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남편은 왜 맨날 <나는 자연인이다>만 볼까

기사 요약글

중년 남성들이 TV 리모콘을 뺏기지 않으려고 할 때가 있다. 보통 야구, 축구 등 스포츠 중계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바로 <나는 자연인이다>를 볼 때다. 중년 남성들이 이 방송에 열광하는 심리를 들여다봤다.

기사 내용

 

 

최근 한국 갤럽이 조사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 6월 결과를 보면 현재 한국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는 방송을 알 수 있다. 미스터 트롯의 열풍이 여전히 거센 가운데, 7위를 차지한 <나는 자연인이다> (MBN)이 눈에 띈다.

 

이런 조사에서 오랫동안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여성보다는 남성, 18~29세보다는 40~60대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직업적 차이는 크게 나지 않지만, 전업주부나 학생보다는 농/임/어업, 자영업, 은퇴자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사람들 생각과는 다르게 반드시 도시인만이 자연인을 동경하는 건 아니라는 반증이다. 결국 <나는 자연인이다>는 보지 않는 사람은 전혀 보지 않지만, 보는 사람은 열렬히 애청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연인은 중년 남성의 페르소나?

 

 

40대 이상의 남자들이 <나는 자연인이다>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MBN의 이 프로그램은 윤택과 이승윤 두 방송인이 소위 오지에 홀로 사는 사람들을 방문하여 그들과 1박 2일을 함께 하는 ‘자연 체험 프로그램’으로 정의된다. 이 자연인들을 어떻게 섭외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프로그램의 작가들이 눈에 불을 켜고 대한민국 산지의 위성사진을 훑으면서 그 속에 있는 지붕을 발견하면 거주자를 찾아내서 접촉한다는 루머는 있다.

 

자연인은 100% 남자, 그리고 보통 50대 이상의 은퇴자로, 산속에 임시 거처를 짓고 살거나 컨테이너 하우스, 심지어 동굴 같은 데 거주하기도 한다. 산속에서 나는 풀이나 먹거리를 채취하거나 농사를 짓기도 하고, 벌을 치거나, 가축을 기르는 사람도 있다. 윤택이나 이승윤 둘 중 한 명이 방문하면, 그들은 반가이 받아주며 자신의 보금자리를 한 바퀴 투어시켜 주며, 다음에는 반드시 웃통을 벗고 등목을 하고, 저녁으로는 밭이나 산에서 채취한 음식으로 자연식을 만들어 나눠 먹는다.

 

남다른 생활방식이 주는 기이한 호기심이 이 프로그램의 기본 재미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특정 연령대의 남성 시청자에만 집중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시청자들의 페르소나처럼 비슷한 연령대의 남성들뿐이다. 이 남성들이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방송은 그려낸다.

 

 

 

일종의 자기만의 왕국을 건설한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지배적 낭만이 프로그램에는 스며있다. 오지 탐험을 떠나는 베어그릴스 프로그램이나, 일시적이긴 하지만 해외의 정글로 떠나는 <정글의 법칙>과 같은 프로그램이 꾸준히 인기 있는 이유와도 비슷할 수 있다. 어린 시절의 야영에서 느꼈던 모험의 확장판으로도 볼 수 있다. 거기에 더해 <나는 자연인이다>에는 일상의 리얼리티까지 담겼다.

 

방송 외적으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든 간에 방송 안에 보이는 모습으로는 자연인들은 간단한 세간살이도 직접 만들고, 자신의 먹거리는 직접 해결하며, 인간 아닌 동물들과 교감한다. 식용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벌, 애벌레, 생선 대가리 카레 등 괴상한 음식을 만드는 이도 있지만, 면을 뽑아 짜장면을 직접 만드는 달인도 있다. 그리고 가끔 찾아오는 이승윤과 윤택을 일종의 멘티로 삼아 자신의 삶에 대해 신나게 얘기할 기회도 있다.

 

여기에는 한국인의 정신성을 지배하는 온갖 사상들이 혼합되어 있다. 우리 땅에서 나는 것이 우리 몸에 제일 좋다는 신토불이, 천연 먹거리를 먹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산다면 암도 낫는다는 대체의학적 신념, 땀 흘려 일을 하고 거기서 얻어지는 보람만이 삶의 원초적 기쁨이라는 노동윤리, 검소한 생활 방식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는 안빈낙도의 정신. 현재의 중장년층이 믿고 따라왔던 이상들이 자연인의 생에서는 펼쳐진다. 자기의 몸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나는 자연인이다>에는 넘쳐흐른다.

 

 

 

어깨의 짐을 내려놓은 홀가분한 삶에 대한 대리만족

 

 

물론 이 프로그램의 인기에는 이렇게 밝은 면만 있지는 않다. 자연인들은 으슥한 밤이 되면 산에 들어오기 전의 삶을 고백하면서, 모두 “스트레스와 부담감이 많았다” 고 고백한다. 몸이 아팠던 사람도 있고, 정신이 아팠던 사람들도 있다. 스스로 생을 저버리고 싶을 정도로 괴로워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사회에서 잘못을 저지른 이들도 있었다. 사회인으로,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살아가는 압박감에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자연인이다>에는 회피주의의 진한 기운이 흐른다. 실제로 자연인의 생활방식은 완전히 “자연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들이 살아가는 터전인 산은 자기 자신의 소유이거나 그 주인에게 반드시 허락을 받아야 한다. 가정이 있는 이들은 그들을 대신해서 생계를 책임져주는 사람이 있다. 아내들이 한 달에 한 번 김치를 가져오거나 그외 밑반찬을 가져온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자연인으로 등장했던 사람이 세상의 특별한 일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는 청소 홀릭으로 나오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프로그램 내에서 언급되거나 언급되지 않은 채로 휙 지나가고, 이런 “부자연스러움”은 눈에 띄지 않게 숨겨진다. 어차피 이 프로그램의 시청자들도 그를 모를 바가 아니다. 시청자들이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다면, 그들도 직접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시도해 보았을 테니까.

 

즉, 이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은 가장의 책임을 떠맡았고 사회의 구조적 압박 속에서 시달리면서도 오랫동안 자기 몫을 성실히 다해왔고 그럼에도 아직도 훌훌 떠날 수 없었던 이들이 대다수이다. 자연인들은 이런 시청자들이 가끔 상상하는 대로 현세의 삶을 저버리고 떠날 수 있었던 사람들처럼 그려지면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준다. 이는 단순히 자연에 대한 동경만이라고 할 수 없다. 현실의 남자들은 삶에서의 책임을 아직 떠맡고 있고,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기 때문에, 이 자연인의 삶을 흥미롭게 볼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의 제목이 <자연인을 찾아서>가 아니라, <나는 자연인이다>인 것에도 의미가 있겠다. 이 프로그램에는 단순히 오지의 삶을 체험하고 신기한 일을 보도하는 관점만 아니라, 일종의 선언이 들어 있다. 세상을 향해서 “나는 **이다” 라고 선언하고 싶은 마음. 그렇게 사회에 얽매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겠다는 의지의 표명. 어쩌면  이 프로그램의 시청자들에게 의미가 있는 건 이렇게 마음대로 선언을 할 수 있는 상태와 기회인지도 모르겠다.

 

 

기획 신윤영 박현주(방송칼럼니스트) 사진 MBN <나는 자연인이다> 방송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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