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우의 기분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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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늘 어제보단 오늘이 낫고, 오늘보단 내일이 더 나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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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우 사진

 

‘척’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착한 척, 쿨한 척, 교양 있는 척. 묘한 건 사람들은 ‘척’과 ‘진짜’를 은연중에 구별해 낸다는 것이다. 구별의 단서는 대개 일관성이다. 자기 철학을 가지고 남들이 보든 보지 않든 일관된 노력이나 취향을 유지하느냐, 반대로 일회용 겉치레를 반복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나곤 한다. 이런 맥락에서 강석우는 진짜다. 한 번 뛰어든 일에는 최소 10년을 투자 할 것, 술자리 비즈니스보다 자기 관리를 선택할 것, 가족을 최우선으로 할 것, 부는 나눌 것 등 반듯반듯한 삶의기준을 늘 고집스럽게 지켜왔다. 그리고 이런 기준을 지켜 손해 본 적은 없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회춘 아이템 같은 건 선호하시는 스타일이 아닌가 봐요?
내가 늙어 보이는 편은 아니잖아요.(웃음) 뭣 하러 젊어 보이려고 발악까지 합니까.멋있어 보이고 싶다면 외모보다는 너그러움을 갖춰야죠. 잘 꾸며서 예쁜 건 ‘찰나’지만 말이나 행동을 품위 있게 하는 사람한테는 늘 멋이 우러나더라고요.

취미를 즐기시는 분들한테도 그런 멋이느껴지는 것 같아요. 강석우 씨도 오래된 취미인 그림, 색소폰이 있죠?
색소폰은 이제 15년 됐는데 세종문화회관에서 오케스트라와 연주를 했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어요. 그림은 한 10년쯤?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그보다 오래죠. 아내 따라 서 하나 둘 그려봤는데 이젠 제법 전시 활동까지 하고 있어요. 뭐든 10년은 투자해야 제대로 된 재미를 느낄 수 있더라고요. 요즘 들어 흥미를 붙인 건 피아노랑 일본어예요. 피아노는 독학으로 코드를 공부하는 단계고 일본어 는 아내와 1년쯤 과외를 받았어요. 사실 일본 여행을 갔다가 어느 초밥집에서 주방장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게됐는데 일어를 모르니 뭔가를 설명해줘도 일방적으로 고개만 끄덕이게 되더라고요. 참 민망했어요. 이제 일 년 배우니까 고맙다 정도는 할 수 있겠더라고요.(웃음)

자기 개발이 꾸준하시네요. 자기 관리도 철저하시죠?
그런 편이죠. 생활에 질서가 없으면 불성실해질 수밖에 없어요. 매일 술이나 먹고 질펀하게 놀기만 한다면 다음날 생활이 어려울 수밖에 없잖아요. 알게 모르게 도태되는 거죠. 이쪽(연예계) 일이 술자리 친분만으로 돌아가지는 않아요. 철저히 능력이나 성실함으로 승부를 봐야죠. 그래서 일을 잘하려면 에너지를 잘 축적하는 기술이 필요해요.

주로 어떤 유형의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세요?
배려심 많은 사람들이죠. 술 먹고 즐기면서 허물 없이 친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관계가 의외로 사소한 지점에서 잘 틀어져요. 서로 배려하면서 어느 정도 선을 유지하는 관계가 좋지 않나 싶어요.

원래 배우가 꿈이었나요?
아니요. 전혀 아니었어요. 라디오 PD가 되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흘러왔어요. 물론 지금은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죠.대학생 땐 명동이나 충무로 술집에서 통기타 치며 노래를 불렀는데 음반 내자는 제의도 받고 그랬어요. 여러 길 가운데 이렇게 배우가 됐다는 게 돌이켜보면 나도 참 신기해요.

