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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노포 에세이] 메뉴가 곧 상징이 된 '이북만두'
여행∙문화 3,923

노포(老鋪),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 ‘글 쓰는 요리사’로 유명한 박찬일이 시간과 공간을 지켜온 그 맛의 비밀을 찾아 나섰다.

 

 

예전엔 서울 시내에 차고 넘치다가 지금은 사라져버린 존재가 어디 한둘인가. 만두 가게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힘겨운 손노동으로 완성되는 만두가 번화가에서 살아남길 기대하는 게 무리일 것이다.

이번에 찾아간 곳은 1990년 문을 연 이북식 만둣집 ‘이북만두’다. 대표 메뉴의 명칭으로 상호를 만든 주인의 자신감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주문한 만두와 김치말이국수가 나왔다. 만두는 두부가 넉넉히 들어가서 심심하고, 같이 나온 김치말이국수는 짜릿하다.

 

 

 

 

이 집의 이북만두며 김치말이국수 솜씨는 죄다 박 여사가 어머니인 이종옥 여사에게서 물려받았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에 가던 날, <동아일보> 기자가 서울에서도 맛볼 수 있는 이북 음식으로 이 집의 김치말이밥을 신문에 소개하면서 이른바 ‘대박’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의 주력은 역시나 만두다. 그중 특이한 메뉴가 하나 눈에 띈다. ‘굴림만두’인데, 만두소가 남으면 그걸 팬에 굴리듯 지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어떻게 보면 동그랑땡이나 한국형 햄버거 패티, 미트볼이라 볼 수도 있겠다. 고소한 풍미가 또한 별미다.

 

 

 

 

‘이북만두’가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또 있다. 맛도 맛이지만 가옥이 지닌 기운도 범상치 않기 때문. 가옥 대들보에 새겨진 건축 날짜를 보니 쇼와 12년(정축년) 5월이다. 쇼와 12년이면 1937년인데, 당시 이렇게 넓은 대지에 넉넉하게 자리 잡은 집이라니! 한눈에 봐도 부잣집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장사를 시작하면서 가옥의 구조는 군데군데 바뀌었지만 제니스 라디오나 오래된 싱거미싱 등 옛 물건들이 곳곳에서 정취를 더한다. 가게를 물려받을 아들은 오늘도 열심히 어머니에게 만두를 배운다. 오래전 이북에서부터 시작된 손맛이 고스란히 전해지기를 바라본다.

 

 

기획 이인철 박찬일 사진 노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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