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가 묻고 박원순이 답하다

기사 요약글

시니어 세대는 이제 인생의 황혼기가 아니라 전성기가 되어야 합니다.

기사 내용

너무 짧았던 시간이 아쉽다


세월호 사건으로 여당 후보들이 고전하는 상황이지만 박 시장은 만만치 않은 인물과 대결한다.
상대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 번도 패한 적 없는 정몽준 후보다. 많은 정치인이 서민 대 재벌 프레임
으로 정 후보와 대결했지만 다들 고배를 마셨다. 박원순 시장 후보는 어떤 전략을 구사할까.
지난번 보궐선거와 달리 이번엔 수비를 잘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그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 눈치다.
인터뷰 내내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 철학과 시정 방향, 드러내지 않았지만 시민들이 피부에 와 닿게 한 사업들을 설명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인터뷰어 썰전 이철희)

 

선거철이라 여전히 많이 바쁘시죠?
상대적으로 그렇게 막 바빠지지는 않았어요(인터뷰는 5월 11일에 진행됐다). KBS 대하 사극 <정도전>을 잘 보고 있고요. 얼마 전까지 SBS 드라마 <쓰리데이즈>도 재미있게 봤고, <별에서 온 그대>도 종영하는 날까지 봤어요. 이 소장보다 내가 더 낫죠? 삶의 질이.(웃음)

<정도전>을 본다고 하셨는데 시정에 참조한 것이 있나요?
조선왕조가 우리 역사에서 특별한 왕조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가장 우수한 관료 체계를 갖추고 있었던 국가죠. 제가 역사에서 배운 게 있다면 기록하는 사관제도, 사간원 간관제도예요. 서울시에 저를 공격하는 그룹이 있어요. ‘쓴소리단’이라고 하죠. 쓴소리를 잘할 사람 위주로 모셨죠. 조선일보 기자 출신, 서울시 인권위원장 등 다들 거침없이 말씀하시는 분들이죠.

정몽주와 정도전 두 사람 중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
둘 다 좋아요. 정몽주가 없었으면 고려가 얼마나 쓸쓸합니까. 충신도 있어야죠. 그런가 하면 민생 고통을 해결하고자 새 왕조를 설계한 정도전이 없었으면 조선은 없었겠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장이 되겠다!’ 이 말 때문에 비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 진영에서는 실제로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말하는데요.
비판을 하려면 주의 깊게 들어야 하는데…. 저는 ‘전시행정’ 안 하겠다, ‘낭비행정’ 안 하겠다, 개인의 브랜드가 되는 일들은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대신 시민들이 중심이 되는, 시민들의 혈세 낭비를 방지하는 그런 행정을 하겠다 했죠. 이렇게 이어지는 문장이 있는데 중간에 딱 그 한 문장만 갖고 얘기하는 건 왜곡이죠. 전 과거 시장들이 4년의 짧은 임기 동안 자기 브랜드를 높이는 일에 집중했던 병폐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한 거예요. 그게 본질이죠.

사람들은 대개 큰 사업만을 기억하죠.
심야 버스, 한강 둔치의 캠핑촌, 타요 버스 등 다 자기 삶의 영역에서 의미 있는 것들입니다. 별로 돈도 안 들어요. 이번 세월호 사건이 역사의 한 분기점이라고 생각해요. 세월호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로. 그동안 엄청난 고도성장과 경쟁 속에서 우리 사회가 발전해왔어요. 그 덕에 서울이 세계 10대 도시로 성장했죠. 그러나 참 많은 가치를 잊어버렸습니다. 삶의 질, 안전, 기본과 원칙,
삶의 소소한 행복, 이런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겁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죠.

지하철 사고는 아쉬웠습니다. 유능한 행정가라면 예방할 수 있는 사고가 아니었나 싶은데 인색한 평가인가요?
아닙니다. 서울시가 무한 책임을 느끼고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본질적인 대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아주 작은 정책부터 큰 제도의 변화, 더 나아가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기계의 결함도 있지만 그 뒤에 사람이 있습니다. 기관사가 자동제어 시스템을 믿어버린 거죠. 핵심은 기계, 사람, 관제(감시하는 시스템) 모두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제3의 안전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거죠.

시민운동가와 행정가 중에서 어느 쪽에 더 재미를 느끼십니까?
재보궐선거로 서울시장에 취임했는데 마치 제 옷을 입은 듯 낯설지가 않았어요. 그 전까지 해왔던 시민운동도 공공의 이익에 우선하고, 시민의 삶을 개선하는 일이었어요. 월급 받지 않는 공무원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서울시 업무도 빠른 시간에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제게는 시민운동가도 서울시장도, 모두 소중한 경험입니다.

