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하하옹, 중년 인생취미로 서예를 추천하는 이유

기사 요약글

50년 넘게 서예의 길을 걸어온 박원규 작가. 70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는 그는 최근 젊은 층과 장년 층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담아 전시를 열었다.

기사 내용

 

 

 

 

한 가지 일을 50년 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73세의 서예가 하석 박원규는 57년 동안 묵묵히 서예가의 길을 걸어온 이다. 학창시절 석당 고석봉 선생의 ‘인지위덕(忍之爲德)’ 현판을 본 후 글자에 매료된 그는 최고의 스승님들을 모시며 글씨와 글씨에 담긴 뜻을 연구해 왔다.


최근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JCC아트센터에서 열린 박원규 선생의 전시회 명은 <하하옹치언(何何翁巵言)>. ‘서예는 글씨를 가리지 않는다’는 그의 말처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가 담긴 전시로 박원규 선생 자신이 ‘하하옹’이 되어 전하는 진심어린 메시지가 담긴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예전에 ‘하하존사’라는 분이 계셨어요. 누가 쓴소리를 해도 ‘하하’하고 웃는 분이셨지요. 제 호가 ‘하석’인데 어찌 ‘하(何)’ 자에 돌 ‘석(石)’ 자를 써요. 어찌 하를 두개 붙여쓰면 ‘하하’가 되기도 하지요. 나이가 들면서 항상 ‘하하’하고 웃자는 생각에 스스로를 ‘하하옹’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치언’은 술 한잔 마신 할아버지가 횡설수설 늘어놓는 소리란 뜻이에요. 중국 영화 <취권>을 보면 주인공이 비틀비틀해도 공격력이 막강하거든요. 엄청난 내공이 숨어있는거죠. 그렇게 이번 전시는 ‘하하옹이 늘어놓는 횡설수설’이라 보시면 됩니다.”

 

 

 

삶에 지친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

 


이번 박원규 선생의 전시는 삼포, 사포 등의 포기를 운운하며 실의에 빠진 20-30대 젊은이들과 퇴직을 앞둔 중장년들에게 전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낙담하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 위로를 건네주고 싶었다는 그는 힘든 시간을 지나왔고 앞으로를 고민중인 이들이 작품에 담긴 메시지를 보며 힘을 얻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호학즉일신(好學則日新)’ ‘배우기를 좋아하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에요. 젊은이가 되었건 중년이 되었건 노년이 되었건, 배우기를 포기하면 그 사람은 새로워질 것이 없어요.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배움을 놓지 않는다면, 그이의 삶은 늘 활력이 넘칠 겁니다. ‘위자상성(爲者常成)’ ‘무언가를 노력하는 자는 언젠가는 이룰 것이다’라는 뜻이에요.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누워 있다고 감이 떨어지나요. 감나무를 발로 차든 뭐든 해야하잖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감이 입으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건 말이 안돼요. 목표가 있다면 노력을 해야지요. ‘관기소불위(觀其所不爲)’ ‘한 사람의 진면목을 알려면 그 사람이 무엇을 하지 않는지 보아야 한다’는 뜻이에요. 자신의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지 않는 것을 보아야 그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어요.

 

‘일자천금’이란 말이 있지요. 중국 진나라의 재상 여불위가 3,000여 명의 사람들과 <여씨춘추>를 편찬했는데, 이 책 속에 한 자라도 빠지거나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 한 자에 천금을 주겠다고 한데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 책에 사람을 보는 8가지 방법이 나와요. 그 중 마지막 여덟 번째가 ‘그 사람이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무엇을 하지 않는지를 보아라’에요. 직장을 그만 둔 후에 인생의 이모작을 건설적으로 준비하려면 자신이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 염두에 두어야 해요.”

