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른’이들! 동심 속에 살아요

기사 요약글

<마지막 강의>의 저자인 고 랜디 포시 교수는 동심을 잃을까 우려해, 셔츠 포켓에 크레용을 넣고 다니며 틈틈이 그 냄새를 맡았다고 합니다. 상식, 예의 같은 ‘어른 세계의 룰’을 따르느라 잊었지만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습니다. 동심 속에 성장하는 어른 세 명을 만났습니다.

기사 내용

 

내 영혼의 안식처, 아이들

배우 임채무

 


온갖 인간 군상 속에서 지친 날이면,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놀이공원을 찾아 웃고 떠드는 아이들 속에 묻혔다. 그렇게 치유받아왔기에 임채무가 지금껏 젊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실물이 훨씬 더 젊다 정신연령이 어려서 그런가? 서른 중후반밖에 안 된 기분이다. 덩치 좋은 청년이 지나갈 때마다‘저 친구랑 붙으면 내가 이길까?’ 속으로 생각해보거든(웃음). 술을 먹어도 새벽 서너 시면 일어나 운동을 나갈 정도인데 이상하게 앉았다 일어날 땐 나도 모르게 어이고 허리야 소리가 나온다.


나이 듦에 대한 아쉬움처럼 들린다 무슨 소리. 대통령한테‘님’자 안 붙여도 되는 지금 나이가 최고지. 내가 49년생인데, 지금부터 인생의 황금기가 시작된 거다. 30, 40대엔 한창 일하느라 혀가 빠지지, 50~60대엔 친구 자식 결혼식이다 부모님 초상이다 각종 애경사 쫓아다니느라 기운 빠지지. 70대 접어들면 그 많은 시간을 온전히 나한테 쏟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냐.


그 열정으로 이번에 열여덟 번째 앨범을 냈나 보다 그렇지. 타이틀곡‘99 88 내 인생’ 작사도 내가 했다.“아무리 힘들어도 오늘은 갑니다. 세상은 아름답지만 흰머리에 주름진 내 인생도 아름다워.” 어떤가? 내가 생각한 바를 끄적이다 보니 이런 가사가 나오더라. 앨범 재킷 사진을 보면 머리에 띠 두르고 산수 책을 펼치고 있는데 여기에도 나름 의미가 있다. 산수가 뭔가. 인생의 첫 시련 아닌가. 구구단 외우기부터 선생님한테 손바닥 맞아가며 인생의 시련을 배운다. 그렇게 이 나이에도 배우고 시작하자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노래에 담고 싶었다.


놀이공원을 개장해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들에게도 희망을 줬다. 무료 개방으로 결국 적자를 면치 못했다고 들었는데 왜 그런 사업을 벌였나 과거 경기도 양주의 송추계곡 쪽으로 촬영 갈 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술 먹고 고스톱 치는 어른들 옆에서 심심해하는 아이들을 봤다. 가족 나들이가 꼭 저런 모습이어야 하나 고민했고 그게 두리랜드 부지 구입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돈을 벌자고 들었으면 다른 사업을 했겠지만 나한테 두리랜드는 이윤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꾸밈없는 아이들의 웃음을 볼 수 있어서다. 아예 즐기려고 찾아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애들도, 부모도 모두 좋은 기운을 풍긴다. 현재 계절이나 날씨에 구애 없이 운영할 수 있는 실내 시설로 교체하는 중인데 내년 초쯤이면 아이들 안전교육까지 책임지는 훌륭한 놀이시설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왜 아이들을 그렇게 좋아하는가 모두 착하게 태어나지만 겪는 게 많아지면서 닳고 닳지 않나. 그 과정에서 어른으로 성장하기도 하지만, 남을 속이고 이용하고 멸시하는 못된 습성도 생겨난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백지장 같다. 아이들과 있을 때만큼은 나도 100% 편안하고 즐겁다.


아직도 순수한 동심을 유지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불로소득을 경멸할 때. 도박, 내기 골프 같은 건 딱 질색이다. 예전에 탄광 광부 역을 맡아 컴컴한 막장에 들어갈 일이 있었는데 연탄 한 장이 70원밖에 안 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한동안 한 잔에 400원 하는 다방 커피를 마다한 것도 연탄값과 커피값 사이의 괴리감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한 나만의 방법은 일본의 유명한 목공 조각가가 103세에 사망했는데, 그 집 창고를 열어보니 30년간 쓸 수 있는 목재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내일 할 일이 있는 사람은 늘 행복할 수 있다. 단, 내일의 걱정을 오늘로 끌어오진 마시고!

