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집, 공부하는 어른>_페미니스트가 된 50대 아재

기사 요약글

대화 디자이너 신호승 씨는 5년째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페미니즘이 여성 인권운동을 넘어 사람을 이해하는 학문이며, 대화의 본질과 통한다고 말한다. 50대가 가장 공부하기 좋은 나이라고 말하는 그의 이야기.

기사 내용

 

 

<신년특집, 공부하는 어른>

 

1. 난독증 극복한 중년 ‘공신’, 노태권 씨 

2.  페미니즘 공부로 세상을 이해하는 대화 디자이너, 신호승 씨

3. 춤으로 몸을 공부하는 약사, 이영주 씨

 

 

 

 

 

신호승 씨는 주변 남성들에게 ‘역적’으로 불린다. 남성, 그것도 기성세대라고 칭하는 중년 남성이 페미니즘을 공부해서다. 그럼에도 50대 초반, 뜻 맞는 사람들과 시작한 페미니즘 공부를 5년째 꿋꿋이 이어오고 있다.

 

“제 친구들은 50대 중반의 남자로, 대부분 회사 임원이거나 학교 교장이거든요. 친구들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본인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과 삶의 근본이 흔들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왜 50대 남자가 페미니즘을 시작했을까. 그의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은 20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시절, 대학생이었던 그는 아스팔트 위에서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살았다. 그는 그 시절 만난 여성 학우들에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듣게 됐고, “지적인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더 알고 싶은 생각이 들어 페미니즘 모임에 찾아가기도 했다. 모임이나 세미나에 참가해 책을 읽고 토론도 했지만 남자라는 이유로 의도치 않게 모임 사람들의 분노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 역시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결국 내적 갈등을 겪으며 공부를 포기했다.

 

그러나 공부에 대한 아쉬움은 결혼해서 딸을 낳아 기르면서도 마음 한쪽에 자리했고, 중년이 훌쩍 넘은 2016년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50대가 됐을 때 이제껏 살아온 시간에 대해 되돌아보게 됐어요. 인생 후반기를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페미니즘을 통해 내 삶을 재조명하고 이후의 삶을 세워야겠다’고 결심했죠. 다행히 동네 친구 한 명과 뜻이 맞아 공부를 시작했고, 남성이라는 한계를 넘기 위해 여성 분들과 함께 공부하게 됐죠. 지금은 6~7명 정도 모이고 있어요.”

 

 

 

 

 

페미니즘은 인간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

 

 

신호승 씨가 페미니즘에 대해 열린 시각을 가질 수 있었던 건 환경의 영향이 크다. 어머니가 미용실을 한 덕분에 여성들과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생활에 익숙했고, 대학도 여학생이 많았던 사범대(교육학 전공)를 나왔다. 게다가 결혼해서 딸을 낳았으니, 그의 인생은 여성과 소통해야만 했던 시간이었다. 그가 페미니즘 공부를 한다고 했을 때 아내와 딸의 반응이 궁금했다.

 

“처음에는 비웃더라고요. 딸은 ‘아빠가 뭘 아냐?’ 하는 식이었어요. 제가 집에서 평생 해온 꼴을 알기 때문이죠. 왕처럼 군림하고, 소리도 지르고… 그걸 20년 동안 봐왔으니 혀를 끌끌 찼어요. ‘차라리 모르는 게 낫지, 어설프게 알아봐야 위험하다’는 이유였죠.”

 

그는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가사 노동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가사 노동이 얼마나 여성을 옥죄고 있는지, 또 여자는 가사 노동, 남자는 바깥일이라는 구분 자체가 남녀 간 불평등의 원인이라는 걸 알게 됐죠. 그때부터 집안일을 스스로 찾아서 했더니 똑같은 일이라도 재미있더군요. 그동안에는 아내가 지시하고, 저는 점검받는 입장이었으니 늘 짜증나고 학생 같은 기분이었거든요.”

 

그의 직업은 ‘대화 디자이너’다. 그는 생소한 자신의 직업에 대해 “공동체와 각 개인이 어떻게 대화할 것인지 설계해주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면서, “대화도 건축처럼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가깝게는 진로를 앞둔 부모·자식 간 갈등을 대화로 풀어나가는 일부터, 멀게는 남북 정상 간의 대화까지 아우른다. 얼마 전 출간한 <삶을 위한 대화 수업>에 이 같은 이야기를 담았다. 이쯤 되면 대화와 페미니즘, 둘 사이의 관계가 궁금해진다.

 

“페미니즘은 인식론이지 투쟁 이론이 아니에요. 세상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기존의 차별적인 질서를 다르게 보는 거예요. 기존 질서에 반하기 때문에 페미니즘이 급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화도 본래 급진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지요. 대화는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한다면 대화가 아닌 폭력이죠. 대화는 늘 공동의 합의체를 찾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50대는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이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가장 많이 달라진 게 무엇일까? 그는 “세상을 보는 눈”이라 답한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100년 전 조선시대에는 양반과 상민의 구별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지금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대, 역사, 맥락에 따라 상대화시킬 수 있어요. 나의 믿음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점검해봐야 하죠. 소크라테스는 ‘검증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어요. 동서양의 모든 고전은 나의 사유나 행동을 점검하라고 합니다. 그게 바로 공부예요. 그래서 노년기에 공부가 필수죠. 공부를 통해 자신을 알고 이해하면 타인에 대해 너그러워질 거예요.”

 

다만 중·장년기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내려놓을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세상의 지식이 있다면 그중 내가 아는 건 1%, 모르지만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15%, 나머지는 모르는 거라고 한다”면서, “자신이 진짜 재미있는 것을 찾아서 배우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그가 추천하는 공부법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다. 유튜브 같은 영상은 상상력을 제한하니 꼭 텍스트로 공부하길 당부했다. 글을 쓴다는 것도 특별하지 않다. 누가 읽든 말든 상관없이 블로그나 SNS에 읽은 것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쓰면 된다. 그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어떤 것부터 접하면 좋을까? 그는 김수정 변호사가 쓴 <아주 오래된 유죄>를 추천했다. 그는 이 책에 대해 “실제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여성 관련 사건을 통해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페미니즘은 바로 우리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현실을 들여다보고 사유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공부의 본질인 것이다.

 

 

 

기획 장혜정  두경아 사진 박충렬(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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