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를 개척하는 남자, 임호

기사 요약글

마음에서 우러난 존경을 받는 어른이고 싶어요. 단순히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기사 내용

 

‘왕 전문 배우’로 각인돼 있지만 임호는 ‘엄격, 진지, 근엄’과는 거리가 먼 타입이다. 톨게이트 직원에게 꼭 고맙다는 인사를 남겨야 마음이 편하다는 그는 세 아이의 아빠로 육아 전쟁을 치르는 한편 등산, 야구, 승마, 요리, 독서 등 온갖 취미를 섭렵하며 살고 있다. 그는 이러한 인생의 ‘잔재미’가 삶의 뿌리를 얼마나 튼튼하게 다져주는지 잘 알고 있다. 청년 같은 외모와 달리 어느덧 데뷔 23년 차를 달리고 있는 임호에게선 세상의 평가와 무관하게 자신을 다독이며 지켜가는 내공도 느껴진다. 공인과 개인 사이에서 누구보다 균형적인 삶을 가꿔가고 있는 그를 만났다.

 

오늘 촬영은 어땠나요?
맨날 수염 붙이고, 상투 트는 사극만 찍다가 이렇게 평범한(?) 촬영을 하니 좋네요(웃음).

사실 임호 하면 사극, 특히 왕의 이미지가 먼저 떠올라요.
저 왕위 내려놓은 지 꽤 됐어요. 허허(웃음). <장희빈> <대장금>처럼 제가 왕으로 등장한 드라마의 시청률이 꽤 높아서 더 그렇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요. 어릴 때는 그런 얘기가 참 불편하고 싫었는데 지금은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트랜스젠더나 악역을 맡아도 다시 반듯하고 성실한 임호로 봐주시거든요.

그런 신뢰감 때문일까요? 이번에 라이나생명의 새 모델로 발탁됐어요.
그래서 기분이 아주 좋았답니다(웃음). 보험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대비책인데 기왕이면 제가 모델로 있을 때 좋은 상품이 많이 개발돼 더 많은 분들이 혜택을 보셨으면 좋겠어요. 너무 교과서적인 대답인가요? 하하.

하지만 모범생 타입은 또 아니죠. 솔직히 좀 고지식한 면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게임, 승마, 축구, 야구, 등산, 요리, 블로그 운영 등 다양한 취미를 즐기시더라고요.
제 기준에서는 이런 취미 활동이 다 사람을 모으고 소통하는 수단이에요. 사람을 굉장히 좋아해서 뭐든 팀으로 하는 스포츠를 좋아하거든요. 요리도 얼핏 혼자 하는 것 같지만 선생님에게 배우고 궁금한 걸 묻고 하는 과정에서 소통이 일어나죠. 블로그는 두말할 필요가 없고요. 그런데 제 유일한 장점이 또 끈기예요. 한번 꽂히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노력을 기울이는 편인데, 연예인 축구팀에서 활동할 땐 경기 2시간 전부터 나가서 혼자 공 차는 연습을 했어요. 야구단에 들어가서는 레슨을 받으러 다녔고, 등산의 재미를 알고부터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국내외 산을 올라 다녔죠. 그렇게 제 나름대로 성의 있는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문득 작은 성취를 이룰 때가 있거든요. 예컨대 죽어라 안 되던 드리블 기술을 계속 연습하다 어느 날 성공하게 되는 것처럼요. 그런 경험이 한두 번 쌓이다 보니 자꾸 새로운 분야에서 성취와 재미를 보고 싶어지더라고요. 제가 두루두루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시도하는 건 그런 류의 설렘을 찾는 사람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부모님께서 연기자의 길을 반대하진 않았나요?
네 전혀요. 사실 저는 원래 물리학도가 되려고 했는데 고3 때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하다 보니 연기자가 제 적성에 맞을 것 같더라고요. 확신이 들자마자 바로 아버지께 말씀 드렸더니 첫마디가 ‘그럼 예체능 참고서 사야겠구나’였어요. 훗날 우연히 듣게 된 바로는 제가 연기를 하겠다니까 내심 기뻐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아들이 내가 일하는 계통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그런 마음에서요.

그렇게 연기자가 됐고 지금껏 수많은 작품을 거쳐왔음에도 상복이 참 없었어요. 그러다 2015년 KBS 드라마에서 서동필 역으로 우수연기상을 수상했죠. 첫 수상인데 감회가 남달랐겠어요.
제 아내가 신혼 초에 한 번 묻더라고요. 오빠는 연말인데 왜 시상식에 안 가느냐고요. 아닌 게 아니라 저는 신인 때 오프닝 공연에 동원된 거 외에는 시상식 무대에 서본 적이 없어요. 그냥 각종 협회의 요청으로 객석에 앉아 있었던 적은 있었죠. 몇 번 수상 기회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이상하게 후보군에도 안 올려주시더라고요(웃음). 당연히 섭섭했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지더라고요. 거의 포기하고 살았는데 작년에 처음, 수상 후보가 아닌 수상자가 된 거예요. 제가 상을 받았다니까 시상식장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스태프들이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오히려 자기들이 더 들떠서 제가 다 어리둥절했죠. 저희 장인어른도 그날 어찌나 좋아하셨는지 몰라요.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은 들더라고요. 내 개인적인 만족을 떠나서 나를 걱정하고 위해줬던 많은 사람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상을 받았어야 했다고.

 

 

임호 씨는 훗날 어떤 모습의 ‘어른’이 되고 싶으세요.
‘나잇값 하는 어른’이요. 우리 조상들이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장유유서’를 지키라고 했을 것 같지는 않아요. 나이가 들어감으로써 늘어나는 연륜, 지혜, 너그러움 같은 어떤 ‘태도’를 지녔다는 전제하에 그런 표현이 생겨났을 것 같아요. 저도 마음에서 우러난 존경을 받는 어른이고 싶어요. 단순히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끝으로‘인생의 전성기’를 정의해 본다면요?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순간인 걸 모르다니’라는 짧은 시가 있어요. 인생은 이 시만큼이나 짧죠. ‘언젠가 전성기가 오겠지?’ 하며 막연히 기다리지 말고 하루하루 오늘이 내 인생 최고의 정점, 즉 전성기라고 생각하며 사는 태도가 중요할 것 같아요. 특정한 ‘때’가 아니라 마음먹기에 따라 매일매일 펼쳐질 수 있는 것. 그게 전성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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