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정준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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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좋고, 또 사람을 좋아하는 정준호의 이야기

기사 내용

휴대전화에 저장된 연락처가 5000개가 넘을 만큼 정준호는 연예계 소문난 마당발이다. 활동 중인 홍보대사만도 100여 가지, 배우는 물론 두 업체의 대표까지 맡고 있지만 ‘거절 못 하는 성격’ 때문에 또 어떤 자리를 수락할지 모른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혹시 정치하실 거냐고, 톡 까놓고 출세와 명성을 좇느라 바쁜 건 아니냐고. 그런데 정준호와 조금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진정성에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그는 ‘나’를 눌러놓는 대신 ‘남’을 띄우고 부풀리는 데 더 큰 재미와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다. 사람 좋고, 또 사람을 좋아하는 인간 정준호의 이야기.

 

명함에서‘대표이사’란 직함이 눈에 띄네요. 큰 흑자를 낼 만큼 사업 수완이 대단하다고 들었어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웃음). 골프웨어 사업과 웨딩 뷔페 사업 두 가지 영역에서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데 사람 만나길 좋아하는 제 성향 상 사업가가 잘 맞더라고요.

연기보다 더요?
비교우위를 논할 수 없을 만큼 두 영역 다 분신같이 소중해요. 제가 욕심이 좀 있거든요(웃음). 사실 배우가 사업을 한다는 게 위험 부담이 큰 일이긴 하죠.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먹고사는 만큼 사회에 유익한 영향을 줘야 하는데, 사업은 사적 이익을 추구해야 하잖아요. 불특정 다수와 많은 거래를 하다 보면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수도 있고, 그간 쌓은 인기와 명예를 하루아침에 잃을 수도 있죠. 그런 위험을 늘 염두에 두기 때문에 더 똑바로 살려고 노력해요. 쉽지 않지만 연기와 사업 두 영역에서 다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죠.

사업도 그렇지만 여러 단체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런 바쁜 삶이 힘들진 않아요?
저는 운 좋게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았잖아요. 어딜 가든 환호하고 좋아해주시는데, 이걸 영향력이라고 본다면 활용할 여지가 참 많더라고요. 홍보대사로서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켜 좋은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도 있고, 봉사활동을 하며 참여를 독려할 수도 있죠. 그래서 제 역할이 필요한 곳이라면 좀 힘들고 번거로워도 웬만해서는 달려가는 편이에요.

나보단 확실히 남이 우선이네요.
네, 맞아요. 머릿속으로는 세상에서 나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껏 ‘나’를 위해 산 적은 별로 없어요. 나 때문에 누군가 만족하고 즐거운 걸 보는 게 정말 좋아서 가끔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나’ 싶은 일도 마다하지 못하거든요. 엄밀히 따지면 내가 좋아서지만 그 과정이 고달플 때도 솔직히 좀 있어요. 늦게까지 모임에 참석했다 집에서 라면 끓여 먹을 때, 아침에 쓰린 속 달래가며 출근 준비하다 문득 거울을 봤을 때, 한 번씩 ‘너 괜찮니? 네 자신을 위해 한 일은 도대체 뭐가 있니’ 스스로 묻죠(웃음).

왜 그렇게 ‘남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해요?
환경적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제가 집안의 장손이라 온 집안의 기대와 특혜를 한 몸에 받고 자랐거든요. 어릴 적부터 늘 어른들이 잘한다, 잘한다 북돋아주셨기 때문에 자신감, 포부, 배짱이 두둑이 길러졌는데 그래서인지 누굴 대하든 거리낌이 없었어요. 동네 어르신들 틈에서 너불너불 잘 떠들다가도 친구들 사이에선 또 대장 노릇을 했죠(웃음). 그때 하도 단련이 돼서 지금도 타인을 대하는 게 두렵거나 부담스럽지 않은 것 같아요. 아무튼 남들에게 주목받고, 사랑받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런 종류의 행복을 계속 느끼려면 뭔가 상대의 기대를 만족시켜야 했죠. 한편으로는 그런 과정이 부나 명예, 성공을 얻는 기회가 되기도 했고요.

