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3개국을 걷는 길 투르 뒤 몽블랑

기사 요약글

알프스 파노라마를 바라보며 계곡과 능선을 오르내리는 감흥은 걸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기사 내용

도보 여행가 이영철이 보내온 열흘간의 몽블랑 종주 여정을 공개한다.

유럽의 지붕이라는 알프스산맥, 그 수많은 명산 중 최고봉은 해발 4807m의 몽블랑(Mont Blanc)이다. 몽블랑이라는 이름의 뜻을 살펴보면 우리의 백두산(白頭山)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 다 ‘하얀(Blanc) 머리의 산(Mont)’이다. 만년설로 산 정상이 사시사철 하얗게 보이는 데서 유래했다. 알프스의 수많은 산 중에서 몽블랑을 중심으로 한 십여 개의 산군을 타원으로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이 ‘투르 뒤 몽블랑(Tour du Mont Blanc, 약칭 TMB)’이다.

투르 뒤 몽블랑은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3개국 땅을 고루 경유하며 하나의 길로 이어진다. 우리의 지리산 둘레길이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세 지역에 걸쳐 있는 것과 같다. 한 나라의 세 지역 사이에도 미묘한 문화 차이가 있듯이, 유럽의 세 나라를 지나며 문화적, 지리적, 심지어 사람들 분위기까지 다양한 차이를 비교해볼 수 있다.
 

10일간의 여정

프랑스의 레우슈 마을에서 시작해 이탈리아와 스위스를 거친 후 다시 레우슈로 돌아오는, 총거리 170km의 원점 회귀 순환길이다. 나라와 나라의 오래된 길들이 하나의 길로 이어지며, 산과 산이 계곡과 산골 마을로 연결되다가 결국은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타원을 그리는 양방향 길이지만 시계 방향보다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일주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종주 기간은 사람에 따라 9일에서 12일이 걸린다. 프랑스 이틀 반, 이탈리아 사흘, 스위스 이틀 반, 그리고 다시 프랑스를 이틀 동안 경유하는 총 10일 여정이 일반적이다.

투르 뒤 몽블랑의 관문은 프랑스 남동쪽 국경지대의 산악 도시 샤모니다. 인류 등반 역사의 첫 페이지가 바로 이곳에서 쓰였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결의를 다진 후 본격적인 여정에 나선다.

1일째

샤모니에서 버스로 15분 거리인 레우슈에 내려 트레킹을 시작한다. 두 갈래 길이 있지만 난도가 더 높은 트리코 고갯길을 택하는 게 좋다. 첫날부터 만나는 환상적인 알프스 전망이 의지를 불태운다.
 

2일째

해발 2500m의 알프스 설원 본옴 고개를 넘는다. 여름에도 아이젠을 챙겨야 하는 이유다. 나는 6월 말에 가서 아이젠을 준비하지 않았다가 가파른 설원 능선을 아주 위태롭게 넘었다.

3일째

프랑스에서 이탈리아 땅으로 넘어간다. 이른 아침부터 고도차 1000m를 내려온 후 다시 1000m를 더 올라가야 국경인 세이뉴 고개에 이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세이뉴 고개에서 바라보는 이탈리아의 산과 계곡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는 느낌이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묘한 감흥을 주체할 수 없는 지점이랄까.
 

4일째

몽블랑 정상과 근접해지고 있다. 몬테파브로 중턱에 오르면 몽블랑 봉우리와 주변 빙하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TMB 전 구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악 도시인 쿠르마예르와 만나는 날이기도 하다. 벌써 무언가를 이룬 듯한 느낌이다.

5일째

몸은 피로해지는, 그래서 슬슬 ‘포기’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피어오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체 일정 중 가장 편안하고 여유로운 날이 바로 오늘이다. 베르토네 산장에서부터 엘레나 산장까지 해발 2000m 능선을 완만하게 걷는다. 포기는 마음속에서 사라지고 다시 느긋하게 풍광을 만끽한다.
 