왕년엔 늘 로맨스 주인공이었지만 요즘은 철없고 이기적이고 웃기기까지 한 아버지 역으로 자주 등장하세요. 이런 이미지 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비슷한 캐릭터를 연속으로 맡진 않아요. 지금 출연중인 <기분 좋은 날>에서는 정 많고 따뜻한 아버지로 나오는데 그 전작 <사랑해서 남주나>는 철없는 아버지였어요. 그 전에 <웃어라 동해야> 때는 또 진지한 아버지였고요. 한 가지 인상을 길게 주고 싶지 않은 거죠. 아마 사람들이 웃기고 튀는 아버지를 더 잘 기억하겠지만 매번 인상 깊은 캐릭터만 고수할 순 없어요. 내가 아주 잔잔하고 차분하게, 눈에 띄지 않는 연기를 해줘야 다른 캐릭터가 돋보일 수 있는 법이죠.

양희은 씨랑 같이 <여성시대>를 진행하고 계시죠. 라디오 DJ가 된 뒤 좀 달라진 게 있나요?
페미니스트가 됐죠.(웃음) 얼마 전에는 한 남편이 닭뼈가 쓰레기인지 음식물 쓰레기인지를 두고 아내랑 한참 싸웠다며 결론을 내려 달라는 사연을 보낸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딱 그랬어요. “그냥 아내 말 들으세요. 쓰레기 처리 문제는 아내의 소관 아닙니까. 그걸 왜 따지고 계세요.” 아무래도 여성들의 사연을 많이 접하다 보니까 관점이 점점 바뀌더라고요. 또 하나는 생각을 파고, 파고 또 파서까지 하는 버릇이 생겼다는 거죠. 수많은 사연이 오는데 DJ로서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얘기를 하려면 단순히 일차원적으로 사물이나 인물을 이해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저 속에 담긴 의미는? 진의는 무엇일까? 자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는 게 습관이 됐어요.

촬영 현장에서는 대선배로 통하실 텐데 ‘우리 때랑 다르다’ 싶은 건 없나요?
요즘 후배들이 연기를 굉장히 잘해요. 어른에 대한 어려움이 덜해서 그런지 나이 많은 선배랑 호흡을 맞춰도 긴장하지 않아요. 그건 굉장한 장점인데 문제는 앙상블이 없다는 거죠. 같이 대사를 맞춰보는 게 아니라 각자 연습을 해서 녹화만 하는 식이에요. 소속사에서 개인적으로 관리를 하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한데 많이 아쉬워요. 선후배가 같이 부대끼며 배우고 교감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거든요. 그런 후배가 많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요즘 같이 촬영 중인 박세영 씨는 붙임성 있게 나이 많은 선배들하고도 잘어울리려고 해서 예쁘더라고요.

오늘 촬영장에도 부인과 함께 오셨을 정도로 금슬이 좋으신데 그렇게 한결같이 애틋한 비결이 뭔가요?
서로 노력하는 거죠. 근데 그건 젊을 때부터 해야 안 어색해요. 나이 들어서 새삼스럽게 개선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가급적이면 부부끼리 공통 취미도 갖고, 대화도 많이 하면서 서로 이해해주는 거예요. 우리는 늘 그랬어요. 아내가 좋아하는 미술에 나도 취미를 붙였고, 식사를 하고 나면 꼭 같이 동네 산책을 나가죠. 싸움이 날 것 같아도 한 사람이 참으면 훨씬 덜한데 우리는 주로 아내가 그 역할을 해요. 또 하나 서로 비밀이 없어야 돼요. 저는 집에 들어오면 지갑이며 휴대폰을 그냥 다 꺼내놔요. 서로 믿으니까 그럴 수 있는 거죠. (참고로 그는 친구 생일 파티에 갔다 당시 이화여대 미대에 다니던 9살 연하의 나연신씨를 만나 결혼했다. 미술 전공자였던 연신 씨를 위해 전시회를 계획하는가 하면 결혼 20주년에 기념 파티를 열어주는 등 강석우는 애처가로서의 면모를 발휘해왔다.)