 

 

생각하는 대로

배우 노현희
 


 

원래 배우였던 노현희가 노래를 하더니 이제 유튜브 방송에서‘책 읽어주는 여자’로 통한다. 그녀는 주저함 없이 그때그때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이야말로 자신의 롤 모델이라며 웃는다.

 

최근 발표한‘탱고야(夜)’부터 데뷔 곡‘미대 나온 여자’까지 다 들어봤다. 노래 실력이 이렇게 출중할 줄이야 옛날부터‘얼굴 없는 가수’를 좀 했다(웃음). 아주 예전에 한 힙합 그룹의 객원 보컬로 활동한 적이 있는데 그땐 배우 인생에 마이너스가 될 것 같아 가면 쓰고 노래를 불렀다. 알게 모르게 선거 송도 숱하게 불렀다. 정식 가수 데뷔 제안을 다 마다했지만, 극단 대표로 여기저기 무대에 오르다 보니 사람들이 그렇게 노래를 시키더라. 결국 남의 노래보다 내 노래를 부르고 싶은 마음에 앨범까지 내게 됐다.


최근 시작한‘유튜브 방송’에서도 예쁜 목소리가 돋보이더라 아직 한 달이 채 안 돼 어설픈 점이 많지만‘내가 크리에이터다’라고 생각하면서 차근차근 배우고 있다. 친구, 사랑, 인간관계, 돈 같은 주제에 대한 책을 낭독한 뒤 내 생각을 덧붙이는데, 위로가 됐다는 댓글이 달릴 때마다 더 좋은 책을 찾아 읽어주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지금은 어른들을 위한 콘텐츠를 주로 올리지만 곧 어린아이들을 위한 동화도 읽어줄 예정이다. 내가 목소리 연기가 좀 되거든(웃음). 어린이 관객 앞에서 손가락 인형극을 하면 반응이 그렇게 좋다.


노현희 하면 사실<대추나무 사랑걸렸네>의 왈가닥 명자를 떼놓기가 어렵다. 그래서일까? 아직도 철부지 아이 같은 면이 느껴진다 잘 봤다. 내가 원래 철이 없다. 이 나이에도 말괄량이, 천방지축, 푼수 같은 수식어가 어울리는 몇 안 되는 어른이다(웃음). 초등학교 2학년짜리 조카와 노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걔랑 동요도 부르고 구호도 외치고, 율동도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눈높이가 비슷하달까.


마음속에 동심을 품고 사는 장점이 뭘까 원하는 꿈을 실현하며 살 수 있다는 점. 경험이 많은 어른들은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는 계산을 하느라 정작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데 뭣 모르는 애들은 그렇지 않거든(웃음). 돈벌이는 안 되지만 나나 후배들이 마음껏 연기할 수 있도록 극단을 운영하는 일, 필리핀 쓰레기 마을이든 노숙자 급식소든 내 도움이 필요한 곳에 봉사하러 가는 일 모두 내가 이루고 싶은 꿈들 중 하나였다. 또 하나의 장점은 최악을 최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아닐까? 이혼, 성형 부작용 같은 사정이 알려지면서 연예인 자살 소식만 터지면 다들 나한테 안부 전화를 하는데 나는 털어버린 지 오래다. 성형 부작용을 겪은 사람들을 위해 온라인 카페를 개설해 상담해준 일이나 완벽히 재건되지 않은 얼굴로 방송 활동을 시작한 것도‘이만하길 다행이다’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문제가 생기면 그것만 바라보지 그것과 얽힌 복잡한 것들을 끝없이 끌어들여 괜한 감정 소모를 하지 않으니, 난 그 점이 마음에 든다.


‘어른의 삶’에 짓눌린 사람들에게 조언한다면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 눈치 보느라 하고 싶은 걸 포기하며 사는 경우가 많은데 욕을 꽤 많이 먹은(웃음)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래도 해보고 후회하는 게 더 낫다. 의외로 나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되는 데다 혹시 상처를 받더라도 훗날 돌이켜보면 별일 아니라는 걸 알게 될 테니 말이다. 빨간약을 처음 바를 때만 아프지 딱지가 앉으면 끽해야 간지러울 뿐인 게 바로 또 상처다. 그러니 짧은 인생, 지금부터라도 생각대로 살자. 의외로 별일 안 일어난다.
 

