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도련님? 이거 나만 불편해?

기사 요약글

남편의 여동생을 아가씨, 남동생을 도련님이라 칭하던 전통이‘옛날 일’로 치부될 날도 머지않은 듯합니다.

기사 내용

시댁은‘댁’으로 높여 부르면서 처가는 왜‘가’인가? 남편의 형제는 도련님인데 왜 내 동생은 처남인가? 이렇듯 일부 호칭에 여성 차별적 요소가 있다는 지적이 일면서 이를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국립국어원과 여성가족부에서는 올 상반기 중‘가족 호칭 개선 권고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를 두고‘꼭 필요한 조치다’라며 반기는 쪽이 있는가 하면‘기존대로 유지하는 게 좋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과연 50+의 생각은 어떨까요?

 

 

<재혼, 모르면 하지 마라>의 저자 권길홍 씨

전처와 이혼한 지 2년 만에 아이 둘을 데리고 현재의 아내를 만나 재혼한 나는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다. 또다시 결혼 생활에 실패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데,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다 보니 가정 내에서 꽤 많은 성차별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명절 때마다 시댁에서 내내 부엌일을 하던 아내가 그 다음 주나 돼서야 친정에 간다거나 하는 게 그런 경우였다. 내 동생한테 도련님 도련님 하는 아내를 보며‘이건 너무 봉건주의적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내가 먼저 나서서 이런 관행(?)을 바꿔보려는 시도는 해보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결국 방관자에 머물렀을 뿐이다. 최근, 남녀평등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니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호칭이 달라진다고 하루아침에 많은 관습이 개선되지는 않겠지만, 사용하는 언어가 의식에 끼치는 영향을 떠올려보면 분명 의미 있는 시도가 되지 않을까?

 

 

 

10년 전 결혼한 아들 집에 딱 두 번 가봤다는 시어머니 김미경(가명) 씨

아가씨, 도련님이라는 호칭을 두고 마치 종이 양반집 자제를 높여 부르는 것 같다고들 하지만 글쎄. 나 역시 애들 고모를‘아가씨’라 불렀던 동시에 새언니에게‘아가씨’ 소리를 들었지만 거기에 문제의식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누구누구 씨로 뭉뚱그리는 서양에 비해 우리나라의 세밀하고도 고유한 호칭 문화가 훨씬 격조 있고 멋있다고 여겼다.
그저 아름다운 전통으로 여길 수도 있는 것을, 굳이 공론화해 오랫동안 유지해온 언어를 바꾸고 긁어 부스럼 격인 사회적 논쟁을 야기하는 게 과연 타당할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로 말미암아 성평등 문제까지 거론되는 모양인데, 요즘 같아서는 되레 여권이 훨씬 더 세다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우리 집에서만큼은 그렇다.
이번 명절만 해도 그렇다. 내 딴엔 큰 선심을 써 아들 내외에게“나는 혼자 지내도 괜찮으니 너희끼리 여행이나 다녀오려무나” 했는데 며느리 말이 친정은 제사를 지내니, 명절 연휴를 친정에서 온통 보내고 오겠단다. 속으로‘뜨악’했지만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노년 전문 칼럼니스트 고광애 씨

나이 여든한 살이지만, 아들이 우선이요, 며느리는 뒷전이니 하는 전근대적인 친구들을 만나면 참 못마땅하다. 남녀평등, 여성 권리 신장을 전적으로 응원하고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요즘의 흐름을 보면 다소 과격하거나 극단적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마치 천하의 원수를 대하듯 남성을 혐오하고 배척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래서야 진정한 양성평등이 이뤄질까 싶다. 서로 우호적인 관계에서 원하는 걸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시댁과 처가, 아가씨와 도련님이라는 호칭을 새롭게 바꾸자는 것도 큰 틀에서 보면 성평등의 일환인데 용어를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들의 인식 변화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성평등을 이뤄가려면 점진적으로, 또 다수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택하길 권한다.

 

 

돌아가신 시어머니와 미운 정이 들었다는 김미향(가명) 씨

엄마에게“시집가면 그 집 귀신이 되거라”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나는 독한 시어머니 밑에서 고추보다 매운 시집살이를 견뎠다. 수시로 친정을 무시하는 것도 야속했지만, 자기 딸 귀한 줄은 알면서 며느리 귀한 줄은 모르는 시어머니에게 곧잘 분노를 느끼곤 했는데, 나처럼 시댁 때문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라면 아가씨, 도련님, 시댁 하는‘높임 표현’에 거부감이 들지 않을까?
주관이 뚜렷한 데다 많이 배우기까지 한 내 딸은 제 아이들에게 친할머니, 외할머니를 부산 할머니, 세종 할머니로 구분 짓게 하고 제 시누를 처음부터‘아가씨’가 아니라‘고모’로 부르는 식으로 나름대로 꾀를 내는 모양이다.‘너는 참 유난이구나’ 하면서도 적어도 나처럼 바보같이 살진 않겠구나 싶어 마음이 놓인다. 국가가 나서서 이런 애매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 걸 보면 그래도 우리나라가 선진국이긴 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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