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라운드 인생, 이야기를 엮어 책을 만들다

기사 요약글

우리 삶에 스며든 이야기를 엮어 한 권의 책으로 완성시키는 사람들을 만났다.

기사 내용

 

세상에 질문을 던지다

헤이북스 윤미경

 

 

“돈 많이 벌어놨어?”

홍보대행사를 접고 1인 출판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경악에 가까웠다. 대형 출판사도 몸집을 줄이는 판에 출판이라고는 한번도 해보지 않은 그녀의 선언이 농담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윤미경 대표가 출판사를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건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면서다. 광고주의 예산을 받아 그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일은 성취감을 주긴 했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개인의 행복과는 반비례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려 나이가 들어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다. 사보를 기획해 한 권의 책으로 완성시키며 즐거움을 찾았던 과거에서 길이 보였다.

“모두가 1인 출판사를 하지 말라고 말릴 때 딱 한 명, 남편이 응원해줬어요. ‘집만 날리지 말고 한번 해봐’ 이 한마디에 용기를 얻었죠.”

남편의 응원은 헤이북스가 문을 여는 데 큰 힘이 되었고 2014년 장하성 교수의 <한국 자본주의>가 첫 책으로 세상에 나오는 밑거름이 되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막무가내로 만든 책이라 마음의 빚이 있습니다. 제가 얼마나 무지했냐면 책이 서점에 어떻게 깔리는지도 모른 채 만들었어요. 그저 책이 나온 것이 좋아서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돌리니까 신간 소개 기사가 나오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서점에 가면 책이 없고 서점 관계자들도 전혀 모르는 상황이 생긴 거죠.”

그때부터 그녀의 고행길이 시작됐다. 서점에 가서 난생처음 MD들과 배본 미팅을 하고 몇 부를 넣을지, 어떻게 서점에 보낼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일들을 개척해야 했다. 오랜 시간 사업하면서 얻은 경험과 연륜이 있었지만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기만 했다.

그러나 그녀는 꿋꿋하게 이겨내는 법을 찾았다. ‘척하지 말고 모르는 것을 인정하자.’ 50대 중반에 욕먹는 게 큰일도 아니고 완전히 내려놓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만큼 빠른 해결책이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런 그녀의 노력 덕분인지 첫 책 <한국 자본주의>는 제55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헤이북스가 지금까지 내놓은 14권의 책 중 <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 등 세 권의 책이 ‘세종도서(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 도서)’에 선정됐을 뿐 아니라 중국 등 해외 수출에까지 성공했다.

“적어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성공이 경제적인 여유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목돈 투자해 푼돈 모으는 게 출판이라고 하는데, 진짜 맞는 말이었어요.”

꾸준히 책을 낸 결과 출판사의 인지도는 어느 정도 안정화됐지만 사업적으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초기 자본금 5천만원은 눈 깜짝할 새에 사라졌고, 그녀가 생각한 좋은 책이 독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이 많아 아쉽지만 이 또한 배움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독자에게 잘 닿으려면 우선 제가 책을 잘 엮는 능력을 키우는 게 가장 먼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헤이북스는 장르보다 모두가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말은 하지만 정작 사회는 움직이지 않는 이슈들을 다루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출간한 열네 권의 책도 답을 주기보다는 독자에게 답을 고민하게 만드는 내용이 대부분이에요. 물론, 과거에 비해 수익은 줄었지만 마음은 즐거워요. 내가 만들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모든 어려움을 견디게 해주거든요.”

 

 

헤이북스의 책은 독자에게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질문을 던진다. 윤미경 대표의 추천 책은<오마이투쟁>. 사과할 줄 아는 사회를 바라는 메시지가 담겼다.

 

 

과정의 미학

유유출판사 조성웅

 

 

2012년에 창업해 7년 차에 접어드는 유유출판사의 조성웅 대표는 1인 출판계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유유만의 차별화된 표지 디자인과 정체성으로 무장한 책들을 꾸준히 출간하며 출판계에 안정적으로 안착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방송 연출부에서 일했습니다.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하나의 프로그램을 완성하는 것을 보는 재미는 분명히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래 할 수 있는 일인가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낮에는 촬영하고 밤에는 편집을 하면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개인 시간을 제대로 못 누리는 선배들을 보면서 과연 내가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작가부에 있던 한 친구가 ‘책 좋아하면 출판사에 가보는 건 어떠냐’고 툭 던진 말이 인생에 반전을 가져왔죠.”

