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드립

기사 요약글

사랑하고 신뢰하는 두 사람이 그 감정을 표현하고 서로 나누는 것.

기사 내용


이 말들은 우리나라의 음담패설이자 속담들이다. 꼭 성행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어도 일상생활에서 하고 싶은 말을 우리 선조들은 성행위에 빗대어 말하곤 했다. 아마 거의 모든 어른들이 하는 일상이기 때문에 거기에 빗대 말을 하는 것이 어렵게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쉽게 알아들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여기저기서 자주 쓰던 말이었다. 요즘같이 성희롱에 민감한 시대에는 자리를 가려서 하지 않으면 곤경에 빠질 말들이지만 예전에는 노는(?) 자리에서 이런 말 몇 마디쯤은 해야 ‘좀 놀 줄 아는’ 한량 축에 들었다. 실제로 ‘춘향전’이나 ‘심청이 인당수에 빠진 이야기’ 같은 우리나라 판소리에도 고명처럼 이런 음담은 여기저기 숨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 심각하거나 눈물짓던 좌중을 폭소로 끌어내곤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 스스럼없이 유행하고 있는 ‘낮져밤이’ 같은 음담은 단어를 줄여 무언가 암호 같기도 하고, 그냥 듣기로는 야하지 않지만, 사실 노골적으로 섹스를 드러내는 말이다. ‘낮져밤이(낮에는 져주고, 밤에는 이긴다)’는 낮에는 매너 있게 여자의 말을 들어주는 배려남이지만, 밤 잠자리에서는 여자가 ‘꼼짝 못하도록’ 황홀하게 해주는 능력자란 뜻. 그럼에도 약자로 사용해서인지 어린 연인들도 쉽게 장난처럼 유쾌하게 주고받는다. 주로 남자 친구나 애인을 이야기할 때 사용한다. 성에 대한 말들은 괜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그냥 말뿐인데도 몸과 마음을 뜨겁게 하는 효과가 있다. 왠지 이런 성에 관한 음담을 들으면 얼굴이 발그레하니 붉어지고, ‘훅’ 뜨거운 기운이 몸을 도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말들을 공공연하게 해대다간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다.


자칫 나의 인격을 의심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는 사람의 의도보다 당하는 사람의 감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희롱을 저지른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사람마다 성에 대한 정보와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성에 대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조심’과 ‘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공적인 자리에서의 이야기이고, 부부간 사적인 자리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도 있다. 때때로 부부간의 섹드립은 카타르시스를 불러오기도 하고 섹스로의 초대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래전 독일에서 만든 노인들의 사랑과 성에 대한 영화를 감동적으로 본 적이 있다. 거기서 76세, 67세 두 노인은 첫눈에 마법 같은 사랑에 빠져 마치 15세 소년 소녀 같은 사랑을 하게 된다. 강가로 나가 함께 수영도 하고, 도시락을 싸서 소풍도 가고, 당연히 섹스도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섹스를 하는 중에 남자의 발기가 풀려버렸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섹스를 중단하게 되었고, 여자는 남자가 곤란해하지 않도록 마음을 쓴다. 그러자 당황했을 남자가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는지 농담을 던진다.
“당신 80세가 되면 어떻게 섹스를 해야 하는지 아오?”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일단 여자가 옷을 벗고 물구나무를 서서 다리를 벌리는 거요. 그러면 남자가 뛰어내리는 거지.”
여자가 이 이야기를 듣고 웃자 남자가 말한다.
“하지만 걱정 말아요. 난 아직도 3년이나 남았으니.”
대개의 경우 남자들은 섹스를 하다 발기가 사라지면 풀이 죽거나 당황한다. 그런데 이 나이 든 남자는 그것을 농담 삼아 이야기하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이다.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교회 성가대에 나가 열심히 합창을 연습하고 주일이면 성가대에 서서 봉사하는 신앙심 깊은 여자인데 남자의 이런 면이 오히려 여자를 생기 있게 만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부부간의 섹드립이란 이런 것이다. 은밀함을 나누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유쾌하게 은근하게 할 수 있는 음담이 바로 그것이다. 부부 사이에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염려 없이 음담을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에 스스럼없이 웃어주고 유쾌하거나 은밀한 수작(?)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전희가 된다. 섹스는 몸만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때론 분위기로도 말로도 나누는 것이다. 또한 섹스란 사랑하고 신뢰하는 두 사람이 그 감정을 표현하고 서로 나누는 것이다. 몸의 감각만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오감을 이용해 서로의 뇌를 통해 느끼는 것이다. 상대를 보고, 냄새를 맡고, 상대를 맛보고, 만지고, 상대의 말이나 목소리를 듣는 것을 통해 멋진 섹스를 성취할 수 있다.

 

글을 쓴 배정원은

애정 생활 코치로 현재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이며, 한국양성평등진흥원 초빙교수이자 세종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수의 매체를 통해 성 칼럼니스트 및 전문 패널로 활동했으며, 저서로는 <똑똑하게 사랑하고 행복하게 섹스하라> (21세기북스), <니 몸, 네 맘 얼마나 아니?> (팜파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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