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시대, 무인점포 창업 특집>
1. 코인 세탁소 2년 차, 김영완 씨
왜 밖에서 빨래를 해?
한 중견기업에서 부장으로 일한 지 3년. 퇴직에 대한 고민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무렵 아내가 대뜸 빨래방을 하나 차리면 좋겠다는 말을 던졌다. 건너편 빨래방에 자기 같은 주부들이 줄을 섰는데 20분이나 기다리고 나서야 간신히 기계 하나를 잡았다는 것이다. 주말에 아내와 함께 빨래방에 가봤더니 정말 여러 대의 세탁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20평(66 m2)도 안 되는 자리에 세탁기와 동전 바꾸는 기계, 세제 자판기, 의자와 테이블만 두면 된다니 이 정도라면 나도 한번 차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프랜차이즈 vs 개인 점포, 정답은 없다
줄줄이 쏟아지는 창업 정보 속에서 ‘진짜’를 거르는 게 첫 번째 관문이었다. 프랜차이즈건 개인 창업이건 하나같이 ‘소자본 무기술’을 내세웠다. 그런 문구에 혹할 만큼 순진하지 않았기에 박람회 등을 다니며 정보를 모았고, 온라인 창업 카페 서너 곳에 가입해 알짜 정보를 정리했다. 프랜차이즈는 개인 창업에 비해 돈이 더 드는 대신 세탁 기기부터 시공, 초기에 드는 비품까지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개인 창업은 무엇이든 혼자 알아보고 결정해야 하는 대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프랜차이즈는 브랜드마다 다르지만 가맹비를 포함해 최소 1억원부터 많게는 2억 5000만원까지 자본금이 필요했다. 개인 창업에서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하는 건 세탁기였는데, 아무리 아낀다 해도 인테리어까지 포함해 7000만원은 들었다. 이렇게 자본금 차이가 크니 처음에는 개인 창업을 주로 알아봤다.
그러나 프랜차이즈로 다시 가닥을 잡게 된 건 점포 위치 선정부터 시공 문제, 세탁기 브랜드 등 공부하고 알아볼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점 때문이었다. 세탁기는 국내 브랜드를 쓸지 해외 브랜드를 쓸지, A/S를 어떻게 받는지, 시공, 배수, 전기 문제까지 공부하려니 회사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돈으로 시간을 산다는 셈치고 대출을 받아 자본금 1억원으로 프랜차이즈를 선택했다.
그냥 빨래방보다는 기능을 더한 멀티 숍
프랜차이즈 선정이라고 쉬웠을까?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유명 프랜차이즈일수록 가맹비가 비싸 1억원으로는 엄두도 못 냈다. 다행인 건 무인 빨래방은 유명 브랜드라고 해서 소비자가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렴한 비용으로 빨래만 잘 되면 되니까. 그렇게 내가 선택한 곳은 드라이클리닝까지 맡길 수 있는, 기존 빨래방보다 좀 더 경쟁력을 갖춘 ‘약간 덜 유명한’ 프랜차이즈였다.
사실 이 경쟁력 지점에서 고민이 많았다. 강남에는 기존 빨래방에 드라이클리닝과 수선이 가능한 세탁소, 카페, 네일 숍까지 더해진 멀티 숍이 넘쳐났다. 때문에 ‘오직 빨래만’ 하는 1세대 빨래방은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었다. 내 자본금으로는 세가 비싼 지역은 어불성설이었고 멀티 숍을 무인으로 운영할 수도 없어 결국 세탁+드라이클리닝 정도에서 타진을 본 것이었다.
브랜드 결정이 끝나니 다음은 입지 선정. 입지에서 가장 귀중하게 들은 조언은 신규 아파트 지역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입주한 지 얼마 안 된 아파트에는 이미 건조기가 설치돼 있는데, 무인 빨래방 수익의 8할은 건조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본사에서 추천하는 지역과 우리 집 반경 거리 등을 고려해 오래된 주택 건물에 딸린 10평(33 m2) 남짓한 월세 80만원의 1층 상가를 임대했다.
