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 김유진의 창업레터 ‘칼국수 식당’ 편

기사 요약글

지금 창업을 구상 중이라면 이 기사를 참고하자. 아이템 선정부터 상호까지‘장사의 신’ 김유진 대표가 가이드를 제시한다.

기사 내용

 

김유진

김유진제작소 대표, 국내 최초의 외식업 매니저, 맛집 조련사, 푸드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25년간 음식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해왔고, 15년간 외식업체 컨설팅으로 성공시킨 레스토랑만 300곳 이상이다.<이영돈의 먹거리 X파일><생생 정보통> 등의 프로그램에서 검증단과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한국형 장사의 神>과<장사는 전략이다>가 있다.

 

TO 영철 형님께
영철 형 오랜만입니다. 퇴직 후 마음고생 많았죠? 형수가 매달 300~4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아이템이 있으면 꼭 좀 가르쳐 달라 하기에 고민하다 몇 자 적어봅니다. 일단 제겐 원칙이 하나 있어요. 주인공 역할을 할 식재료 가격이 널을 뛰듯 오르락내리락하면 안 된다. 신나게 벌다가도 사람 미치게 만드는 게 바로 원가 폭등이거든요. 현금을 얼마나 가지고 있다고 했죠? 1억? 그러면 5,000만원만 투자할 각오로 덤벼야 살 수 있어요. 보유 현금 다 투자하고 거기다 집 담보대출까지 끌어 들여 폼 잡으려 들면 아주 박살이 납니다. 매스컴에서 매일 떠들어대는‘3년 안에 폐업하는 85%의 자영업자’ 대열에 합류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죠. 그러니 약속!
보유 현금의 딱 반만 투자하기로. 그 돈으로 어디서 매장 얻고 어떻게 인테리어 하느냐고요? 자 여기서 갈리기 시작합니다. 성공하는 사람과 망하는 사람. 전자는 자신을 아주 잘 알고, 후자는 주변 사람들 눈치를 살핍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시작하는 거예요.
FROM 김유진

 

창업 매뉴얼1

 

왜 칼국수집 이냐고요?

아이템 추천해 달라고 했죠?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습니다. 돈 벌고 싶으면 물장사나 면 장사 하라고. 일단 주인공인 면 가격이 아주 착합니다. 면을 만드는 주재료 인 밀가루가 다른 재료들에 비해 가격 등락 폭이 작아요. 그만큼 안정적이라는 소리죠. 2014년, 2015년에 한우 전문점 낸 창업자들은 지금 미치기 직전이에요. 한우사육 두수가 급감하면서 도매, 소매 가격이 엄청 뛰었거든요.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인건비도 줄일 수 있고, 안정적으로 매출과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칼국수가 훌륭한 아이템이죠. 주변을 한번 돌아보세요. 칼국수집 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게다가 조금만 머리를 쓰면 히트작도 만들어 낼 수 있고요.그래도 차별화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요? 저보고 추천하라면 닭이나 사골 아니면 멸치를 고를 것 같아요. 뼈는 한우고육우고 냉동 창고에 쌓여 있거든요. 게다가 외식 메뉴 중에서도 사골을 이용한 음식이 많지 않다 보니 재료가 남아돌 수밖에요. 아주 전문적인 도매상이 아니더라도 뼈는 아주 쉽게 만날 수 있어요. 회원제 할인 매장 코스트코에서도 한우 잡뼈를 팝니다. 10kg에 1만5000원~2만5000원 합니다. 재탕에 삼탕까지 하면 60인분 정도 나와요. 물값, 가스값 빼고 나면 1인분에 육수 원가가 420원 정도 합니다. 수도 요금, 가스비 등을 뺀 이유는 아마추어가 너무 원가에 민감해지면 아시죠? 국물 좀 더 달라는 소리에 눈을 흘기게 됩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계산에서 뺀 거예요. 그거 계산할 시간에 몇 그릇 더 팔 궁리를 하는 게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되거든요. 닭도 재료로 나쁘지 않아요. 닭칼국수는 워낙 대중적인 데다가 원가도 아주 착하거든요. 그리고 닭칼국수집 사장님들만 알고 있는 특급 비밀을 하나 가르쳐드리면, 잔골이라는 것이 있어요. 가슴살, 다리살 떼어 내고 남은, 말 그대로‘남는 뼈’인데 원가가 10kg에 1만원에서 1만5000원 정도 합니다. 여기에 닭 예닐곱 마리 넣고 끓이면 국물이 꽤 괜찮습니다. 멸치도 꽤 훌륭한 식재료인데 판매 가격이 그리 높지 않아서 강력 추천은 아닙니다.

 

얼마에 팔까요?

 

