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yday 10월의 인물 <엄홍길>

기사 요약글

전성기는 한 번뿐이라는 규칙은 없지 않나요?

기사 내용

엄홍길(사진)

누구나 탄탄대로를 바란다. 인생의 수많은 갈래 앞에서 기왕이면 빠르고 쉬워 보이는 길을 택하는 건 그래서다. 반면 제 발로 가시밭길에 걸어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특별한 대가를 약속받아서도 아니다. 10시간 넘게 히말라야의 절벽에 매달려 생사를 넘나들기도, 180도 뒤틀린 발목을 끌며 목숨걸고 산을 내려가기도 했던 엄홍길이 그런 부류다.
“DNA가 그렇다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웃던 그는 자꾸만 자신을 어려운 길로 내모는 사람 같았다.

 

촬영이 어땠나요? 사실 이 정도로 표정이 자연스러울 줄 몰랐어요.
난 원래 자연인이라(웃음) 이렇게 의도적으로 연출하는 게 잘 안 맞긴 한데, 그래도 기왕에 하기로 한 거 최선을 다하면 서로 좋잖아요. 괜찮았다니 이제야 좀 마음이 놓이네요.

근황을 보면 산악인보다 자선사업가에 더 가까운 듯해요. 요즘 네팔 학교 건립에 빠져 있다고요?
2008년에 엄홍길휴먼재단을 설립해 빈곤 국가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짓고 있어요. 17좌를 오르는 중이죠.(웃음) (그는 히말라야에 있는 8천 미터 봉우리를 16개나 오른 세계 최초의 인물이다. 학교 건립 사업은 그의 17번째 목표라는 의미다.) 네팔에 16개 학교를 짓는 게 목표인데 곧 6번째 학교가 문을 열어요. 내년이면 11개 학교가 완공되고요.

특별히 나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쭉 생각해왔던 일이에요. 그동안 히말라야로부터 받아온 은혜를 되갚는 일이랄까요. 8천 미터 이상을 흔히 신의 영역이라고 하는 건 인간의 의지로는 도저히 컨트롤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나를 받아주고 받아주지 않고는 산의 마음에 달렸죠. 극한상황에 내몰릴 때마다 ‘제발 나를 받아주세요, 그 은혜 모른 척하지 않겠습니다. 언젠가 꼭 갚겠습니다’ 하고 기도를 많이 했어요. 그 약속을 지켜야죠. 한편으로는 희생된 동료들을 기리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첫 번째 학교가 세워진 팡보체는 히말라야에 함께 오르다 추락해 사망한 친구의 고향이기도 해요. 해발 4천 미터쯤 되죠.

왜 하필 학교예요?
그동안 여러 나라, 여러 산을 다니면서 열악한 환경에 처한 아이들을 많이 봤어요. 당장 먹을 걸 주는 것보단 장기적으로 교육을 시키는 게 인생에 훨씬 더 도움이 되겠더라고요. 아이들이 꿈을 키우는 공간이어서 대충 짓지 않으려 하고요. 기후나 온도를 고려해 적합한 외관을 짓고 책, 걸상, 칠판 같은 내부 가구도 마련해줬어요.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는 곳에는 학교 외에 놀이방 비슷한 것도 지어주고요. 그게 뭐 대단한 일인가 할 수 있는데 황량한 산 한가운데 번듯한 학교가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눈이 휘둥그레지죠. 깨끗한 데다 놀이 시설도 있어서 수업이 끝나도 아이들이 집엘 안가요. 그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후원자 모으러 뛰어다니고 복잡한 서류 들여다보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가 위로받는 면이 더 커요.

지금이야 도전과 성취의 아이콘이 됐지만, 초반엔 왜 사서 고생이냐는 말도 많이 들었죠?
그럼요. 남들은 세계 최초, 동양 최초 같은 타이틀만 기억할지 몰라도 성공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많은 실패와 좌절이 있었는지 몰라요. 지금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일 만큼 죽을 고비도 숱하게 넘겼죠. 앞서가던 동료가 눈앞에서 사라졌을 때의 황망함 같은 건 느껴보지 않으면 절대 몰라요. 절벽에 매달려 마음속으로 유언을 남기고, 180도 꺾인 발목을 덜렁이며 산을 내려오는 고통도 겪었죠. (그의 왼쪽 발은 상처투성이다. 동상으로 엄지발가락을 잘랐고, 크게 꺾인 발목은 아직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그 다리로 히말라야를 정복했다.

그럼에도 다시 산을 찾는 이유는요?
그렇게 태어나서요. DNA에 그런 기질이 박혀 있나 봐요. 그냥 앉아 있질 못하겠어요. 뭐라도 만들든가 걷든가 뛰든가 해야 직성이 풀리니 원(웃음). 어린 시절 부모님이 도봉산에서 음식 장사를 하셨는데 그 덕분에 산을 놀이터처럼 여기고 살긴 했어요. 학교에 가려면 1시간 넘게 산길을 걸어야 했죠. 암벽을 타기 시작한 건 중학생 때부터고요. 제대하고 나서는 높은 산에 오르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몸살을 앓았어요.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겠다는 목표를 세웠던 것도 그래서였죠.