성공을 위해 열심히 뛰는 면도 있다는 얘기네요.
그럼요. 그걸 부인할 순 없어요. 내 가족, 지인들에게 좀 더 큰 도움을 주려면 명예나 부가 필요하더라고요. 제가 집안의 장손으로 귀하게 자랐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어른들이 기대하는 모범적인 장손은 또 아니었어요(웃음). 친구들과 까불까불 어울려 다니며 공부도 안 하고 부모님이 힘들게 농사지어서 번 돈을 타다 흥청망청 써버리는 장손이라니, 얼마나 한심해요(웃음). 친척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그 바람에 부모님 입장에서 민망하고 겸연쩍은 상황도 참 많았을 거예요. 다른 집 아들들은 군청 공무원이 됐네 마네 하는데 저는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네 마네 했으니 시골 어른들이 보시기엔 얼마나 갑갑했겠어요. 그런데 1995년에 제가 MBC 탤런트가 딱 돼서 나타나니까 부모님이 그렇게 감격하시더라고요. ‘아 이게 진짜 효도구나’ 싶었죠. 그 이후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런 감동, 만족을 줄 수 있을까 늘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더라고요.

부모님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 같아요.
부모님은 저에 대해서 최고의 신뢰를 보여주신 분들이에요. 제가 아무리 사고를 쳐도 “우리 장손이 알아서 할 거다”라며 끝까지 밀어주셨죠. 당신들은 제대로 먹고 쓰지도 못하면서 저나 형제들에게는 얼마나 헌신적이셨는지 몰라요. 성인이 돼 생각해보니 어떻게 그런 무조건적인 신뢰를 하셨을까 싶더라고요. 그 은혜를 갚아드리기 위해서라도 꼭 성공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는 살다 힘든 일이 생길 때, 욱하는 마음을 제어하기 어려울 때 항상 부모님을 생각해요.

그럼 성공하기 위해 배우가 됐어요?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제가 원래는 배구선수로 활동했을 만큼 운동에 재능이 있었거든요. 훗날 꿈이 ‘체육 선생님’이었는데 사범대에 원서를 넣었다 떨어지고 서울에서 재수 학원을 다니게 됐어요. 그런데 키도 훤칠하고 인물도 괜찮으니까 자꾸 여기저기서 “너 탤런트 해봐라” 하는 소리를 하시더라고요.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했는데 결국 떠밀려서 1993년에 뮤지컬로 첫 데뷔를 했어요. 2년 뒤 MBC 공채 탤런트로 뽑혔고요.

그렇게 ‘배우’가 된 지 벌써 24년째예요. 돌아보면 어때요?
촌놈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싶게 과분한 인기를 얻었죠. 혹시 나도 모르게 스타라는 이유로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살진 않을까 그게 늘 걱정이었는데, 그래서 나름의 ‘수’를 찾았어요. 일주일에 한두 번, 일부러 짬을 내어 세상 구경을 다니거든요(웃음). 등산복에 모자, 마스크까지 쓰고 집 근처 남대문을 출발해 서울역, 명동, 동대문까지 걸어갔다 오는데 밤 한 되, 과일 한 봉지, 양말 몇 켤레 같은 걸 사며 상인들과 말을 섞다 보면 얼마나 신선하고 재미있는지 몰라요. 서울역에 계시는 술 취한 노숙자분들이 얼마나 세상을 똑바로 보고 계시는지 들어보면 깜짝 놀라실 걸요(웃음).

‘공인’이라서 힘든 점도 많겠죠?
좋은 점이 더 많아요. 어떤 직업을 가진다 한들 이렇게 큰 사랑을 받고 돈을 벌겠어요. 그래서 좀 힘든 일이 생겨도 ‘이건 당연히 치러야 할 유명세다’ 생각하고 말아요. 제가 받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돌려드리고 싶은 마음에 봉사활동도 하고 일부러 지갑에 현금을 넣고 다니면서 식당 이모님이나 대리 기사님에게 웃돈을 얹어드리기도 하죠. 큰 액수는 아니지만 가끔 “정준호 씨를 만난 것도 영광인데,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니 더 힘이 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저도 기분이 좋아요.

