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글 그리고 목도리 뜨기, 치매 가족과 사는 법

기사 요약글

치매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환자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랑과 존엄으로 불안한 현실을 격려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치매 동행기.

기사 내용

*치매 가족들의 이야기*

1편. 할머니의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한 김선기 씨
      아버지의 치매 간병기를 에세이로 쓴 노신임 씨
      치매 노인들과 목도리를 만든 이동혁 씨

2편. 아버지와 치매 여행을 떠난 아들, 신정식 씨
      치매 아버지와의 동행을 웹툰으로 제작한 심우도 씨

 

 

 

 

어머니의 시선으로 할머니의 치매를 보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치매환자를 돌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환자를 오래 돌본 보호자는 환자가 된다. 이유 없이 방황하고, 밤새 소리 지르고, 결국 아이가 되어버린 할머니의 곁을 지킨 어머니도 그랬다. 몸은 점점 쇠약해지고, 함께 아파 늙어가면서도 어머니는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런 고생스러운 모습이 속상해 요양원으로 모시자 하면, 계속 하던 일이라 괜찮다며 끝까지 모시겠다고 말하셨다. 할머니가 행여나 자신을 버린 거라 생각하면 안 된다면서.

 

오히려 요양 지원 혜택을 받아 조금이라도 더 잘 챙겨드리고 싶다며 장기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따셨다. 일찍이 돌아가신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마음의 빚이 어머니에게 계속 남아 있었나 보다. 어머니는 어린 삼 남매를 돌보느라 병원에 계신 외할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그간의 시간을 돌아봤다. 수천 장의 사진 속엔 적나라하고 비참한 모습도 들어 있었다. 하지만 힘들고 극단적인 형상이 아닌, 어머니의 시선으로 어머니가 받아들인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진전 당시 가장 크게 인화해 걸었던 사진을 책의 표지로 골랐다. 베란다에 앉아 웃고 계시는 듯한 사진이다. 어머니는 종종 할머니를 베란다로 데려가 앉혀드렸다. 거동이 힘들어 밖에 못 나가시니 이렇게라도 햇볕을 쐬라며. 그곳에 앉아 가만히 화초를 바라보시는 할머니 표정은, 참 따뜻했다.

 

김선기
15년 동안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카메라에 담아 기록했다. 할머니를 돌보면서 함께 아프고 늙어간 어머니를 생각하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1주기가 되던 해 전시를 열고 사진집 <나의 할머니, 오효순>을 냈다.

 

 

 

 

아버지는 치매가 아니라 추억을 남겼다

 

 

문제가 발생했다. 단답형일 때는 곧잘 알아들었던 아빠의 말들이 긴 문장으로 이어지자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알아들을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눈을 감고 명상하듯이 ‘마음으로’ 들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며칠간 눈을 감고 차분히 들어보려 시도했다. 그러자 이게 웬걸, 눈을 뜨고 들을 때보다 더 못 알아듣겠다. 하는 수 없이 아빠의 얘기들을 거의 알아듣는 척하며 어렵게 대화를 이어갔다.

 

예를 들어, 아빠가 “~냐? ~거야? ~이지?” 등 의문으로 물어 오면 “아 그거는 내 생각엔 말이야… 하하하! 근데 아빠는 어떻게 생각하는데?”라고 다시 묻거나 전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때는 갑자기 씨익 웃으며, “근데 아빠는 왜 그리 잘생겼어?” 하는 식으로 화제를 바꿔버렸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아빠는 자신이 방금 했던 질문을 까먹고 “내가 뭘 잘생기냐? 허허 녀석” 하고 대답했다. 다행이었다. 그외에도 아빠의 말끝이 “~했어. ~잖아. ~거든” 등 못알아듣는 말들로 끝날  때는 “아 정말? 맞지. 그랬구나” 하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가끔은 맞장구를 반대로 쳐서 아빠가 성을 낼 때도 있었다. “뭐가 잘됐어 이놈아! 그걸 니 엄마가 전부 팔아먹었는데, 그게 왜 잘됐냐? 너 나가라” 그럼 나는 “아빠 말이 맞아. 엄마 나쁘네. 구치구치” 하고  편을 들어주었다. 그러면 아빠는 조금씩 풀어졌다. 그때 깨달았다. 얘기에 호응해줄 때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것을. 

 

노신임
어느 날 아빠에게 치매가 찾아왔고, 아빠를 ‘우주 최고의 행복한 아빠’로 만들기 위한 딸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치매 아빠와 행복한 7년을 보낸 이야기를 에세이 <7년간의 마법 같은 기적>에 담았다. 

 

 

 

 

쁘띠목도리는 기억한다

 

 

치매환자 어르신들은 뜨개질바늘도 쉽게 다루지 못한다. 대신 손가락을 이용한 뜨개질은 쉽게 익힌다. 치매 치료의 일환으로 시작한 손가락 뜨개질이었지만, 만들어진 작품을 보니 완성도가 굉장히 높았다. 참여한 어르신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았다. 이참에 어르신들의 작품을 세상에 드러내 그분들이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임을 확인시켜드리고 싶어서 펀딩 프로젝트를 도모했다.

 

프로젝트 이름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수 만들었다는 의미를 담아 ‘할드메이드 쁘띠목도리’로 정했다. 어르신들은 본인의 손때 묻은 물건이 누군가를 따뜻하게 해줄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뿌듯해하셨다. “내 아직 죽지 않았제?” 완성된 목도리를 들고선 사회에 유의미한 활동을 하고 있음을 자랑스러워하셨다.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어르신들 대부분이 치매로 인해 다른 이야기는 다 잊어도 이 프로젝트는 전부 기억하셨다는 거다. 그만큼 이 시간이 어르신들에게 좋은 추억, 행복한 경험으로 인식된 것이다.

 

누구보다 가장 애쓰셨던 어르신 한 분이 기억난다. 반마비가 와서 몸 한쪽을 움직일 수 없는 분이었는데 뜨개질을 시작할 때, 손 하나만 빌리면 잘 만들 수 있으니 손을 보태달라 요청하셨다. 그래서 도와드렸더니 정말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열심히 만드셨다. 도리어 손을 빌려드린 내가 힘들 때까지 만드셔서 누가 누구를 돕는지 모를 정도였다. 

 

이동혁 
부산에서 기쁨재가복지센터를 운영하며 치매, 고혈압, 당뇨병 등의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있다. 최근 치매 어르신들이 만든 목도리로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해 목표 금액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기획 문수진, 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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