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콕의 나날, 오늘은 '신박한 정리'를 하고 싶나요?

기사 요약글

언택트 시대에 집은 단순 거주 공간을 넘어 사무실이면서 휴식 공간이 됐다. 하지만 그 역할을 모두 해내기에는 집은 현재 과부하 상태. 그래서 우린 '신박한 정리'가 필요하다.

기사 내용

 

 

 

 

엘리베이터 벽에 종이가 한 장 붙어 있다. '000호, 며칠부터 며칠까지 인테리어 공사가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벌써 올해 여름 들어 아파트 이쪽 라인에서만 인테리어 공사가 두 번째이다. 재활용 쓰레기장에 가보면 각 세대에서 정리해 내놓는 물건들이 평소보다 훨씬 늘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평소와 똑같은데도 왠지 훨씬 비좁고 답답하게 여겨진다. 나도 집을 이렇게 바꿔볼까? 적어도 물건 정리라도 해볼까? 이 기회에 미니멀 라이프로 전환해봐? 라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확산으로 거리두기 단계가 높아진 시점, 그 어떤 때보다 집을 바꾸려는 활동이 활발하다. 이웃은 시끄러울 만큼 공사도 많이 하고, 당근마켓의 중고 물품 거래도 왕성하다. 그 무엇보다도 책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늘어 인터넷 중고 서점에서 그 물량을 다 매입하기 힘들어 일시 거래 중단을 선언했을 정도이다. 모두가 집 안을 뒤집어엎고 내다 버리고 공간을 재구성하는 것만 같다. 코로나 시대, 다른 사람을 목격할 수 없는 곳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모습이다.

 

 

 

 

정리가 인생을 바꾼다?

 

 

tvN의 <신박한 정리>는 이런 집 정리 유행과 맞물려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살림을 최소한으로 유지하여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미니멀리스트 신애라와 예쁘지만 쓸모없는 물건들을 모으는 데 일가견이 있는 맥시멀리스트 박나래가 짝을 이루어 연예인 의뢰인의 집을 정리해준다. 

 

아주 새로운 기획이라고는 할 수 없고, 대략 10여 년 전부터 일본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간 곤도 마리에의 <인생을 바꾸는 정리의 마법>의 연장선에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하겠다. 신애라가 말하는 “마음이 설레지 않는 물건은 버려라”나 “감상이나 추억은 물건이 아니라 사진으로 보관해라” 같은 것도 곤도 마리에의 책에 나온 충고와 유사하다. 버릴 물건을 정리한 후에는 소위 공간 크리에이터라고 하는 정리 전문가가 출연해 집 안의 공간을 다시 배치하여 동선을 정리하고 각자의 생활공간을 구획해준다.

 

과거 인기를 끌었던 <신동엽의 러브 하우스>처럼 대대적인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같은 MC가 출연하는 <구해줘 홈즈>처럼 집을 바꾸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정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삶이 바뀔까? 적어도 <신박한 정리>에 나온 출연자들은 그렇다고 입을 모은다. 

 

첫아기가 태어난 후에 이것저것 들인 물건들을 다 정리하고 안정된 삶을 찾은 김동현, 원기 왕성한 세 아들 때문에 정신이 없다가 처음으로 깨끗한 공간을 마주하고 울음을 터뜨린 정주리, 배우로서 자신의 기념품을 보관할 장소를 찾고 말문이 막힌 양동근, 아이들뿐만 아니라 자기에게도 책상이 생겼다며 감격하던 정은표, 모두 정리한 이후의 집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들의 모습에서 시청자들 또한 공감하고 감동한다.

 

 

 

 

코로나 시대로 달라진 집의 개념

 

 

<신박한 정리>의 인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프로그램은 원래 8회까지만 방영될 예정이었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되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코로나로 사람들이 모두 집 안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 온다고 적극적으로 예측하고 기획되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제 직장과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사람들은 집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특히 도시에서는 집의 많은 기능을 집 밖으로 보냈고 그것은 당연히 도시가 수행해야 할 역할이었다. 

