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마음치유력] 심용희 수의사의 슬픔 인정하기

기사 요약글

슬픔은 회피하지 않고 인정해야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 심용희 수의사는 떠나간 반려동물을 충분히 애도하는 것이 슬픔의 감정을 배출하는 방법이라 말한다.

기사 내용

 

* 전문가의 마음치유력 시리즈*

1편. 이나미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잘라내는 연습"

2편.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의 "활동 레시피"

3편. 남궁민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긍정적인 몰두"

4편. 송정림 드라마 작가의 "고독과 친해지기"

5편. 심용희 펫로스 상담 전문 수의사의 "슬픔 인정하기"

 

 

 

 

 

마음이 힘들다는 점에서 코로나블루와 펫로스는 비슷한 증상일까요?

 

 

내 삶에서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이 사라지거나, 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거나, 아무렇지 않게 누리던 것을 누릴 수 없게 되는 것에 대한 슬픔, 원망, 상실감은 동일하다고 생각해요. 차이점이 있다면 코로나블루는 관계가 단절된 ‘상황’에 대한 상실감이라면, 펫로스는 ‘존재’에 대한 상실감이에요. 상황은 희망을 가질 수 있지만, 존재는 사라진 이상 돌이킬 수 없어요.

 

 

반려동물 천만 시대이다 보니 펫로스를 겪는 사람도 많아진 것 같습니다.

 

 

펫로스는 예전에도 많았어요. 다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죠. 이전에는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을 표현할 단어를 몰랐어요. 더군다나 주변에서 “그렇게까지 우울할 일이야?” “잊어, 원래 오래 못 살잖아”라며 잔혹한 조언을 하는 경우도 많았죠. 이제는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었고 공감할 수 있는 주변 사람도 늘어서 반려동물에 대한 추모나 애도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상당수의 반려인들은 펫로스를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걸 두려워해요.

 

 

두려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건 어떤 심리일까요?

 

 

보통 자녀와의 사별을 ‘권리박탈적 비탄’이라고 해요. ‘내가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어’와 같은 죄책감이나 ‘자식 앞세우고, 뭐 잘났다고 저렇게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와 같은 사회적 시선에 짓눌려 슬퍼할 권리마저 빼앗기는 것을 의미하죠. 펫로스도 마찬가지예요. 죄책감과 사회적 시선 때문에 슬픔을 꾹 참아내죠. 

 

 

죄책감을 느낀다고요?

 

 

‘반려동물을 왜 데려왔을까? 다른 사람이 키웠으면 더 건강하고 오래 살지 않았을까? 더 빨리 병원에 데려가서 치료했으면 어땠을까? 낯선 병원에 입원시키지 말고 집에서 편하게 두는 게 나았을까? 좀 더 치료했으면 살아났을까?’ 이 모든 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후회의 생각들이 계속 밀려와요. 사랑이 지극했던 만큼 상실감도 클 수밖에 없고 그게 죄책감으로 다가오죠. 

 

 

주변에 펫로스를 겪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위로하는 게 좋나요?

 

 

‘Not do, Just be’. 뭔가를 해주려 하지 말고, 그냥 같이 있어주세요. 그들이 자신의 슬픔을 표현할 때 그 슬픔은 연약해서가 아니라 깊은 사랑의 결과물임을 인정해주고, 떠나보낸 반려동물과의 추억을 이야기할 때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는 것으로 펫로스를 겪는 이들을 위로할 수 있어요. “네가 슬퍼하면 하늘나라에 간 아이도 슬퍼해”라는 말은 삼가는 게 좋아요. 이건 슬픔에 대한 위로가 아니라 슬픔을 억누르기 위해 사별한 반려동물을 핑계 삼는 거예요. 펫로스를 겪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조언’이 아니라 ‘공감’입니다.

 

 

 

 

선생님도 펫로스를 경험했나요?

