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vs 윤증현, 경제 9단의 조언

기사 요약글

경제는 돌고 돈다. 주인공과 사건만 바뀔 뿐 결국 비슷한 원인으로 비슷한 결말이 나곤 했다.

기사 내용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월 16일로 취임 한 달을 맞았다. ‘저성장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책 수단을 총동원하겠다’는 취임 일성대로 재정 지출 확대, 부동산 규제 완화, 세제 개편 등 숨 가쁘게 움직였다. 특히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까지 이끌어내는 등 박근혜 대통령이 신임하는 경제 실세답게 과감하고 공격적인 모습이었다. 경제는 결국 심리다. 경제 활성화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주면서 경제 주체의 위축된 심리를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최경환 경제팀은 ‘수출·제조업 중심에서 내수·서비스업 중심’ ‘기업 소득의 가계 소득으로의 이전’을 경제 정책의 방향으로 잡았다. ‘개인소득을 높여→내수를 촉진하고→기업 투자가 높아지면→일자리가 늘어나→개인소득도 높아진다’는 소득 주도형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전략이다.

최경환 경제팀이 숨 가쁜 한 달을 보내는 동안 코스피 지수는 3년 만에 박스권 상단인 2060선을 넘어섰다. 부동산 시장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꿈틀대고 있다. 관광, 의료, 금융 등 서비스업을 키워 내수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전략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단기 부양책의 한계 극복과 국회, 이해 관계자 등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일 등 앞으로 남은 숙제가 더 많다.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와 금리 인상 등 국제 경제 환경의 불확실성 속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도 중요하다. 하나같이 쉽지 않은 문제다. 경제는 돌고 돈다. 주인공과 사건만 바뀔 뿐 결국 비슷한 원인으로 비슷한 결말이 나곤 했다. 최경환 경제팀보다 먼저 한국 경제를 이끈 이들이 지금 정책의 키를 쥐고 있다면 어떤 정책을 펼까.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노태우 정부)과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명박 정부)을 만나 조언을 들어봤다.

김종인은누구인가

김종인(사진)

독일 뮌스터대 경제학 박사로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를 역임한 국내 대표적인 ‘독일통’이다. 노태우 정부에서 보건사회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다. 11·12·14·17대 4선 의원으로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맡으며 박근혜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설계했다. 헌법 제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을 만들고 의료보험제도를 관철시킨 점을 높이 평가받는다. 현재 가천대 석좌교수와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진단부터 틀렸다.” 8월 13일 서울 광화문 대한발전전략연구원(이사장 김종인)에서 만난 김종인(75)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최경환 경제팀의 경제 상황 인식에 오류가 있다고 비판했다.
제대로 진단해야 제대로 처방할 텐데 그렇지 않으니 엉뚱한 약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최경환 경제팀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좋은 편이다.
일본이 왜 잃어버린 20년을 겪었는지 아느냐. 저성장, 저물가, 고령화 때문이다. 한국이 경상수지 흑자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을 빼면 한국과 일본 경제는 여러모로 닮은 듯 보인다. 그러나 일본이나 한국이나 병의 증세는 비슷하지만 진단은 모두 틀렸다.

최경환 경제팀도 그런가?
일본과 비슷한 오류다. 현재 한국 경제의 내수 부진은 지나친 양극화 현상에 따른 대다수 계층의 소비 여력 상실로 인한 구조적인 문제다. 고령화라는 인구구조적인 문제까지 겹쳤다. 당장 돈 몇 푼 더 푼다고 쉽게 고칠 수 있는 증상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지금껏 정권의 성향을 떠나 임기 초에 펼친 경제정책이나 대응 방식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대부분 압축성장 시절의 향수에 취해 있다. 기껏 깜짝 부양할 생각이나 하고. 예컨대 부동산 시장을 띄우려고 할 경우 투기가 일어날 때쯤 돼야 활황을 체감하기 마련이다. 그때는 어떻게 할 건가? 지금은 저성장 시대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예전에야 두 자릿수 성장률이 예사였지만 경제 규모가 커지고 성숙 단계에 접어든 만큼 성장률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경제가 3.5% 정도 성장할 걸로 보는데 한국 경제는 3.4~3.7%의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결코 저성장이라고 부를 만큼 낮은 수치가 아니다. 한국 경제는 결국 수출로 먹고 산다. 우리만 발버둥 쳐봐야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내수가 부진한 가운데 세계 주요국의 성장률도 낮아 한국 경제만 독야청청하긴 어렵다.

