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집, 공부하는 어른>_난독증 극복한 중년 ‘공신’

기사 요약글

중졸 학력과 난독증으로 한글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막노동판을 전전하던 노태권 씨는 마흔세 살에 한글 공부를 시작,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을 거쳐 수능 모의고사 만점을 받았고 두 아들을 서울대에 보냈다. 공부가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다.

기사 내용

 

<신년특집, 공부하는 어른>

 

1. 난독증 극복한 중년 ‘공신’, 노태권 씨 

2.  페미니즘 공부로 세상을 이해하는 대화 디자이너, 신호승 씨

3. 춤으로 몸을 공부하는 약사, 이영주 씨

 

 

 

노태권·최원숙 부부는 이미 유명 인사다. 노태권 씨는 아내의 도움으로 난독증을 극복했고, 막노동을 하면서도 열심히 공부한 결과 수능 모의고사에서 만점을 맞은 드라마틱한 사연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는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왔다. 그가 주목받은 또 하나의 이유는 게임중독에 빠져 중학교 졸업, 고등학교 중퇴가 최종 학력이었던 두 아들을 직접 가르쳐 서울대학교에 입학시켰다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공부의 신’이 아닐 수 없다.

 

 

수렁에서 건져준 아내 그리고 공부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그는 소위 ‘까막눈’이었다. 중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막노동판에 뛰어들었고, 서른다섯 살까지 결혼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던 중 친구 아버지의 주선으로 은행에 다니던 동갑내기 여자, 지금의 아내를 소개받아 “한글을 배우겠다”고 약속한 뒤 결혼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평생 불가능했던 공부가 잘될 리 없었다. 아내는 직장 생활하느라 바빴고, 그는 자재 납품 사업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던 중 IMF가 터졌고 빚이 산더미처럼 생겼다. 집을 팔아도 해결되지 않자 아내는 채무자들에게 퇴직금으로 빚을 갚아주겠다고 약속한 뒤 은행을 그만뒀다. 오직 죽어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남편을 일으킨 건 역시 아내였다.

 

“아내가 ‘당신 한글 배운다고 하지 않았냐. 한글을 배우고 나서 죽고 사는 문제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설득했어요. 그렇게 인생 막다른 길에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난독증은 뇌의 기질적 원인에 의한 신경발달장애로, 글자를 인식하는 데 문제가 있는 질환이다. ‘흥’이 ‘ㅎㅎ’로 보이는 식이다. 이 때문에 아내는 모든 글자를 그가 인식할 수 있는 형태로 쪼개 쓴 낱말 카드를 만들었고 남편은 그걸 공사장에 들고 다니면서 틈날 때마다 외웠다. 결국 노태권 씨는 4~5년 만에 한글을 뗄 수 있었다.

 

 

 

 

내 안의 호기심을 깨워라!

 

 

한글만 배운다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식이 쌓이는 건 또 별개였다. 좌절에 빠져 있을 때 또다시 손을 내민 건 아내였다. 

 

“아내가 초등학교 1학년 책을 모두 사왔어요.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해 고등학교 3학년 과정까지 3년 만에 끝낼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모든 과목을 요약정리하거나 녹음해줬고, 그걸 저는 통째로 외웠어요. 단순노동이 좋은 게 머리로는 다른 생각(공부)을 할 수 있다는 점이죠. 공사장에서는 달가워하지 않았어요. 제가 쉬는 시간에 노트를 펴놓고 공부하고 있으면 발로 차기도 했죠.”

 

그는 당시 전국을 다니며 일하는 막노동꾼이었고, 아내가 한 달에 한 번 찾아와 요약 노트와 녹음 파일을 건네주고 갔다. 이런 아내의 헌신과 그의 노력 덕분에 그는 2006년 수능 모의고사에서 7회 연속 전 과목 만점을 받았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그가 공부에만 신경 쓰는 동안 그의 두 아들은 게임에 빠져 학교도 제대로 나가지 않고 있었다.

 

“저는 ‘계절 아빠’였어요. 1년에 잘해야 4번 아이들 얼굴을 보았죠. 우연히 미국 유학 기회가 생겼지만 보류하고 일단 중학교만 졸업시키자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공부시키기 시작했죠. 저는 게임하는 걸 말리지도 않으면서 매일 아들과 함께 25km씩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터득한 공부법을 아이들에게 적용해 조금씩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10분, 20분, 조금씩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갔다. 아내는 “남편이 아이들과 밀고 당기기를 잘했다”면서 “아이들이 아빠가 오늘은 무슨 말을 할까 기대하더라”고 말했다. 

 

 

 

 

노태권 씨의 노력으로 아이들은 나란히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이쯤에서 그의 공부 방법이 궁금해진다.

 

“사회와 과학은 재미있었지만 수학은 어려웠어요. 그래서 저는 모든 단원에서 예제만 풀고 단계를 높이지 않은 채 몇 번 반복학습을 했어요. 그걸 충분히 익힌 다음 유제와 심화 문제를 풀면 아주 쉽지요.”

 

독서 능력이 필요한 비문학의 경우, 모든 글의 첫 문단만 읽기도 했다.

 

“비문학 1문단이 대략 200~250자 정도 되는데, 틀려도 좋으니 첫 문단만 읽고 다음 내용을 예측하는 거예요. 얼마나 궁금하겠어요? 누워서도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잠이 안 올 정도예요.”

 

그는 공부를 할 때 호기심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호기심을 잘 이용하면 생각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그가 이름 붙인 ‘3, 3, 3 공부법’이 그 결정판이다.

 

“저는 3일(3)에 걸쳐 문제를 3번(3) 풀었어요. 3일(3)째 됐을 때 답을맞춰봐서 답이 오락가락하는 건 다시 공부하고 3일 내내 똑같은 답이 나온 건 따로 공부하지 않았어요.”

 

 

 

 

그는 현재 인권변호사의 꿈은 접고 게임 개발과 출판 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펼치고 있다. 공부는 계속 진행 중이다.

 

“공부를 하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달라졌어요. 춘천에서 연탄 배달을 했을때, 연탄 하나 나르면 100원이었거든요. 제 눈에 연탄이 죄다 100원짜리 동전으로 보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죠.”

 

그는 공부를 하고 싶지만 무엇부터 할지 모르는 어른들을 위해 조언한다.

 

“초등학교 1학년 전과부터 사봐라.”

 

그가 생각하는 공부의 출발점은 모두 공교육에 있다.

 

“난독증이었던 저는 한글을 배우고,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 과정까지 읽는 데 3개월이 걸렸어요. 두 아이들은 한 달이 걸렸고요. 아마 초등학교 전과를 차근차근 읽다 보면 생각보다 재미있을 거예요. 어릴 때 배운 지식들이 아득하게 느껴지면서 ‘내가 참 작았다’는 걸 느끼게 되죠. 그러면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해집니다.”

 

또 입시가 아닌, 인문학으로서 수능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도 소개한다.

 

“언어영역 비문학 정도는 꼭 읽어보세요. 인문, 사회, 예술, 과학 등 현대식 지문이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좋은 글은 모두 모여 있어요. 1년만 공부하면 어떤 공부도 잘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질 겁니다.”

 

 

 

기획 장혜정 두경아 사진 박충렬(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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