특별하면서도 순수하게 찍은 사진들이다. 작품들은 그윽한 고요, 몽환적 신비가 느껴진다. 피사체를 향한 호기심과 경탄, 설렘과 열정으로 충만한 서사가 순수하게 담겨있다.
Q. 전시회는 어떻게 열게 되었나요?
갤러리 카페 사장이기도 한 사진가인 신미식 작가께서 전시를 제안했어요. 사진에 입문한 지 이제 겨우 2년도 안 된 사람에게 개인 전시라니 너무 놀랐죠. 그냥 너무 좋아서, 그 즐거움이 너무 충만해져서 찍은 사진들인데 전시는 또 다른 차원이잖아요.
하지만 전시 자체가 배움의 장이라며 용기를 주신 덕분에 예정에 없이 전시회를 열게 되었어요. 아마추어 작가라는 말 자체가 저에겐 너무 과분합니다.
Q. 이번 전시회 제목이 ‘유량(流量)’입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유량이란 일정한 시간에 흐르는 물의 양이란 의미입니다. 신 작가님이 제목을 정해주셨어요.
전시된 작품들은 대부분 거센 파도의 흐름을 장노출로 찍은 사진들이에요. 짧게는 2분, 길게는 16분 정도 시간을 두고 질감을 보며 담아낸 장면들입니다. 파도가 흐르듯 내 마음도, 우리 인생도 흐른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습니다.
Q. 전시된 작품들을 소개한다면?
지난해 9월부터 ‘바다’를 주제로 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그중 17개의 작품을 선정했어요. 카메라를 들고 바다, 파도, 바위와 마주하면 잔잔한 설렘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행복으로 차오른 마음으로 바라본 자연은 고요한 평화였습니다. 제 마음에 담아진 평안함을 사진으로 전하고 싶어요.
특히 애착이 가는 작품은 지난 11월경 제주도 강정천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강정천의 물줄기를 2시간 반 동안 머무르며 담아냈죠. 바다라는 최종 목표까지 흐르고 흘러 마침내 세찬 물줄기로 낙하하는 강물, 그러나 그 순간은 무척 고요했습니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문득 우리 삶도 시간을 따라 흐르는데 왜 많은 것들을 자꾸만 가두고 쥐며 놓치지 않으려는가, 물처럼 흘려보내면 고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Q. 장노출 사진을 선호하는 이유는?
사진을 빛의 예술이라고 하죠. 기다림과 또 우연한 순간의 미학이죠. 장노출로 찍으면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느낌을 담을 수 있어 흥미로워요. 장노출 사진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장면을 담아내죠. 훨씬 더 새롭고, 신선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어요.
Q. 사진은 어떻게 배웠나요?
2년 전쯤 아이슬란드를 여행했어요. 눈앞에 펼쳐진 아이슬란드 자연의 고요한 아름다움에 감탄했습니다. 제대로 사진에 담고 싶더군요. 여행에서 돌아온 후 문화센터 사진 강좌에 바로 등록했어요. 스마트폰 카메라 사진 강좌를 6개월 정도 배웠어요. 그다음에는 카메라를 구입해 제대로 사진을 배우고 싶어졌죠.
무작정 포털 검색을 통해 개인 선생님을 찾았어요. 좋은 선생님을 만나 너무 즐겁게 공부했지만 제가 주부이다 보니 계속 개인 교습을 받기에는 비용 부담이 컸어요. 이후로는 사진 아카데미에 등록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아카데미에서 사진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출사를 다니다 보면 사진 고수들을 종종 만나게 돼요. 프로 작가분들도 많죠. 그분들을 통해서도 많이 배웁니다.
Q. 사진으로 일어난 삶의 변화가 있다면?
지금 제 삶의 8할은 사진입니다. (웃음) 한번은 장정리 이끼계곡 출사를 위해 새벽 2시 반에 집에서 출발했어요. 5시간 정도 운전해 도착한 후 오후 4시까지 이끼를 담고서 올라오는데도 뭔가 아쉬움이 남았어요.
차를 돌려 다시 강원도로 향했죠. 그렇게 또 저녁까지 동해를 실컷 찍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데 졸음이 쏟아지는 거예요. 휴게소에서 들러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다음 날 해 뜰 때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어요. 결혼 후 30년 가까이 전업주부로만 살아온 저에게는 놀라운 변화죠.
또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보정 작업이 만만치 않잖아요. 컴맹이었는데 사진 때문에 포토샵을 처음 배웠어요. 12시간 넘게 꼼짝 않고 사진을 보정하느라 컴퓨터와 씨름해도 전혀 힘들지 않아요. 나에게 이런 열정이 있다니 스스로 깜짝깜짝 놀랐어요.
Q. 슬기로운 취미생활을 꿈꾸는 시니어들에게 용기가 되는 조언을 한다면?
나이 60을 넘어서니 몸 이곳저곳에서 이상 신호를 보냅니다. 제 경우 발가락이 아프고 갑상선 항진도 왔어요. 평소 즐기던 여행과 골프를 줄일 수밖에 없었죠. 삶이 무료해졌고 무기력감이 엄습했어요.
그런데 사진을 공부하고, 사진을 찍고, 사진을 통해 자연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행복한 즐거움을 되찾았습니다. 더 부지런해졌고 사진 찍을 때는 산속을 하루 종일 걸어도 지치지 않는 게 신기해요.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 더 건강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자연을 찍다 보니 정신적으로 많은 혜택을 느낍니다. 촬영을 위해 자연을 천천히,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돼요. 자세히 보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하잖아요. 사진을 찍으면서 몰랐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데 무엇보다 저에게는 자연의 고요함을 마음에 담게 돼요.
마음의 고요, 저에게는 너무 행복하고 소중한 에너지입니다. 또 제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가 혼자서 여행하기입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이뤘답니다. (웃음)
기획 이인철 글 김남희 사진 지다영(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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