고생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즐긴다기보다 편한 걸 못 참아요. 단적인 예가 바로 군대 갔을 때예요. 땅에서 충분히 놀았으니 이제 바다로 나가보자는 생각에 해군을 지원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편했어요. ‘내가 너무 태해지고 있진 않나?’ 하는 걱정이 들 때쯤 해군특수대원(UDT)을 모집하기에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지원했죠. 물론 후회도 했어요. 훈련이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피범벅이 되도록 엉덩이를 맞는 일은 예사고 일주일간 잠 안 자고 바다와 육지를 다녔어요. 시궁창을 기어 다니거나 변소 오물 옆에서 밥을 먹을 때조차 머리엔 항상 무거운 고무보트를 이고 있었죠. 지금도 그때 같이 훈련받았던 동기를 만나면 고생담이 줄줄 나올 정도예요(웃음).

그렇게 극한으로 내몰렸을 때 버틸 수 있는 힘은 뭐예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자 성어가 바로 자승최강(自勝最强)이에요.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강하다’라는 뜻인데 죽도록 힘들 때 이 말을 떠올리면 버틸 힘이 생겨요. ‘지금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남이 대신할 수 없다. 이 고통은 영원하지 않다, 성공으로 가는 한 길목이다’라는 생각을 계속 되풀이하는 거죠.

그래도 목숨을 걸고 하는 도전이 두렵진 않았나요?

엄홍길(사진)

히말라야에 가면 늘 죽음이 곁에 있어요. 언제 땅이 푹 꺼질지, 언제 산사태가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죠. 한 발자국이 생과 사를 가르는 상황에서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런 두려움도 잊혀져요. 일 초 뒤 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긴 하지만 두려움이 개입될 여지는 없죠. 그러면 더 이상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거든요. 모든 걸 내려 놓아야 올라갈 수 있어요. 그러다 정신을 차리면 정상이더라고요.

그렇게 수없이 산을 오르며 깨달은 건 무엇인가요?
깃발을 꽂은 그다음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 이건 정점을 찍고 난 인생, 즉 열심히 일한 뒤 서서히 은퇴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인데, 산은 오르는 것 못지않게 내려가는 게 중요해요.
승리에 도취돼 경거망동하다 보면 죽거나 다치죠. 과욕 부리지 말고, 붕 뜬 마음을 잘 다스려 천천히 산을 내려와야 비로소 내가 올랐던 그 정상을 바라보며 여유 있게 성공의 가치를 음미할 수 있지 않을까요.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부적 같은 게 있나요?
목걸이요. 1996년부터 차고 다녔어요. 눈알처럼 생긴 돌이 ‘지’라는 원석인데 티베트에서는 부처님의 눈이라고 부른데요.
좋은 기운이 발산돼 위험에서 보호해준다는 믿음이 깃들어 있죠. 어느 나라에서 버스 전복 사고가 났는데 이 원석을 몸에 지닌 사람만 살아남았다는 얘기도 있대요. 나 역시 이걸 지니고 그 험한 산들을 올랐고, 기적처럼 아직도 살아 있으니 효과가 있다고 봐야겠지요(웃음).

아무리 강해 보여도 어쩔 수 없이 녹아내릴 때가 있겠죠?
그럼요. 내가 생각보다 감수성이 예민해요(웃음). 이름 모를 들꽃, 불쌍한 아이들에 특히 약하죠.

학교를 짓고 중학생 등산교실을 여는 것도 그렇고 아이들, 청소년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은 것 같아요.
인격이 형성되는 가장 중요한 시기잖아요.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이다 컴퓨터 게임이다 늘 혼자 하는 놀이에 익숙해져서 공동체 의식이나 남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어요. 또 실내에만 있다 보니까 자기 몸에 얼마나 큰 에너지가 있는 줄 몰라요. 그런 아이들이 산에 가면 좋다고 뛰어다녀요(웃음). 그 나이 때 천진난만함이 그제야 발현되는 거죠. 인간의 본성을 바꾸는 건 결국 자연이더라고요.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은데 집에서는 어떤 아버지세요?
‘네가 알아서 해라’는 말을 자주 하는 아버지예요. 잘못된 길로만 가지 않으면 그냥 두고 보는 스타일이에요. 다만 아빠가 늘 너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티는 내죠. 아들한테 잘 하는 행동이 하나 있는데 꼭 끌어안고 머리를 맞댄 뒤 ‘세월은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 아빠는 현식이를 사랑한다, 아빠는 현식이를 믿는다, 현식이가 최고다. 항상 최선을 다해라. 그다음은 알아서 해라’라는 말을 반복하는 거예요. 장난치듯 하지만 반복해서 들었던 아빠의 말이 결정적인 순간에 아들의 선택에 좋은 지침이 되리라 믿어요.

끝으로 엄홍길의 전성기는 언제라고 생각하세요?
전성기는 한 번뿐이라는 규칙은 없지 않나요? 인생의 마디마디마다 그때의 전성기가 있는 거죠. 그렇다면 첫 번째 전성기는 20년 넘게 히말라야를 쏘다니며 산을 탔던 때고, 두 번째 전성기는 내 의지에 따라 다른 사람을 돕고 있는 요즘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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