자동차 1대를 주차할 수 있고, 200m 거리에는 오피스텔 촌, 인근에는 젊은 부부가 사는 빌라가 많아 나름 괜찮은 입지였다. 전기, 배수 시설 등 두 달간의 공사 끝에 세탁기 3대, 건조기 3대를 설치했고, 드라이클리닝을 맡길 수 있는 무인 기계와 보관함까지 넣어 그럴싸한 무인 빨래방을 차렸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
오픈 직후에는 하루에 5명도 오지 않아 두렵기도 했지만 맘 카페에 열심히 홍보 글을 남기며 불안감을 잠재웠다. 그런데 한 달이 막 지났을 무렵 민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세탁기 소리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본사에 A/S 신청을 넣어보니 역시나 공사를 다시 해야 했다. 운영한 지 4개월 정도 됐을 때는 쓰레기 민원이 속출했는데, 음료를 쏟고 그냥 가는 사람, 바닥에 쓰레기를 그냥 내버리는 사람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조금이라도 지저분하면 손님이 바로 떨어지는 매출 절벽을 실감한 달이었다. 이뿐인가. 골목 안에 있는 빨래방에 노숙자는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새벽에도 긴장의 연속이었다. 단순 사용법 문의도 많다. 사용법이 매장 곳곳에 커다랗게 적혀 있음에도 걸려오는 전화는 밤이고 낮이고 새벽이고 가리지 않았다. 겸업의 피로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6개월 정도 지나 얻은 큰 깨달음은 무인 빨래방 주인의 가장 큰 미덕은 첫째도 둘째도 청소라는점이었다. 이틀에 한 번 방문해 꼼꼼하게 청소하고 모자란 비품을 채워 넣어야 했다. 주말에는 문의 전화도 많고 쉽게 지저분해지기 때문에 cctv를 수시로 살피며 출동 준비를 해야 해 멀리 외출을 하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꿨다. 이렇게 1년 가까이 밤낮없이 매달리고 나니 손님과 마주치면 불편한 점은 없는지 등을 물으며 주인이 얼마나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는 빨래방인지 어필하는 홍보 요령도 생겼다.
무인 빨래방 2년 차, 수익은?
직접 운영해보니 무인 빨래방은 대박 사업이 절대 아니다. 돈을 못 번다는 게 아니라 수익이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더 이상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다. 온라인에 떠도는 ‘안정적 수익’이란 홍보 문구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셈이다. 2년 동안 쉬지 않고 24시간 점포를 돌려보니 한 달 매출 400만원을 넘기 힘들었다. 온라인 맘 카페 활동, 전단지 홍보 등으로 어느 정도 단골 고객을 확보했음에도 말이다.
고정 지출은 임대료 80만원, 수도세와 전기세를 포함한 공과금 40만원, 대출 이자 10만원, 비품 구입 및 유지비 20만원으로 150~160만원 정도다. 400만원에서 제하고 많이 남으면 250만원이다. 코로나가 한창인 지금은 손님이 줄어서 200만원 정도 수익을 내고 있다.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이 일만으로 먹고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세탁기의 감가상각은 계산에 넣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두 번째 점포를 꿈꾸는 이유
무인 빨래방은 전업이 아닌 부업으로는 추천할 만하다. 나 자신의 인건비를 차치하고 마이너스만 나지 않는다면 100만원을 벌든 50만원을 벌든 내 월급에 더해지는 부가 수익이니 말이다. 하지만 매일같이 새로운 콘셉트와 서비스로 문을 여는 예쁘고 멋진 빨래방을 보면 고민이 많다. 지금이야 나와 비슷한 빨래방 수준의 경쟁 점포이지만 언제 저런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빨래방이 생겨날지 모르는 거 아닌가.
그래서 5년 정도 무탈하게 운영하다가 퇴직 후를 대비해서 지금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두 번째 빨래방 오픈을 계획하고 있다. 첫 번째 점포에서 개인 창업으로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빨래방도 트렌드라는 사실을 매일 체감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도, 점포도 시대에 맞춰 변신해야 한다.
기획 장혜정 글 김나연 사진 박충렬(스튜디오텐),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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