저성장 시대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3%대 성장률은 너무 낮지 않은가?
우리가 3%대로 성장하면 크게 나쁘다고 볼 수 없다. 이명박 정부 때 이른바 ‘747정책(성장률 7%, 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을 펼쳤는데 성장률이 연평균 3%를 넘은 적이 없다. 정부에서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추면 경기가 어느 정도 반응하긴 한다. 그렇다고 밤낮 경기 부양한다고 억지로 돈을 뿌려대면 중장기적으로 두고두고 부담이 된다. 참을 때는 좀 참아야 한다.

참을 때는 좀 참아야 한다는 뜻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노태우 대통령을 모실 때 ‘경제가 어렵다’고 보고하면 화를 내셨다. 그때마다 내가 하던 말이 있다. 광화문 네거리에 가보시라. 차가 막힐 때는 아무 리 속력을 내려고 해도 시속 10㎞ 이상 못 낸다. 교통경찰 이 있어도 그때는 차들이 차선과 신호를 지키게 하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 그렇게 참으면서 펀더멘털(경제의 기초 체력)을 정비해야 한다. 중장기 구조개혁이 필요 하다는 것이다.

중장기 구조개혁이 말은 쉽지만 어려운 일인데?
그래서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한국 경제는 압축성장 이후 처음으로 구조조정을 거쳤다. 많은 기업이 쓰러지고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지만 고통을 이겨내고 한국 경제가 더욱 강해졌다. 그러나 2001년 9·11 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등을 겪었지만 제대로 된 구조조정이 없었다. 중국 기업의 거센 추격에 경쟁력이 떨어지는 업종·기업이 많은데도 말이다. 우리는 독일을 배워야 한다.

독일의 경쟁력이 뭐라고 보나?
미국, 일본, 유럽연합 등은 모두 빚으로 위기를 탈출하려 고 하고 있다. 양적 완화라는 그럴 듯한 포장으로 말이다. 결말이 어떨지 미지수지만 선진국에서 유일한 예외가 독일이다. 독일은 빚을 줄이면서 성장을 이뤘다. 독일의 힘이 뭔지 궁금하지 않나? 기본적으로 경제의 바탕은 제조업이다. 일본이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도 제조업의 뿌리가 튼튼해서다. 독일은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런 바탕 위에 대기업과 ‘히든 챔피언’이라 불리는 수많은 중소기업이 톱니바퀴처럼 협력하며 돌아가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주창한 것도 그래서인가?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뿐 아니라 ‘보이는 손’도 거론했다. 독일인들은 ‘사회적 시장경제 질서’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어떻게 하면 자본주의를 가장 효율적으로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다.
여기서 ‘사회적’이라는 말은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에 정부가 개입한다는 뜻이다. 공정한 거래 확립, 세금, 사회 안전망 같은 거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탐욕은 끝이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결국 파생상품 규제를 너무 풀어서 생긴 것 아닌가? 경제민주화는 대기업 때려 잡자는 게 아니다. 공생의 원리가 작동하는 새로운 틀을 짜야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된다.

“지금은 최경환 경제팀에 힘을 실어줄 때다.”

윤증현(69)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재 경제 상황이 무척 어렵다며 단기 부양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재정지출 확대, 부동산 규제 완화, 세제 개편 등으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최경환 경제팀의 정책 방향이 어긋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8월 14일 서울 여의도 윤경제연구소(소장 윤증현)에서 만난 윤 전 장관은 “경제는 정답이 없는 선택의 문제여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박근혜정부 들어 최경환 경제팀 출범 전까지 1년 6개월여 동안 허송세월했는데 이번에는 방향을 잡았다”고 덧붙였다. 이어“최경환 경제팀의 정책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은데 비판하긴 쉽지만 직접 운용하긴 어렵다”며 “지금은 한 방향으로 가도 될까 말까인데 분열되면 곤란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말씀대로 경제가 무척 어렵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7년여가 지났다. 당시 초기 대응은 잘했다고 본다. 세계 대공황에 버금가는 세기의 위기였다. 우리가 당장 10억 달러도 빌리기 어려운 때였다. 다행히 행정력을 강력하게 발휘했고 국회도 적극 협조해 단기에 회복했다. 다만, 그걸 바탕으로 구조조정 작업도 벌였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지금껏 그대로다.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렸다. 모두가 반성할 대목이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를 꼽는다면?
고용 문제, 특히 청년 실업이 골칫거리다. 정부 수립 후 가 장 심각하다. 최대의 복지는 일자리다. 고성장 시대를 거치면서 자산과 소득을 축적한 세대가 있어 그들의 자녀 들이 아직 버티고 있지만 그게 오래가긴 어렵다. 그래서 일자리가 중요하다. 정부가 발표하는 낮은 실업률은 통계상 허구일 뿐이다. 7, 9급 공무원 시험에 구름처럼 몰려 드는 고학력 젊은이들을 봐라. 삼성의 채용 시험날은 또 어떤가. 고용 없는 성장은 세계적 문제인데 자원조차 없는 한국으로선 더욱 뼈아픈 문제다.