임기 동안 가장 소중하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요?
빚은 줄이고 복지는 늘렸어요. 제가 취임하고 보니 서울시 빚이 20조였어요. 하루에 이자만 20억이었는데 정말 잠이 안 왔습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알뜰살뜰 살림을 해서 현재는 3조5천억원의 빚을 줄이고, 이자도 하루에 16억대로 낮췄습니다. 하지만 꼭 써야 할 데는 써야 합니다. 특히, 복지는 오히려 서울시 전체 예산의 26%에서 32%로 늘렸죠. 우리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보육 예산과 안심 귀가 스카우트, 안심 택배 등 여성들을 일상에서 안전하게 보호하는 정책을 실행했죠.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한 곳만 고르라면 어디인가요?
한양도성입니다. 취임 첫해 겨울 한양도성을 걸어보고 반했어요. 서울에서 40년을 살아온 저도 한양도성에 대해 잘 몰랐어요. 비록 유실되고 흔적도 남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역사와 시민의 삶이 만나 어우러진 문화유산이에요. 서울시에 한양도성을 담당하는 부서를 신설하고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노력 중입니다.

시장의 덕목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1,000만 서울 시민의 삶을 책임지는 서울시장에게 필요한 능력은 참으로 많은 것 같아요. 3가지만 꼽는다면 가장 먼저, 시민과의 소통력이죠. 두 번째는 갈등조정 능력입니다. 갈등을 풀기 위해 갈등조정과를 신설했는데 요즘 아파트마다 고민이 많은 층간 소음 문제도 공공 갈등으로 해결한 경험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미래 통찰력이죠. 시대를 내다보는 눈이 있어야 도시를 경영할 수 있어요.

이번 선거의 핵심 공약을 소개해주세요.
안전한 서울, 따뜻한 서울, 꿈꾸는 서울, 숨 쉬는 서울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죠. 사고와 재해로부터 시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임대주택 8만 호, 소형주택 20만 호를 공급해 집 걱정 없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서울을 만들 계획입니다. 8대 신성장 창조경제 거점을 육성해 시민의 꿈을 실현시키는 서울을, 1천 개의 숲과 1만 개의 산책길, 햇빛 발전소 4만 개로 숨 쉬기 좋은 서울을 만들려고 합니다.

고민하는 시니어 정책이나 다시 시장이 돼 꼭 펼치고 싶은 시니어 정책은 무엇입니까?
제가 1956년생 바로 시니어 세대죠. 젊은 날에는 경제 기적을 일구고, 민주화를 이뤄내며 잘 사는가 했더니 IMF와 국제금융 위기로 다시 세상 밖으로 내몰리기도 했죠. 저는 이런 시니어 세대들의 제2의 인생을 위해 재교육과 일자리를 만드는 정책을 만들었어요. 인생이모작지원센터를 통해 젊은 날의 경험을 살려 새로운 분야에서 교육받을 수 있고, 그에 따른 재취업도 알선하고 있어요. 시니어 세대는 이제 인생의 황혼기가 아니라 전성기가 되어야 합니다. 해 지기 전의 노을이 가장 아름답듯, 시니어가 다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대가 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젊은 층은 시니어에 대한 정책이나 복지 서비스 강화에 부정적입니다. 이를 어떻게 설득하실 생각인가요?
중요한 것은 예산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죠. 저는 취임 이후 서울시 복지 예산을 26%에서 32%로 늘렸습니다. 증가된 예산으로 시니어 복지 서비스를 늘렸을 뿐 아니라, 청년들을 위한 반값 등록금, 공공 기숙사 등 새로운 청년 정책도 추진했죠. 고령화 시대에 5060 시니어 세대를 위한 복지 서비스와 정책이 늘어난다는 것은 5060 시니어 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자식 세대인 젊은 세대의 부담을 덜어주기도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깊은 영향을 미친 인물은 누굽니까?
돌아가신 인권변호사 조영래 변호사예요.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한 권의 책을 꼽아주세요.
많지만 근래에는<논어>인데요. 도올 김용옥 선생이 저에게 선물했어요. 목민관이 귀담아들어야 하는 내용이 많아요.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반드시 있다)’처럼요.

나중에 어떤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나요?
좋은 아버지로 기억되는 건 힘든 것 같아요. 한참 돈이 필요할 때는 돈을 못 줬고, 힘들어할 때 옆에 있어줘야 하는데 바빠서 그러지 못하고요. 그래도 ‘아버지,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런 얘기 듣고
싶죠.

이철희가 본 박원순 : 박원순 후보의 장점은 편한 담론이다. 그 자리에 오르면 누구나 눈에 보이는 성과나 업적을 만들고 싶어서 조바심을 내는데 그는 이 부분에 관해서는 완벽하게 자유로운 것 같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큰 사람이 와서 큰 사업 하며 우왕좌왕했다. 공도 있었지만 시끄러웠다. 박원순 후보는 작지만 생활 속에서의 변화와 그것이 가져다주는 행복의 소중함에 집중하는 사람이다. 조용하게 일상을 챙기는 시장, 그런 모습이 좋다. 조금 촌스럽게 생긴 것도 외려 거리감을 좁혀준다. 무엇보다 그에게선 의도적으로 준비하거나 연출된 모습이 안 보인다. 그래서‘우리 시장’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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