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피운 사람은 왜 이혼 청구가 안 될까?

기사 요약글

잘못한 배우자는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유책주의’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예전 법조계를 설왕설래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홍상수 영화감독의 이혼소송이다. 한 여배우와 ‘금지된 사랑’에 빠진 홍 감독이 아내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벌였으나 재판부에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로 이를 기각한 것. 마찬가지로 아트센터 나비의 노소영 관장과 이혼소송을 진행 중인 SK그룹 최태원 회장(그는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의 사이에서 혼외자를 두었다)에게도 비슷한 결과가 돌아갈 것으로 예상되면서 유책주의가 과연 현실적인지, 타당한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기사 내용

 

 

 

유책주의가 뭐야?

 

 

유책주의란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하지 않는 제도다. 쉽게 말해 외도 등 혼인 관계를 파탄시킬 정도의 잘못을 저지른 배우자는 이혼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1965년 첫 판결 이후 지금까지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자녀를 보호하고 바람직한 결혼 생활과 가족제도를 수호할 목적으로 유책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그럼, 유책주의가 당연한 거 아니야?

 

 

‘방귀 뀐 놈이 성내면 안 되지! 잘못한 주제에 이혼소송을 건다고?’ 언뜻 유책주의가 당연해 보이지만, 이에 대비되는 개념인 ‘파탄주의’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파탄주의는 혼인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면 원인 제공자도 이혼을 요구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잘잘못을 따져서 뭐 하겠나~ 그래 봐야 깨진 접시인데~’ 하며 결혼 생활 유지에 대한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를 고심한 발상인데, 원수지간이 따로 없지만 법적 테두리 안에서만 부부로 묶여 있는 ‘무의미한 결혼’을 떠올려보면 일견 수긍이 가기도 한다.

 

또 간통죄처럼 도의적으로 비난할 여지는 충분하나 부부간의 문제에 사법권이 개입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개인(유책 배우자)의 행복추구권과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외국은 파탄주의가 대세?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에서는 파탄주의를 채택한사례가 많다. 1907년 최초로 파탄주의를 채택한 스위스가 그렇고, 영국에서는 일정 기간 별거했다면 상대가 반대해도 이혼을 인정해주는 편이다. 미국의 경우 1969년 캘리포니아주에서 미국 최초로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무책주의’를 제정한 후 모든 주에서 이를 도입했고, 가까운 일본 역시 별거가 장기간 지속되거나 미성년 자녀가 없다는 식의 조건에 부합하면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마찬가지로 파탄주의를 택한 스웨덴에서는 상대가 반대하거나 어린 자녀가 있는 상황에서도 이혼이 허용될 정도다. 특기할 점은 스웨덴의 여성 대부분이 탄탄한 경제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웨덴의 여성 고용률은 7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위며, 이는 이혼하게 되더라도 생계가 어려워지거나 아이를 부양할 수 없을 만큼 곤궁해질 확률이 적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도 곧 파탄주의?

 

 

법조계 일각에서는 ‘간통죄 폐지’처럼 곧 유책주의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실제 2015년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3므568)에서 대법관 7명은 유책주의를, 6명은 파탄주의의 편을 들어준 사례가 있다. 대법관 사이에서도 유책주의, 파탄주의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가 유책주의를 채택하고는 있지만, ‘잘못한 배우자’라 할지라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도록 예외를 허용해온 것 역시 변화(?)를 기대하게 하는 대목이다. 실제 홍상수 감독의 이혼 청구에 대해서 재판부는 “예외적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기각했는데, 이를 바꿔 말하면 ‘만일 예외적 사유가 있다면 유책 배우자라도 청구가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런가 하면 재판부에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인 사례가 아주 없지도 않다. 2015년에는 혼외자를 둔 남편이 제기한 이혼소송을 인정한 사례가 등장하기도 했는데, 당시 재판부는 남편에게 ‘유책’이 있기는 하지만, 25년 이상 별거하며 혼인 생활이 해소됐고, 각자 독립적인 생활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라는 판결의 이유를 내놓기도 했다. 이 밖에 뇌출혈로 쓰러진 아내에 대해 별도의 간병이나 병원비 부담을 하지 않은 남편이 이혼 청구를 제기해, 받아들여진 사례도 있다.

 

 

파탄주의가 받아들여진다면?

 

 

전문가들은 만일 미래에 파탄주의가 채택된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대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파탄주의로 인해 내려진 판결 때문에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동국대 법학과 교수를 지낸 최성호 변호사는 구체적으로 “(파탄주의에 의한 판결이) 무책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의 권익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위자료, 손해배상, 부양료 청구권 및 재산분할 청구권 등에 관한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라며 “이에는 유책 배우자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또 무책 배우자의 입장에서 혼인을 지속할 의사가 있는지, 이혼 뒤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어떤 상태에 놓일지, 부부간에 미성숙 자녀가 있다면 어떻게 교육하고 기를지, 부부 일방 또는 쌍방이 내연관계를 형성할 경우 그 상대와 자녀들의 상황은 어떠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획 장혜정 도움말 및 감수 최성호(전 동국대 교수, 변호사)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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