 

 

 

 

예술을 쓰다

 


박원규 선생은 작품에 갑골문체(甲骨文體), 동파문자체(東巴文字體), 금문체(金文體), 한간체, 광개토대왕비체(廣開土大王碑體) 등 여러 문자체를 활용한다. 이 문체들을 혼용하기도하고 대체해 쓰기도 하면서 붓, 종이, 먹의 성격을 활용하여 조형적인 영역까지 확장한다. 여기에 다양한 색까지 더해진 그의 작품은 단순한 글씨를 넘어 하나의 현대 미술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작품의 내용이다.

 

이번 그의 전시회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은 단연 ‘산거지(山居志)’다. ‘내 집은 깊은 산속에 있네/봄여름이 바뀔 적마다 섬돌에는 푸른 이끼, 길에는 떨어진 꽃/그러나 날 찾는 이 없네.’ 100세 시대, 이모작의 삶을 준비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산거지’는 가로 12미터, 세로 2.4미터로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작품이에요. 당시 장마가 계속되고, 작품의 크기 때문에 제 개인 작업실에서 작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JCC아트센터에 도움을 요청해 작품이 걸릴 4층 전시장 바닥에서 직접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385자에 달하는 글자들을 어떤 체로 쓸지 고민하고 연습하고 준비하는데 6개월 이상이 걸렸어요. 갑골문체, 금문체, 한간체, 광개토대왕비체 등 온갖 서체를 손 가는 대로 썼다는 의미에서 이 작품의 서체를 ‘하하옹수수체’로 정했습니다.”

 

‘서예는 90%’가 공부다’라고 말하는 그는 서예야 말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분야라고 전했다. 특히, 퇴직을 앞두고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이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활동이라고 강조했다.

 

“서예란, 나를 쓰는 거예요. 글씨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그대로 나타내요. 한 사람의 글씨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반드시 드러납니다. 서예란 문자 예술이고, 문자란 인간과 인간이 상호간에 약속한 부호입니다. 그렇게 한정된 문자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자유로움이 있어야 하죠.

점 하나에 의미가 바뀌는 것처럼, 엄격한 문자의 제한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에요. 실제로 국내 서예인들중에 은퇴하신 분들이 많아요. 문자를 다루는 분야이다 보니, 책을 많이 읽고 그 내용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각자의 분야에서 성실하게 경력을 쌓아온 중년들이 도전하기 좋은 활동이지요.”

 

 

 

 

배우고 도전하는 프로 취미러

 


오랜 시간 서예가로 활동해온 박원규 선생은 다양한 취미 활동을 즐기는 사람이기도 하다. 전국 고수대회 결선 3위까지 올라갈 정도로 국악을 즐기고, 바리스타 과정을 마친 커피 마니아에 골프, 수영, 스쿼시 등 다양한 운동을 즐긴다.

 

“저는 어떤 취미를 즐기던 간에 ‘프로’ 수준까지 올라가야 비로소 그 진수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치 일본의 도사견처럼, 한번 취미 활동을 시작하면 절대 놓지 않지요. 하하. 사실 제가 즐기는 취미들은 저의 작품 활동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도 해요.

 

사진을 굉장히 오래 배웠는데 그 기술을 활용해 제 작품집에 들어가는 작품 사진들을 직접 촬영하거든요. 커피를 배우기 시작한 것도, 서예를 하기 위해선 집중력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때마다 커피의 도움을 받다보니 좀 더 맛있는 커피를 즐기기 위해 바리스타 과정까지 마치게 되었어요. 무엇보다 내 몸이 건강해야 작품 활동도 마음껏 할 수 있기 때문에 수영, 골프 등 다양한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이처럼 다양한 활동을 즐겨서 일까. 박원규 선생은 70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력이 넘친다. <하하옹치언>을 준비하며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메시지를 연구했다는 그는 퇴직 후 조금은 우울해 질 수 있는 중장년층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무언가를 배우러 다녀보세요. 어떤 종류의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무언가를 배우기만해도 하루하루가 새롭게 느껴지실 거예요. 그리고 도전하세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들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 것들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진정한 꿈이니까요.”

 

 

기획 문수진 곽민선 사진 박충열(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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