 

 

격투와 기부가 만나면

엔젤스파이팅 박호준 대표
 


한때는 거친 삶을 살았지만 이제는 아픈 아이들의‘천사’로 거듭난 사람이 있다. 격투를 통해 동심에 꿈과 희망을 심어주겠다는‘엔젤스파이팅’ 박호준 대표 얘기다.

 

복싱 선수 출신의 헤어디자이너로 유명했다 지금도 현업에 종사하는 베테랑 헤어디자이너다. 몇달 전엔 부산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미용실도 열었으니까. 중학생 때부터 복싱을 시작해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사고 많이 쳤다(웃음). 그러다 정신 차리고 미용 일을 시작했는데,‘헤어 퍼포먼스’ 분야에서 인정받으며 해외 무대에도 많이 올랐다. 나름 인생 반전에 성공한 셈이다.


그 인생 반전이 현재 진행형이다 2년 전 내가 만든‘엔젤스파이팅’이라는 기부 단체를 말하는 거라면, 그렇다. 배우 정준호 씨와 구상 단계에서부터 머리를 맞대며 만든 세계 최초의 격투 기부 단체다.


왜 하고많은 방법 중에 격투였나 앞서 잠깐 얘기했듯 10대 시절부터 복싱을 했다. 오랜 취미였던 만큼 미용실을 운영하면서도 언젠가는 복싱 관련 일을 해보고 싶었다. 동시에 아픈 아이들에 대한 관심도 컸다. 헤어 쇼에서 번 돈을 기회가 될 때마다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기부하곤 했으니까. 아무튼 그 두 가지를 접목하다 보니 격투 기부 단체라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엔젤스파이팅이라는 단체명도 내가 직접 지었다.‘천사의 격투’란 의미인데, 뭔가 따뜻한 느낌이 들지 않나.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격투 대회를 열어 입장 수익 전액을 희귀 난치병 어린이에게 기부하고 있는데, 아이들을 돕게 된 특별한 사연이 있나 특별한 사연이라기보다 그저 아빠의 마음에서다. 방송에서 아픈 아이들의 사연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몸은 아픈데 돈은 없고, 치료를 못 받으니까 꿈과 희망도 사라진 아이들. 자식을 둔 아빠로서 어떻게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있겠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시작했다. 대단한 일은 아니다. 작은 마음을 전달할 뿐이다.


그 작은 마음이 동심을 꽃피우게 하는 것 아닐까. 지금까지 어떤 아이들이 천사의 도움을 받았나 희귀 난치병에 걸린 아이들에게 1억원가량의 수술비를 지원했다. 희귀 난치병은 종류도 많고 한 번 수술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데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니 속수무책으로 병을 키우는 사례가 꽤 많다. 기부금은 삼성서울병원, 밀알복지재단 등을 통해 전달하고 있는데, 사실 마음은 더 많이 지원하고 싶지만 아직은 여력이 안 된다. 대회 입장료가 유일한 수익인데 아직은 적자다. 그래도 어디 처음부터 쉬운 일이 있겠나. 사명감을 갖고 하다 보면 내 뜻에 동참하는 이들이 늘어나리라 믿는다.


열정이 대단하다. 이 일이 남다른 보람을 주는가 보다 ‘나눔은 가진 것의 크기가 아닌 마음의 크기’라는 말이 있다. 참 좋은 말이다. 명문대 나오고 돈 많다고 해서 뜨거운 심장을 가진 건 아니다. 비록 내가 과거엔 거친 삶을 살았지만, 지금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기쁘다. 나의 세 딸들도 아빠를 아주 자랑스러워한다. 선수들 역시 자신들이 참여하는 경기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는 사실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낀다. 이러니 어찌 열정이 식을 수가 있겠는가.


엔젤스파이팅의 미래가 궁금하다 내년부터는 경기 횟수를 지금의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또 중국, 태국, 필리핀 등 해외에서도 경기를 열어 거기서 얻은 수익금을 형편이 어려운 그 나라 아이들에게 기부할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아이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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