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길을 떠나다 유라시아 대륙 자전거 횡단기

기사 요약글

배낭여행은 더 이상 20대 청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사 내용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패키지 관광에 지친 중년들도 20대 못지않은 열정 넘치는 배낭여행족이 될 수 있다.

오늘 이야기를 전해줄 전성기 여섯 번째 크리에이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몽골 고비사막을 자전거 단독 종단에 성공하고, 해외 총 50개국을 여행한 오지 자전거 여행가 박주하 크리에이터가 유라시아 대륙횡단 여행 중 겪었던 잊지 못할 에피소드를 전한다.

장담컨대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중년 배낭여행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뜨거운 6월의 시베리아에서…

2006년, 유라시아 대륙횡단 여행 차 시베리아 벌판의 6월 무더위 속을 자전거로 지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귀에 닳도록 들어왔던 시베리아의 전형적인 대륙성기후로 아스팔트 바닥으로부터 뜨거운 공기가 후끈거리며 올라오고 있다.

갖고 있던 식수가 바닥난지는 벌써 두어 시간이 지났는데, 이쯤이면 나타날만한 매점이나 민가가 아무리 가도 도대체 보이질 않는다. 어쩌다 지나가는 자동차에게 손짓으로 물을 구걸해 봤으나 어깨를 들썩이며 자기네도 물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는 제스처만 할 뿐, 선택의 여지없이 사람이 살고 있는 동네까지 더 달려가 볼 수밖에.

 

아스라이 나타난 마을 표지판

자전거 일일 주행거리가 이미 120 km를 넘어가면서 갈증과 무더위로 인하여 체력과 인내력이 거의 소진되어가고 있을 때쯤, 저 멀리 무슨 마을이 있다는 표지판이 아스라이 나타난다. 8 km만 더 들어가면 마을이 있다는데 이젠 더 이상 전진하지 말고 선택의 여지없이 오늘은 저 마을로 들어가 자고 가야겠다.

자전거로 8 km는 30분 이내 거리라 젖 먹던 힘을 다하여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가게를 찾아가 식수와 과일 통조림, 빵 등을 사서 허겁지겁 폭풍 흡입하고 나니 이젠 좀 살 것 같다.

 

“굳이 자전거를 잠그지 않아도 괜찮겠지…”

일단 옆집 담벼락에 자전거를 주차하고, 그 옆에 텐트를 바로 붙여서 치고 들어가 벌렁 누워버렸다. 너무 피곤하여 빨리 자고 싶어서 자전거를 잠가놓지 못한 채 텐트와 담 사이에 바짝 끼워놓기만 했다.

시골 마을이니 자전거를 굳이 자물쇠로 잠그거나 도난방지 센서를 가동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펌프 주변엔 물을 길어온 동네 아이들과 부녀자들로 시끌벅적해서 웬만하면 잠이 올 분위기가 아니었지만 오늘 하루 동안 무더위 속에서 136 km를 달렸던 피로감이 엄습하면서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잠이 들기 시작한 시각은 겨우 오후 여섯시…

내 자전거는 잘 있는지 습관적으로 텐트 문을 열고 자전거를 찾아보았다. 아뿔싸! 텐트 옆에 마땅히 있어야 할 자전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전거와 함께 유라시아 횡단 여행을 위한 의식주에 필요한 모든 게 다 들어가 있었는데 너무나 황당하다. 더구나 이런 경험은 한 번도 겪지 못했다.

꿈 속이겠지, 설마 현실은 아니겠지 하며 눈을 다시 한번 크게 뜨고 정신 차려 봤지만, 불행히도 꿈이 아닌 엄연한 현실이었다. 무엇보다 시티뱅크 국제현금카드와 여권이 사라지지 않은 것이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그래, 일단은 당황하지 말고 숨 한번 크게 쉬고 마음을 추스르고서 어찌해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 분명히 동네 사람들이 훔쳐 갔겠지만, 이 한밤중에 당장 동네를 뒤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

예전에 기차역 앞에서 흔히 보았던 캐치프레이즈가 떠올랐다. 장기간의 자전거 여행을 하려면 내 분신이나 다름없는 애마인 자전거를 매일 저녁마다 깨끗이 닦아주고, 풀린 나사가 없나 점검해 주고, 먼지투성이인 체인이나 기어 부분을 씻어주고 윤활유를 발라줘야 한다는 것을 귀에 닳도록 들어왔건만 어제는 단지 피곤함과 귀차니즘으로 시골이라고 너무 안일하게 방심했던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 맞아. 내 자전거가 주인의 무관심과 게으름을 견디다 못해 자신을 나보다 더 잘 아껴줄 다른 주인을 찾아 제 발로 굴러갔던 게야.

 

모든 게 내 탓이야!

곧이어 문득 원효대사의 해골물이 떠오르면서 나의 화두는 결국 "내 탓이오"로 귀결되고 말았다. 파울로 코엘료가 쓴 '연금술사'에서 읽었던 주인공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고자 배를 타기 전에 양을 팔았던 돈을 몽땅 잃어버렸던 순간처럼, 가벼워진 몸과 마음의 깨달음이 새삼 떠올랐다.

점차 정신을 차리면서 가족 생각이 떠오르고, 친구들 생각도 나고, 자전거 없이 앞으로 어떻게 여행해야 될지도 생각해 보았다. 순간의 절망으로부터 점차 긍정의 방향으로 다가가는 나 자신이 꽤나 신기하기만 했다.

 

경찰이 나에게 존경을?

날이 밝아오자 자전거가 없어진 걸 본 옆집 아저씨가 깜짝 놀라서 즉시 전화를 걸어 경찰을 불러주셨다. 약 10분 만에 두 명의 경찰이 차를 타고 도착해서는 의심이 갈만한 동네 블랙리스트 녀석들의 집들을 곧바로 열댓 군데 찍어 함께 뒤지기 시작했다. 몇 집을 허탕치면서부터는 어쩐지 찾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른 새벽녘부터 아침도 못 먹은 채 성의를 보여주는 경찰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이방인인 내게 무척 미안해하면서 내 여행에 단순한 관심 정도가 아니라 존경스럽다고까지 했다.

 

그래, 이젠 어쩔 수 없는 내 운명이야!

마음 비우고 자전거 여행가에서 배낭여행가로 과감히 변신하는 수밖에. 자전거 여행이 너무 힘들어 보이는 내게 하느님이 좀 편안히 가라고 배려해준 거야. 기차를 타고 며칠 전 지나갔던 대도시인 노보시비르스크로 되돌아가서 65리터짜리 대형 배낭과 몇 가지 용품들을 사서 배낭여행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이 기회에 최소한의 준비물로도 여행할 수 있음을 몸소 깨우치며 비로소 본격적인 미니멀리스트로서 첫발자국을 내딛기 시작했다.

 

박주하 크리에이터에게 ‘여행’이란…

여행은 그저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깨달음을 선물해준다. 아마 박주하 크리에이터에게도 유라시아 횡단 여행 중 겪은 자전거 도난 사건이 인생에 있어 큰 깨달음을 얻게 된 계기가 아닐까. 어느 곳이든 그곳에 깨달음이 있는 한, 박주하 크리에이터의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박주하 크리에이터의 이야기만큼 흥미로운 여행 이야기들을 전성기멤버십에서 만나볼 수 있다. 중년이 도전해볼 만한 근교 여행지부터 네팔 안나푸르나, 유럽 3개국을 걷는 몽블랑 트래킹 등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준비되어 있다. 생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지금 이 순간이다. 여행을 통해 지금을 뜨겁게 누려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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