일자리 감소가 꼭 경기 탓만은 아니지 않나?
다른 나라도 일자리 문제가 화두다. 일자리가 점점 사라지는 건 기술의 발전과 세계화의 진전 탓이 크다. 노동 집약적인 산업이 기술·자본 집약적으로 바뀌고 있다. 또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노동력 이동이 자유로워졌다. 문제는 일자리도 중요하지만 기술 발전과 세계화도 우리가 놓칠 수 없는 화두라는 것이다. 그래서 딜레마다.


윤증현은누구인가

윤증현(사진)

1997년 외환위기 때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 2004년 카드대란때 금융감독원장,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정통 관료 출신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한복판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아 6%대의 성장률을 기록해 외신으로부터 ‘교과서적인 회복’이란 호평을 받았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역학 관계에 정통하며 강력한 리더십과 소신으로 관가에서 존경받고 있다. 현재 개인 연구소인 ‘윤경제연구소’에서 한국 경제의 발전방향과 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일자리를 늘릴 방안이 있나?
성장이다. 성장은 놓칠 수 없는 화두이며 성장 잠재력을 어떻게 키우느냐가 관건이다. 세계 경제 성장률을 넘어서는 성장을 해야 하고, 성장률이 잠재 성장률을 넘도록 해야 하며, 나아가 잠재 성장률 자체도 높여야 한다. 실업 문제 등을 해결하려면 4~5%는 성장해야 하는데 노동과 자본 같은 요소 투입만으로는어렵기 때문에 과학기술 발전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꾀해야 한다. 특히 고용 없는 성장 시대에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며 내수에서 시동을 걸어 내수와 외수(수출)의 확대 균형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구조를 바꿀 만한 내수산업은 서비스업이다. 서비스업은 내수·노동 친화적이며 특히 이걸 수출산업으로 키우면 금상첨화다. 의료 산업은 한국 경제를 이끌 신성장 동력으로도 손색이 없다.

왜 의료 산업인가?
한국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100%를 넘는 상황에서 국제환경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대외적 으로 경제가 어려울 때 내수산업으로 지탱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내수산업은 일자리 창출에도 유리하다. 내수산업의 핵심은 서비스산업이며 의료, 관광, 교육, 금융, 소프트웨어가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특히 의료 산업이 유망하다. 지난 10년간 우수한 인재가 가장 많이 몰린 분야다. 우수한 인재가 많은 분야에서 산업화 기회를 엿봐야 한다. 예전에는 공과대학에 뛰어난 사람이 많이 모였고 거기에 투자해서 공업화를 이루지 않았나? 의료 분야는 쉽게 망하지 않을 산업이다. 다들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으니까. 우리나라 의사, 간호사들 정말 잘한다. 의료는 수출산업으로도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한국의 유명한 병원을 해외에 수출하면 성공 확률이 높을 것이다.

의료 산업을 키우려면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
투자할 수 있는 곳은 죄다 규제로 묶여 있다. 약사들만 약국을 할 수 있고 원격진료도 안 된다. 이런 걸 개혁해야 한다. 웬만한 각오론 어렵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 하기 때문에 전쟁을 치른다는 각오로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 행정부만으론 역부족이고 국회의 벽도 넘어야 한다. 한국 경제가 한 단계 성숙하려면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아서는 곤란하다.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비난하지만 제왕적 국회의 부작용이 더 심각한 것 같다. 이러니 ‘경제는 정치인이 잠자는 밤에 자란다’는 말이 나온 것 아니겠나. 물론‘경제는 공무원이 체육대회 하는 날 자란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