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해 고민이라면

기사 요약글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정신과 전문의 양창순 박사의 마음 다스리기.

기사 내용

 

노무현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무렵의 일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상위 몇 퍼센트 안에 드는 학벌과 직업을 자랑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나보고“현 대통령의 심리에 대해 한마디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무렵 거의 모든 매스컴이 대학을 나오지 않은 대통령의 학벌과 그에 따른‘학벌 콤플렉스 운운’ 하는 기사를 요란하게 쏟아 내고 있었다. 아마 그때처럼 사람들이 대통령의 심리를 궁금해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대통령의 목소리를 분석해 달라는 기자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열등감 운운하는 것과 정신과의사가 누구에게 열등감이 있는 듯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미국 정신과학회에서는 정신과의사가 현존하는 사람에 대해 매스컴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절대 금지하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조차도.
어쨌든 그 모임에서 그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또 어떤 대답을 바라는지 알 만한 상황이었다. 그는 평소 자기가 졸업한 대학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로서는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내가“노코멘트”라고 했더니 놀랍게도 상대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언제부터 이 정권과 야합했느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사람들이 나서서 중재를 하는 바람에 그냥 넘어가기는 했지만 나로서는 당혹스러운 경험이었다. 당시 그 사람을 보면서 내 속에 든 생각은“열등감은 당신이 더 있을 것 같네요” 하는 것이었다. 자만심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일수록 알고 보면 오히려 열등감을 감추려고 목에 힘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똑똑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 중에는 이 열등감과 자만심의 공존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일종의 모순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의 내면을 조금이라도 깊이 들여다보면 대개의 경우 자만심보다는 열등감이 좀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기 신뢰가 낮다. 현실적으로 많은 것을 이룬 사람들도 열등감으로 힘들어한다.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언젠가 외국에서도 손꼽히는 대학 출신인 데다 외모도 거의 모델 수준인 여성이 자신감이 없다는 이유로 상담을 원했다. 그녀의 문제는 자신의 외적 조건과는 상관없이 스스로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기보다 나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비교하고 있었고, 그들보다 자신이 못났다는 생각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몹시 어렵다고 했다. 특히 처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느끼는 긴장감은 말로 다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뭔가 실수하지 않을까 싶은 불안감이 너무 컸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자 친구를 만나도 그 관계가 오래가지 못했다. 이 사람이 나를 정말 좋아하는 걸까 싶어서 의심이 가고, 그런 의심이 집착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남자들이 그녀의 외모에 반해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하곤 했다. 하지만 결국 이별을 고하는 쪽 역시 그들이었다. 그녀의 이해하기 어려운 의심과 집착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그 원인이 그녀의 열등감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열등감은 인간의 감정 중에서도 참으로 미묘한 감정이다. 남들이 보기에 열등감을 느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당당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다 가진 사람도 내면으로는 열등감이 심한 경우가 있다.
열등감은 우리 내부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나의 성격과 삶을 조종하는 일종의 어두운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이 그림자는 때때로 마치 독립된 인격체라도 되는 듯이 독자적인 방식으로 우리 인생에서 전횡을 휘두르기도 한다. 그 때문에 수많은 작가가 인간의 심리 중에서 가장 많이 묘사하는 부분의 하나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베스트셀러 종교 서적을 여러 권 쓴 미국의 목회자 데이비드 A. 시멘즈는 열등감이 인간의 잠재력을 마비시킨다고 주장한다. 나 역시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면 이렇다.
“나는 여러 사역처에서 열등감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보아왔다. 인간의 잠재력에 대한 비극적인 손실과 물이 밑바닥으로 새어 나가는 것과 같은 삶, 못쓰게 된 은사들, 진짜 금광과 같은 인간의 능력과 가능성이 새어 나가는 것들을 목격해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울었다. 하느님께서도 그것을 보시고 우신다는 것을 당신은 아는가?”

그와 같은 손실을 막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장점은 물론이고 약점까지도 다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다 보면 열등감이라는 그림자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열등감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만약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면 우리는 삶에 대해 더 이상 흥미나 성취동기를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열등감은 누구에게나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때로는 열등감도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이해할 때 우리는 열등감은 물론이고 지나친 자만심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양창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현재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주)마인드앤컴퍼니, 양창순정신건강의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30만 독자들이 열광한 심리학 베스트셀러<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나는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엄마에게> 등이 있다.

※ 이 컨텐츠는‘시니어 문화 활성화’를 위해 라이나전성기재단이 발행한<헤이데이> 기사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라이나생명은 라이나전성기재단의 다양한 사회공헌 사업을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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