 

애초에 모든 기능이 집 안에 있지 않고, 효율적인 도시라면 모두 무사하도록 공공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에 다양한 편의를 제공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도심의 거주비가 면적 대비 비싼 근거이자 핑계였다. 집이 좁대도 수면 이외의 모든 기능을 바깥에서 해결해도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거실이나 서재의 역할을 넓은 프랜차이즈 카페와 공공 도서관이 대신했다. 부엌은 작지만, 한국의 도시에는 바로 집 밖에 다양한 메뉴를 갖춘 식당이 있다. 뜰이 없지만 산책하고 운동할 수 있는 공원이 있었다. 빨래할 세탁방, 욕조 대신에 대중탕까지도 있는 곳이 한국이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의 필요성은 도시가 가진 공공 생활공간의 기능을 마비시켰고, 이제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은 오직 자신의 집이라는 협소한 공간뿐, 이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 여기서 다시 부동산의 문제가 나온다. 공간 정리의 필요는 내가 가진 공간의 너비와 반비례한다. 

 

수납공간이 많거나 가족 구성원 각자가 충분한 개인 공간을 가질 수 있다면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덜 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내가 누운 면적이 결국 내가 가진 재산으로 바로 환원되는 이곳에서 누구도 그렇게 충분한 공간을 가질 수가 없다. 그러니까 내가 가진 한정된 자산, 한정된 공간을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할 필요가 발생한다. 역시 이 점도 <구해줘 홈즈>와 비교하면 흥미롭다. 

 

 

 

 

공간 확장이 아닌 확보가 해답

 

 

<구해줘 홈즈>에서는 삶을 바꾸기 위해 한정된 예산을 들고 집을 바꾸려 한다. 즉, 공간의 확장을 꿈꾸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집을 구하러 나간 연예인 코디들이 늘 벽에 부딪히는 건 대도시에서 집을 구하려 할 때다. 서울만 벗어나도 텃밭 딸린 전원주택을 살 수 있는 예산이지만 서울 안에서는 제대로 된 투룸 빌라를 구하기도 빠듯하고, 사람들의 분노와 불만이 시청자 게시판을 채운다. 

 

<신박한 정리>는 애초에 우리가 공간의 확장을 노릴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한다. 부동산이 계급이 되는 사회에서 공간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내가 바뀌어서 공간에 맞춰야 할 수밖에. 말로는 공간 크리에이션이라고 하지만, 정리는 결국 나 자신의 행동 습관과 수집의 취향을 내가 가진 공간에 맞게 바꾸는 쪽에 가깝다. 

 

또한, 정리 열풍은 사회 상황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한 점이다. 일본에서도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정리하고 간결한 삶을 추구하는 단샤리 (だんしゃり, 断捨離)가 유행한 것도 일본의 장기 불황으로 인해 욕망을 줄이고 헛된 노력을 하지 않는 사토리 세대가 등장한 것과 맞물렸다는 분석이 있었다. 또한 일본에서도 3·11 이후 지진 등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물건들이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상황을 깨달은 사람들이 미니멀라이프로 돌아섰다는 보도도 있었다. 

 

 

 

 

집의 주인은 물건이 아닌 나

 

 

지금의 팬데믹 시점에서는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에, 서로 안전하기 위해서는 고립될 필요도 있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각자의 공간에 있어야 우리는 안전하다. 그러나 가족에게서까지 멀어질 수는 없고, 그렇다면 모두가 같이 있으면서도 안전할 정도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선 물건에 빼앗긴 공간을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이제 밖에 나갈 수 없는 시대에서 집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집은 살림살이를 넣기 위한 곳이 아니었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 중 몇몇을 위한 공간도 아니었다. 아이를 위한 곳만도, 부모를 위한 곳만도 아니었다. 모두가 그 안에서 자신이 있을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타난 현실적 대안이 정리였다. <신박한 정리>의 의미는 그런 해결책을 제공하는 데 있었다. 각자에게 필요한 만큼의 공간을 재배분하는 행위. 그것으로 행복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광경에 대리만족을 느낄 수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이 프로그램은 어떤 씁쓸함도 남긴다. 여기 나온 출연자들은 어쨌건 정리를 하면 공간이 드러나는 정도의 어엿한 집에 살고 있다. 아무리 정리를 한다고 해도 각자에게 주어진 절대적 공간이 작다면 어떻게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 그런 협소한 공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대안이 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기획 이인철박현주(방송칼럼니스트) 사진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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