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 편

기사 요약글

기사 내용

20's
1981년 MBC 개그콘테스트 은상으로 일찍 데뷔한 이경규는 데뷔는 빨랐지만 10년의 무명 생활을 겪었다. 20대 내내 선배들의 콩트에 가끔 출연하는 것 외에는 개그맨으로서 활약이 거의 없었다. 특기는 중국어 연기였는데, 일주일에 스케줄이 하나도 없는 날이 허다했다고. 하지만 이때에도 이경규는 언젠가 자신에게 기회가 올 거라고 믿었다.

30's
MBC<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주병진의 보조 MC로 출연해 자기 코너인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를 시작했고,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최고의 인기 개그맨에 등극했다. 1991년, 1992년 연달아 MBC 코미디 대상을 차지하며 최고의 영예를 누릴 때 그의 나이 겨우 34세였다. 이후로도 <오늘은 좋은날>, <일밤-이경규가 간다>가 성공하며, 1990년대는 이경규의 시대였다. 물론 1992년 야심 차게 감독에 도전한 <복수혈전>이 흥행에 실패했지만 개그맨 이경규의 위세는 여전했다. 1998년 이경규는 삼십대 후반의 나이에 돌연 일본 유학을 떠났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지쳤고 떠나고 싶어서였다.

40's
2000년 한국에 돌아와서 MBC <느낌표> <전파견문록> <일밤>에서 활약할 때 그의 나이 42세였다. 하지만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이경규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20년 동안 애정을 가지고 일했던 <일밤>이라는 직장에서 2008년 해고 통보를 받았을 때가 47세였다. 이후에 ‘이경규’ 이름을 걸고 했던 김밥, 치킨 사업도 소리 소문 없이 문을 닫았다. <일밤> 하차는 이경규 인생에 가장 큰 충격이었다. 그는 미끄러지고서야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년에 갑자기 찾아온 실패로 공황장애를 겪었고, 어디에도 자신의 자리가 없는 것 같은 고통을 겪었다.

50's
내 고집을 버려야겠다고 마음먹고 50세에 만난 프로그램이 KBS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과 SBS <힐링캠프>였다. 그 결과 이경규는 2010년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받으며 1인자로 복귀했고, 2014년에는 SBS 연예대상 대상 수상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방송은 물론 영화 제작에 참여한<복면달호>도 인정받았고, 요리법에 참여한 팔도 ‘꼬꼬면’도 대박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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