6일째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넘어간다. 국경인 페레 고개의 이탈리아 쪽은 경사가 가파르고 빙하가 많아 아찔한 순간이 이어진다. 하지만 고개를 넘어 스위스 땅으로 내려서니 대자연의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잿빛 무채색의 웅장함에서 연둣빛 천연색의 따스함으로 극적인 전환이 이뤄진다.

7일째

동화나 그림에서 익히 보아온 아름다운 스위스 마을들을 종일 만나며 지난다. 온종일 두리번두리번 돌아보는 재미가 있다. 몽블랑과는 가장 멀어졌지만 알프스 산골 마을에 들어와 있음을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다.
 

8일째

스위스에서 다시 프랑스로 넘어가는 날이다. 국경인 발므 고개를 넘으려면 고도차 700~900m의 산을 두 번 넘어야 한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10일 중 가장 험난한 날이지만 펼쳐지는 대자연도 그에 상응하여 역동적이다.

9일째

첫날 남단에서 헤어졌던 샤모니 계곡과 북단에서 다시 조우한다. 하얀 호수 락블랑에 오르면 일렬로 선 몽블랑 산군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호숫가 산장에서 알프스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거의 다 끝났다는 마음도 잠시, 곯아떨어지기 바쁘다.
 

10일째

마지막 고지인 브레방 고개는 7월 이전이라면 가파르고 쌓인 눈이 많아 케이블카를 이용해야 할 수도 있다. 브레방부터 고도차 1500m를 가파르게 하산하여 레우슈에서 TMB 타원 종주를 마친다.

11일째

트레킹을 마치고 샤모니로 돌아오면 대부분 다음 날 유럽 최고의 전망대인 에귀뒤미디에 오른다. 나 역시 마찬가지. 케이블카로 해발 3842m 전망대에 올라 알프스 전체를 조망하며 걸었던 둘레길을 다시 한번 눈으로 확인해본다. 악마의 긴 혀처럼 늘어진 여러 빙하가 장관을 이루고, 멀리 마터호른의 뾰족한 봉우리도 볼 수 있다. 종주했다는 만족감이 이곳에서 온몸으로 퍼진다.

 

몽블랑 둘레길에 도전한다면

고도차 1000m 내외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매일 반복되는 몽블랑 둘레길은 한라산 백록담을 매일 한 번씩 올랐다 내려오기를 10일 동안 반복하는 수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발 전에 체력 훈련을 해두면 훨씬 더 유쾌한 여정이 될 수 있다. 주말이면 동네 뒷산이라도 오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해지는 기질이라면 누구든지 몽블랑 둘레길 종주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체력이 염려되면 종주 기간을 2~3일 늘려 잡는 것도 방법이다. 체력은 물론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면, 일부 구간을 대중교통으로 건너뛰는 방법도 있다.

 

찾아가는 교통편
몽블랑 관문인 샤모니는 프랑스 지역이지만 파리보다는 스위스 제네바 공항이 훨씬 가깝다. 제네바 공항에서 샤모니까지는 리무진 버스로 한 시간 거리다.

숙박
매 코스마다 산장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산장이 6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만 영업한다. 이 시기에 맞추어 숙소를 확인하고 예약하는 것은 필수다.

최저 비용
숙박비와 식사 비용으로 하루 최저 10만원 정도 소요된다. 샤모니 2박을 포함해 총 12일에 120만원 정도 든다. 제네바 왕복 항공료 100만원(2, 3개월 전 예약)을 합하면 총 220만원.

여행하기 좋은 계절
산장이 문을 여는 6~9월 중에서도, 알프스의 설원을 사각사각 밟고 싶다면 월동 장비를 갖춰 6월 중하순에 가는 것이 좋다. 안전제일주의라면 눈이 거의 녹은 7월 중순 이후가 좋다.

 

도보 여행가 이영철

퇴직 후 5년 동안 자신이 선정한‘세계 10대 트레일’을 모두 종주했다. <안나푸르나에서 산티아고까지><동해안 해파랑길, 걷는 자의 추억><영국을 걷다, 폭풍의 언덕을 지나 북해까지> 등 4권의 여행서를 출간했다. 그의 여행 기록은 블로그 누들스 라이브러리(blog.naver.com/noodles819)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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