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동거

기사 요약글

늘어나고 있는 황혼 재혼.

기사 내용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15 사법연감> 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이혼의 1/3가량이 황혼 이혼이었다고 합니다. 황혼 이혼의 비율은 2010년 23.8%에서 2013년 28.1%로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황혼 이혼이 늘수록 황혼 재혼 역시 늘어나고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3년, 3만6073건의 재혼 가운데 50대 이상의 ‘황혼 재혼’ 비율이 전체의 83.3%나 됐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만큼 긴 인생, 다시 의지할 수 있는 짝을 찾는 분들이 많다는 얘기지만, 재혼에 골인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일단 ‘자녀’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지난해 듀오가 전국 20~30대 미혼 남녀 42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부모의 재혼에 반대하는 비율이 59.5%나 됐습니다. 가장 큰 반대 이유는 바로 재산상속 등의 문제로 인한 가족 간의 불화였는데요, 자식들이 부모의 재혼에 반대해 혼인 무효 소송을 내는 사례까지 등장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경제적인 문제가 갈등의 씨앗이 되기 때문에 요즘은 상대 자녀들의 직업까지 고려하는 풍조가 생겼다고 합니다. 말인즉 재혼을 하면 또다시 부모가 되는 셈인데 혹시 상대에게 ‘백수 자식’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경제적 원조를 할 수밖에 없어 부담이 된다는 뜻이죠. 이렇듯 정식 혼인을 함으로써 수반되는 여러 복잡한 문제 때문에 그냥 심플하게 동거를 택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이른바 ‘황혼 동거’인데요, 탤런트 박정수 씨도 정을영 PD와 동거 사실을 밝혀 화제가 되었죠. 과거 이혼의 상처를 경험한 그녀는 “결혼을 왜 하고 사느냐. 결혼하면 세금도 많아지고 재산을 합쳐야 하는데 세금 때문에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로 황혼 동거를 두둔하기도 했습니다. 서울시의 60세 이상 1인 가구가 약 60만으로 추산되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황혼 동거’가 고독과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좋은 방편이 되리라 분석합니다.


황혼 동거
문제는 없을까?

그러나 황혼 동거가 무조건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을 땐 좋아도 상황이 변하면 달라지는 게 또 사람 마음이기 때문이죠. 법적 보장을 받기 어려운 동거의 특성상 억울한 사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4년간 황혼 동거를 했던 한 여성이 동거남의 외도로 위자료 한 푼 없이 쫓겨난 사례가 있는가 하면, 병시중까지 해가며 지극정성으로 동거남을 돌봤던 여성이 동거남이 사망하자 그 자식들로부터 ‘살고 있는 집에서 나가라’는 소장을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실혼 관계에 대해 재산 분할 청구나 위자료 청구를 인정하고 있지만(단 상속권은 없음) 동거의 사실혼 인정 여부는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법적 안정성이 없다는 것도 문제죠.

"제 어머니가 올해 팔십인데 중매 서주실 분 어디 없나요?"


그래서 우리는
동거계약서를 쓴다

복잡한 재산 문제와 훗날 사실혼 관계가 인정될 여지를 고려해 미리 깔끔하게(?) 선을 긋는 커플도 생겨났습니다.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일종의 계약서를 쓰는 것인데요, 여기에는 ‘생활비는 7대3으로 한다’ ‘헤어지게 될 경우 위자료나 재산 분할을 일절 청구하지 않으며 동거 중 늘어난 재산은 5대5로 나눈다’는 식의 구체적인 협의 사항을 기재합니다. 그러나 이런 동거계약서는 어떤 권리(위자료나 재산 분할 등)를 미리 포기하는 식의 내용이 포함되어서 법적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이런 애로 사항에 대해 전문가들은 재혼 전 미리 재산을 증여하거나 유언장을 작성해 변호사의 공증을 받는 방법을 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법적, 경제적 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새로운 가족 관계 아닐까요. 수십 년 합을 맞춰온 가족도 불협화음을 일으키게 마련인데 새로운 가족의 출현은 말해 무엇 할까요. 아무쪼록 행복한 제2의 신혼을 맞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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