 

 

40대 후반을 달려가는데, 과거에 비해 내가 많이 변했다 싶은 순간은 언제예요?
중요한 게 뭔지 확신할 수 있을 때가 아닐까 싶어요. 귀찮음과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충돌할 때, 일과 가정이 충돌할 때 무엇이 먼저인지 이제는 헷갈리지 않거든요. 연기자로서도 마찬가지예요. 지난해 제가 드라마 <옥중화>와 영화 <인천상륙작전>으로 대중을 만났는데 두 작품 모두 조연으로 출연했어요. 톱스타로서의 체면이 있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주연, 조연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배우들 각자가 작품을 위해 한마음으로 노력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나름의 가치 기준이 명확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이긴 하구나 싶죠(웃음).

가장이자 아버지로서 느끼는 변화는 무엇인가요?
많이 평범해졌죠(웃음). 예전엔 ‘폼생폼사’라고 어디서 선물을 줘도 들고 다니면 모양 빠진다고 마다했거든요. 지금은 번거롭고 귀찮아도 가족을 위한 일이면 감수해요. 야근하고 늦게 들어와 아침에 진짜 늦잠을 자고 싶어도, 억지로라도 일어나 부스스한 차림으로나마 아이를 유치원에 직접 데려다주곤 하거든요. 애가 그 시간을 무척 좋아하는데, 그런 소소한 기억이 쌓여 아버지에 대한 인상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진짜 잘해주고 싶어요.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자랐으면 하나요?
아픈 데 없이, 그저 건강하고 행복한 성인이 됐으면 좋겠어요. 야망이나 성공을 좇는 것도 좋지만 성향에 잘 맞지 않으면 되게 피곤하잖아요. 주위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클 거고요. 제가 누구보다 그걸 잘 아니까 아들만큼은 자기 의지대로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부인 이하정 씨에겐 어떤 남편이에요?
바빠서 얼굴 보기 힘든 남편이죠 뭐(웃음). 아내는 직장인이라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데 제 일은 또 그렇지 않잖아요. 평범한 남편들처럼 자주 여행도 다니고, 같이 시간도 보내고 싶지만 지금은 사실 그런 여유가 좀 없어요.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뭔가 얻을 수 있는 여행을 많이 다녀보고 싶어요. 단순히 관광을 하고 오자는 게 아니라 미리 공부하고 연구해서 ‘현장에서 깨닫는 게 많은’ 그런 여행 말이죠.

대중이 기억하는 ‘정준호’는 어떤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많은 분이 영화 <두사부일체>의 계두식 캐릭터를 기억하시더라고요. 두식이가 무식하고 단순한 조폭이지만 정의가 무엇인지 서서히 깨달으면서 결국 꽤 괜찮은 인간으로 성장해가잖아요. 어떤 문제든 나서서 해결해줄 것처럼 듬직해 보이기도 하고요. 저도 격의 없고 소탈하면서도 부당한 처사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끝으로 누군가 정준호에게‘전성기’를 묻는다면요?
배구선수로 활약하던 학창 시절이 첫 번째 전성기였습니다. 제 외모에 여학생들이 어마어마하게 몰려들었거든요(웃음). 실없는 농담 같지만 그때가 제1의 전성기였고,<가문의 영광> <두사부일체> 같은 영화로 큰 인기를 얻었을 때가 제2의 전성기였죠. 그렇게 전성기는 일생일대 한 번이 아니라 노력 여하에 따라, 또 운에 따라 몇 번이고 찾아오는 시절이 아닐까 싶어요. 벚꽃이 매년 봄마다 피어나듯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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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환
정준호씨가 운영하셨던 회사에 미납금으로 피해본 회사입니다. 연락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2023.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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