 

 

제가 처음으로 근무했던 동물병원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얹혀살던 유기견 한 마리가 있었는데, 나이가 15살이었어요.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안락사를 시키자는 의견이 나왔고, 결국 제가 키우게 됐죠. 정말 아낌없이 사랑하고 보살폈어요. 그렇게 순돌이는 저를 만나고 12년을 더 살다 2018년 11월에 하늘나라로 떠났죠. 그 후로 3개월 동안 출퇴근길 차 안에서 매일 울었어요.

 

 

어떻게 극복했나요?

 

 

앞서 말한 것처럼 펫로스는 ‘권리박탈적 비탄’이에요. 그래서 추모와 애도에 대한 제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어요. 먼저 제게 위안이 되고 소중했던 존재인 순돌이가 이 세상에 다녀갔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SNS에 순돌이와의 사연을 올렸어요. 순돌이와의 추억을 많은 분들과 나눌 수 있었죠. 

그리고 추모의 한 방법으로 ‘추억 테이블’을 만들었어요. 순돌이의 유골, 사진, 생전 소지품을 모으고 꾸미면서 행복했던 추억을 되돌아볼 수 있었죠. 추억 테이블은 지금도 집에 있어요. 마지막 방법으로 제 감정을 글로 썼어요. 저와 같이 펫로스를 겪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랐거든요. 그 과정에서 오히려 제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을 느꼈어요.

 

 

 

 

추억 테이블처럼 반려동물을 추억하는 방법을 추천해준다면?

 

 

최근 정부에서 코로나블루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반려식물’을 분양해주겠다는 기사를 보고 무릎을 쳤어요. 사람은 무언가를 돌볼 때 살아갈 동력을 얻어요. 애지중지 돌보던 반려동물이 떠났다면 다른 식으로 ‘돌봄’의 정서를 터득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반려식물을 키우는 걸 적극 권해 드려요. 요즘은 반려동물의 유골을 화분에 넣어 그 위로 식물을 기르는 ‘화분장’을 많이 해요. 식물을 통해 반려동물과 계속 교감할 수 있죠. 날이 화창한데 꽃이 예쁘게 피었다면 ‘오늘 아이가 기분이 좋네’라고 느껴보는 거예요.

 

 

오히려 ‘미련을 못 버린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나요?

 

 

기억을 놓지 못하는 건 미련이 아니에요. 추모나 애도인 거죠. 슬픔의 감정을 충분히 배출하지 못하면 그 감정에 갇히게 돼요. 슬픔이라는 감정은 엄청난 폭발력을 가져서 내 몸에서 나가야만 그다음 감정을 기대할 수 있어요. 

 

 

현재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면 언젠가 이별할 날이 올 텐데,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어떤 대비를 하더라도 상실감을 느끼고 슬플 거예요. 다만 반려동물이 먼저 세상을 떠나도 반려동물과의 관계나 교감이 끝난 게 아니에요. 다른 형태로 바뀐 것뿐이죠.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지만 함께했던 추억을 간직한다면 또 다른 의미에서 그들은 제 인생에 늘 동행하고 있는 겁니다. 펫로스를 슬픈 이별이 아닌 아름다운 추억으로 마음에 남기세요.

 

 

한 차례 펫로스 이후 선생님은 면역력이 생겼나요?

 

 

네. 나름의 마음치유력이 생긴 것 같아요. 예전에는 어떤 일로 큰 상처를 받으면 자존심 때문에 슬퍼하거나 위로받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힘듦을 인정하고 나니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더라고요. 펫로스도 마찬가지였어요. 슬픔을 회피하지 않고 인정하니까 슬픈 순간에 머물지 않고 행복한 순간들로 마음을 가득 메울 수 있었어요.

 

 

선생님만의 마음 힐링법이 있다면요?

 

 

밑그림이 없는 그림을 그려요. 마음 내키는 대로 쓱쓱 칠하다 보면 그때의 감정을 배출할 수 있어요. 색이 주는 위안이 있어요. 저는 시각적인 것에서 주로 위안을 받는데, 사람마다 위안을 얻는 감각이 달라요. 자신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감각 포인트를 찾는 것도 방법입니다.

 

 

기획 우성민 사진 박형주(율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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