강석우 사진

 

아들은 연대 경영학과에, 딸은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고요. 자녀 교육에 무척 열성이셨을 것 같아요.
뭘 해라 마라 한 적은 없어요. 그저 어릴 때부터 다 같이 가족 여행을 자주 다녔죠. 우린 언제나 네 식구가 세트로 잘 다니거든요.(웃음) 재작년에는 파리에서 스위스, 로마까지 기차 여행을 갔고 작년에는 미국엘 다녀왔어요. 어릴 땐 공연장이든 연극 무대든 최대한 다양한 곳을 데리고 다니면서 많은 걸 보게 했고요. 애들이 무얼 하든 상관 없는데 요행이나 지름길을 바라지 말고 정직하게 자수성 가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딸이 내 후배가 됐지만 그 아이한테는 내가 개입되는 게 손해예요. 연기란 누가 밀어준다고 되는 게 아니라 자기 의지나 능력에 따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못 받고가 결정되거든요. 딸 스스로의 힘으로 어느 경지에 이르렀을 때 나와 파트너 대 파트너로 만나는 건 멋진 일이지만 그 전엔 도와줄 생각 없어요. 그렇게 해서 성공하는 경우도 못 봤고요.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셨나요?
6.25 때 월남해 부산에서 고아원을 운영하셨어요. 제가 1남 3녀 중 장남인데 크면서 손찌검 한 번 당해본 적 없어요. 두 분 다 사람에 대한 배려는 특출 나셨거든요. 일례로 저희 어머니가 버스를 타고 가시다 급정거하는 바람에 계단에 거꾸로 처박힌 적이 있는데 그렇게 다치시고도 병원에 도착한 저한테 제발 버스회사에다 운전기사 고발 하지 말라고 당부부터 하시더라고요. 그 사람 생계가 걸린 문젠데 그러면 안 된다는 얘기였죠.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한국 컴패션 등 다양한 기부 재단에서 여러 직책을 맡고 계시죠? 실제 여러 단체의 후원자이기도 하시고요. 고아원을 운영했던 부모님 얘기를 들어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네요.
저는 들어오는 수입이 전부 내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 사실 착하게 성실하게 사시는 분들에게 그런 부가 돌아가야 하는데 세상이 또 그렇지 않잖아요. 그런 분들한테 골고루 돌아가야 할 몫이 저한테 조금 더 왔다면 그건 나눠써야죠. 근데 나눔이라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아서 어릴때부터 부모가 가르쳐야 되는 것이더라고요. 지금 우리아들, 딸 이름으로 제가 기부하고 있는데 나중에 아이들 이 취직해 돈을 벌면 그때부턴 바로 넘길 생각이에요.

계속 듣다 보니 늘 파이팅 넘치게 살아오셨어요. 그래도 새삼 나이를 느낄때가 있지 않으세요?
상대방 얘기를 잘 못 알아들을 때, 걸음이 느려졌을 때 가끔 느끼죠. 몇 년 전까지는 농구를 4쿼터씩 뛰었는데 지금 그랬다간 무릎이 작살나겠죠? 근데 나이에 따라 체력이 떨어지는 건 순리니까 받아들이면 또 심각할 게 없어요. 오히려 자꾸 젊어지려고 하다가 자기 한계를 느끼고 우울해지죠.

마지막으로 인생의 헤이데이를 꼽는다면 언제일까요?
매스컴에서 얘기하는 전성기는 있겠죠. 영화나 드라마를 몇 편 찍고 무슨 상을 받았고 하는 때가 아마 그때가 아닐까 싶은데 특별히 인생의 어느 한 지점에다 참 대단했다는 의미를 둘 필요가있을까요? 난 늘 어제보단 오늘이 낫고, 오늘보단 내일이 더 나았는데.(웃음) 그렇게 보면 앞으로 살 날이 다 전성기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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