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마음치유력] 남궁인 교수의 긍정적인 몰두

기사 요약글

늘 생과 사를 목도하는 응급실 의사, 남궁인. 그는 일상에서 소소하게 긍정적으로 몰두할 수 있는 취미로 마음을 보듬는다.

기사 내용

* 전문가의 수면력 시리즈*

1편. 이나미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잘라내는 연습"

2편.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의 "활동 레시피"

3편.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긍정적인 몰두"

4편. 송정림 드라마작가의 "고독과 친해지기"

5편. 심용희 펫로스 상담 전문 수의사의 "슬픔 인정하기"

 

 

 

 

코로나19 전과 후, 응급실에서 체감되는 변화가 있나요?

 

상당히 흥미로운 변화가 있었습니다. 일단 코로나19가 터진 이후 응급실 방문 환자가 굉장히 줄었어요. 그리고 요즘엔 코로나19 전과 비슷하게 환자 수가 늘었고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종료된 영향으로 보입니다.

 

응급실 방문은 사회 활동과 연관이 깊어요. 경제 호황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술도 마시고, 외부 활동이 많으면 응급실 환자도 많아요.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지고 나서 사람들이 활동을 멈추니까 다칠 일, 아플 일이 없는 거에요. 특히 소아의 방문이 현저하게 줄었어요. 부모들이 통제했단 뜻이죠. 그런데 요즘엔 다시 코로나19 전과 비슷하게 환자 수가 늘었어요. 소아 환자는 여전히 수가 적지만 사회 활동이 다시 늘어난 탓에 성인 환자 수는 비슷하게 회복했어요. 흥미로운 건 10대 자살 환자가 많아졌다는 거예요. 

 

 

청소년 자살이요?

 

개학이 미뤄지면서 집에 있는 아이들이 부모와 마찰이 늘어난 게 큰 이유라고 봐요. 부모도 재택근무 기간이 늘어나면서 서로 마주칠 일이 많으니까 싸우는 거죠. 우울증으로 자살 시도를 한 중년도 늘었어요. 코로나 때문에 우울증에 걸렸다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아주 연관성이 없다고 하긴 어려워요. 우울증은 관계가 무너질 때 오는 경우가 많은데 코로나가 관계를 차단시켰으니까요. 

 

 

관계 단절이 마음의 병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관계 단절이 우울증이나 불안증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만 마음은 워낙 복합적으로 작용하기에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어요. 정신과에서 주요하게 여기는 질환이 조현병, 우울증, 경조증 세 가지인데 셋 다 자살과 관련이 있어요. 자살은 마음의 병이 깊어졌을 때 나오는 가장 극단적인 사고죠.

 

통계를 보면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큰데, ‘돈이 없어서 자살한다’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 돼요. 돈이 없으면 가정이 붕괴되고, 가정이 붕괴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얼마나 아프고 고립됐는가를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죠. 예전에는 ‘너는 왜 못 이겨내냐’ ‘정신력이 부족하다’ 이런 말들을 많이 했지만 요즘은 패러다임이 바뀌었어요. 상담을 받고 치료해야 한다고 인식하죠. 그래서 스스로 마음의 병이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는 게 우선되어야 해요.

 

 

스스로 마음이 아프다는 걸 진단하는 방법이 있나요? 

 

 

온라인에서 우울이나 불안 자가 진단 테스트는 쉽게 찾을 수 있어요. 문항들을 보면 비슷한데, 대부분 ’식욕이 없다. 잠이 안 온다’와 같은 인간의 기본 욕구를 묻는 질문이에요. 다시 말하면 마음의 병이 생기면 감정이나 욕구가 없어져요. 의지도 없고요. 만약 자신이 그런 상태라면 치료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늘 응급환자를 치료하는 선생님 마음은 건강한가요?

 

 

힘들다고 생각하면 사실 다 힘들어요. 솔직히 말하면 기쁠 일이 하나도 없는 직업이죠(웃음). 저는 특히 폭력 피해 환자를 보는 게 많이 괴로워요. 인간이 인간에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나 생각이 드는 환자들을 보면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표가 떠다니거든요. 

 

 

 

최근 출간한 <제법 안온한 날들>이나 응급실에서 겪은 일을 쓴 <만약은 없다>라는 책을 보면 그런 인간에 대한 물음표를 찾고자 하신 것 같아요. 

 

 

의도하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아요. 의사는 환자가 사망하면 사망 선고하고 돌아서면 그만이지만, 환자나 가족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만약은 없다>는 환자 입장에서 얼마나 슬프고 아플까 생각하면서 몰입했어요. 그리고 이번에 나온 <제법 안온한 날들>은 그보다는 밝고 인간의 인간다움을 쓴 에세이인데, 아픈 사람을 늘 보다 보니 사람에게서 치유의 답을 찾고 또 묻게 되는 것 같아요.  

 

 

작가로서의 삶이 응급실 의사의 지친 마음을 힐링해주는군요.

 

 

그런 것 같아요. 특히 응급실에서 벌어진 일을 수시로 기록하고, 글이 구상했던 틀과 잘 맞을 때 일상이 환기되는 걸 느껴요. 아, 그리고 저뿐만 아니라 응급실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다 하는 휴식법이 있어요. ‘암실 만들기’예요. 밤에 일을 하니까 최대한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침실은 암실로 만들고 잠을 자요. 숙면을 취하면 그만큼 스트레스도 줄어들고 마음 속 근심 걱정도 털어낼 수 있으니까요. 

 

 

생체시계를 맞추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건강해지던가요?

 

 

저는 퇴근하고 글을 쓰는 상당히 단순한 루틴으로 살고 있는데요, 그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작업할 것을 미리 염두에 두고, 그 작업을 마친 후에 또 해야 할 것들을 분 단위로 계획해서 반드시 지켜요.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시간을 나눠서 취미를 즐기고요. 요리를 하거나 달리기를 하거나 피아노를 쳐요. 하루를 빼곡하게 알차게 쓰고 나면 스스로 굉장히 뿌듯하고, 다음 일에 몰두도 잘돼요. 

 

 

결국 일상에 몰두하는 힘이 마음치유법이네요. 

 

의사이니 의학적 범주에서 마음치유법을 말씀드리면, 마음이 아프다고 느껴지면 치료를 받는 게 좋아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조언을 하자면 긍정적으로 몰두할 게 있으면 이겨나갈 수 있어요. 거창한 몰두보다는 ‘내가 어제 무슨 글귀를 읽었는데 좋았다’라고 느껴지면 그런 좋은 마음을 주는 다른 글귀를 찾아보는 거, 어제 먹은 라면이 맛있었다는 생각이 들면 라면 레시피를 찾아보는 거, 이런 소소한 긍정의 몰두가 하나하나 늘어나면 치유력도 높아지거든요.

 

 

기획 서희라 사진 박형주(율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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