출판에 대한 경력도 이해도 없던 때 50여 곳의 출판사에 무작정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냈다. 그중 운 좋게 한 곳과 인연이 닿아 편집자로서 첫발을 디뎠다.

나이 서른에 여기에서 밀려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것 같은 절박함에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멋모르고 교정을 보던 때가 지나고 다양한 책을 만들고 나니 자연스럽게 책을 만드는 일이 천직이라 느껴졌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렀고 인생의 후반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30대 후반 즈음 ‘50대가 되면 자연스럽게 퇴직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조금 힘이 있을 때, 머리가 굳지 않았을 때,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을 직접 만들어보자 생각했어요. 그래서 출판사를 그만두기 전 2~3년 정도 조금씩 제 출판사를 만들 준비를 했습니다. 어떤 책을 어떻게 낼 것인가를 꽤 오랜 시간 고민한 셈이죠.”

조성웅 대표의 자본금은 1억원이었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금액이지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이른바 사업하는 사람이 만져서는 안 되는 돈, 집을 팔아 마련한 돈이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함께 마련했던 아파트를 팔았어요. 당연히 아내의 동의가 필요했죠. 그런데 아내도 어린이책 편집자여서 회사에 몸담은 상태로 오래 일할 수 없다는 업계의 생리를 저보다 잘 알고 있었어요. 모험인 것은 분명했지만 한번 해보라는 지지가 큰 힘이 됐습니다.”

1인 출판사라고는 하지만 책을 만드는 것은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디자이너, 편집자, 교정 교열 등 다양한 업무가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그 전에 출판사 성격과 기획에 맞는 저자를 찾아 설득하고 원고를 받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 모든 절차를 거쳐 책이 나오기까지 꼬박 1년이 걸린다. 즉 책이 나올 때까지는 수익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게 두렵고 설레던 시간이 지나 첫 책인 <단단한 공부>의 표지 디자인이 나왔을 때 주위의 반응은 처참했다. ‘한글 파일에서 만든 거냐’는 반응은 양반이었다. 혹독한 평가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는 소신대로 세상에 내보였다.

그런데 생각 외로 좋은 평가가 쏟아지면서 다음 책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그렇게 한 권, 두 권이 쌓이고 어느새 82종의 책이 유유출판사에서 탄생했다.

 

 

파주에 위치한 땅콩문고는 조성웅 대표의 아내가 운영하는 작은 동네 책방이다.

“모든 책이 다 잘된 것은 아닙니다. 2016년에 나온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가 소위 히트를 치면서 그제야 유유를 제대로 알릴 수 있었고, 손익분기점을 넘긴 책은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월급을 집에 가져간 것도 몇 개월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꾸준히 고집스럽게 책을 내면서 독자들에게 유유출판사의 신뢰가 쌓인 점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죠.”

그는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큰 매력 중 하나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틀 안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결과물의 일부를 만지는 일을 한다.

1인 출판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온전하게 혼자서 모든 과정을 지휘하며 결과물을 받고, 또 그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다. 혼자 감당하고 감내해야 할 것이 많지만 그 과정 자체가 삶을 좀 더 단단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는 자부심이 있다.

“저는 무엇보다 제 운명을 제가 결정할 수 있게 됐다는 점, 자기주도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좋습니다. 쉽게 말해 누가 저를 자를 수 없게 됐다고나 할까요(웃음)? 그런 만큼 책임도 무겁습니다. 멋진 출판사, 제대로 하는 출판사, 모범적인 출판사 등 시간이 지나면 유유출판사를 말할 때 붙는 수식어가 그런 문구이길 바랍니다.”

 

 

추천 책은 인문학자 양자오의 동서양고전 시리즈. 원전을 읽기 전에 보면 좀 더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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