남들 다 7,000원 받으니까 나도 그렇게 책정하면 되겠지 하는 순간 아주 커다란 실수를 하게 됩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1981년에 창업한 일산칼국수 7,000원과 2016년에 창업한 영철 닭칼국수 7,000원 중에 형이라면 과연 어느 칼국수를 선택하겠어요?고객은 아마추어에게 돈을 지불하는 걸 아주 싫어합니다. 그래서 먼저 출시한‘선배 브랜드’를 뛰어넘는 가치를 창출하고 싶다면 가격이든 양이든 서비스든 편의든, 무엇 하나는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는 특별함을 찾아내야만 합니다.좋은 방법이 하나 있어요. 형이 칼국수집에 바라는 10가지를 적어보는 거예요. 사기 대접, 묵은지, 겉절이, 동치미, 놋쇠 수저, 서비스 조밥, 비빔 대접 등. 사실 이제 막 창업을 하는 형이 이 정도 디테일만 제대로 살려도 금방 주목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현실은 좀 다릅니다.‘다들 플라스틱처럼 생긴 멜라민면 대접 사용하는데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어?’ 하며 세웠던 목표 중 하나를 슬쩍 내려놓습니다. 이러면 끝장납니다. 가격적 차별화를 할 것이 아니라면 전략적으로 차별화를 시도해야 하거든요. 만약 형이 위에 적어놓은 정도의 약속만 지켜도‘중박’은 하실 거예요. 비교해볼까요? 그냥 닭칼국수 + 겉절이 vs 사기그릇에 담긴 칼국수 + 김치 3종 세트. 원가가 많이 들 것 같다고요? 사기그릇이 무거워서 일하는 아주머니들 손목 다 나갈 것 같다고요? 별걸 다 걱정하십니다. 이제부터 형이 집중해야 할 사람은 손님이에요. 그릇이나 커틀러리가 무거우면 고객은 15% 정도 더 지불할 의사가 있다는 옥스퍼드대학의 연구 결과도 있어요. 그런데 형이 그냥 닭칼국수집과 같은 가격을 받는다면 고객들은 이리 생각하겠죠.“어이쿠 15%는 싸게 먹는 기분인데….”

창업 매뉴얼2

 

김치는 뭐로 할까요?

 

배추 가격도 비싼데 김치를 3종이나 내주냐고요? 그럼 하나만 물어봅시다. 형은 달랑 겉절이 하나만 내주는 집이 좋아요? 아니면 커다란 항아리 뚜껑에 푸짐하게 내오는 겉절이, 묵은지, 백김치 3종 세트가 좋아요? 원가가 걱정이라면 제가 책임질게요. 지금까지 20년 넘게 잘나가는 집 주방의 비밀을 소개하며 먹고살았는데 김치 3종, 4종 주고 망한 집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아끼고 꿍친 집들은 다 문 닫았습니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인간이 염소도 아니고 김치 300g 이상 먹는 분 거의 못 봤어요. 이것도 계산해볼까요? 업소에서 쓰는 김치는 제일 싼 건 10kg에 1만원에서 비싼 녀석은 3만원까지 합니다. 그럼 평균 2만원 잡고 한 사람이 김치를 300g 먹는다면 600원 정도 듭니다.어느 브랜드가 좋은지 단박에 알려드리면 나태해질 테니 일단 하나로마트 양재점 업소용 매장에 가보세요. 간단한 등록 과정을 마치고 나면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던 신세계가 열립니다.김치 파트에 가면 수십 종이 진열되어 있어요. 자료 조사 차원에서 다 사서 드셔보길 바랍니다. 그래야 변별력이 생기거든요. 저는 개인적으로 경기농협의‘수라청’이라는 브랜드를 좋아합니다. 종류도 다양하고 간이 적당해요. 다시 계산기로 돌아갑니다.
면 원가 제일 비싼 걸로 700원을 잡아도 다 합하면 2,000원이 안 되는 셈이죠. 만약 반죽기랑 제면기 놓고 면을 직접 뽑으면 이 원가는 더 줄어듭니다. 마진율이 좋아요. 초A급 상권에서 한 달 임대료 1,000만원을 내는 구조만 아니라면 꽤 매력적인 아이템입니다. 대부분의 외식업 아마추어들이 임대료 같은 간접비를 고객에게 부담 지우려는 경향이 많아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고객은 한 번 당하지 절대 두 번은 당하지 않아요.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요?

 

집 주변이면 제일 좋겠지만 칼국수라는 아이템이 얼마나 먹힐지 판단할 근거가 없잖아요. 자, 그럼 네이버에게 물어볼까요?‘데이터랩’이라는 서비스를 활용하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어요.아래 그림에서 가장 푸르게 나온 지역이 칼국수를 찾는 사람들이 많은 곳입니다. 네이버에 등록된 매장 대비 검색 수가 높을수록 지도에서 푸르게 나타납니다. 이 데이터에서 힌트를 좀 얻었다면 이제 발품을 팔아야겠죠. 부동산도 뒤지고 골목도 뒤지고 종아리와 허벅지가 단단해질수록 장사 근육도 단단해집니다.

창업 매뉴얼3

 

상호는 어떻게 지을까요?

 

‘대치칼국수 VS 도면(刀麵)’. 대치동 살았다고 해서 대치칼국수라 붙였습니다. 그런데만약 프랜차이즈까지 염두에 둔다면 상표등록이 가능한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요. 특허청에서도 가능하고 기왕 제대로 해보고 싶다면 가까운 변리사에게 확인해도 괜찮습니다.아무래도 전자가 직관적이죠. 후자는 근사하기는 한데 한자를 모르는 분들도 있을 테고 왠지 중국식 냄새가 나기도 해요. 네이밍은 정말 중요해요. 한눈에 들어와야 하고, 쉽게 잊혀지지 않아야 하고, 확장성도 있어야 하거든요. 저라면‘대치동 김영철 닭칼국수’쯤으로 하겠어요. 신뢰도 주고, 뭘 파는 집인지도 한 방에 설명하고. 단박에 결정하지 말고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외식업 사장은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법이거든요. 오늘 적은 이야기만 반영해도 비용은 30% 정도 줄일 수 있고, 매출은 20% 늘고 위험은 60% 정도 줄일 수 있습니다. 나머지 디테일한 이야기는 소주라도 한잔하는 자리에서 말씀드릴게요. 조급하면 지는 겁니다. 부러워도 지는 거고요. 차분하게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공부한다 생각하고 많이 돌아다니세요.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란 소리는 그냥 나온 게 아니거든요. 다 망해도 난 성공하겠다는 각오로 덤빈다면 제가 격하게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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