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얼굴 이휘향 편

기사 요약글

배우로서 가장 큰 즐거움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많다는 거죠.

기사 내용

오늘 촬영을 위해 옷을 직접 준비하셨네요?

전 드라마 촬영할 때도 스타일리스트 없이 직접 다 제작해요. 역할을 맡으면 머릿속에 그리는 이미지가 있는데 아무래도 제가 가장 잘 아니까요. 어떨 땐 평범한 주부를 연기해야 할 때도 있고 어떨 땐 화려함의 극치를 표현해야 할 때도 있죠. 오늘 입은 흰색 옷은 드라마 <맨도롱 또똣>을 위해 제작한 거였어요. 제가 연기하는 백세영은 화려하지만 동시에 우아한 느낌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맨도롱 또똣>에서 쓰고 입은 블랙 앤 화이트의 화려한 모자와 의상도 직접 제작한 건가요?

네.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온 모자 만드는 친구에게 부탁해 만들었어요. 그런 과정을 통해 모든 게 완벽하게 준비되면 그때는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어요. 전 연기를 연극으로 시작해서 그런지 처음부터 이렇게 해왔어요. 연극배우는 분장도 직접 하고 의상도 직접 골라야 하잖아요. 그 습관이 몸에 밴 거죠. 준비가 안 됐다는 생각이 들고 뭔가 신경이 쓰이면 연기에 몰입이 안 되더라고요.

 

지금 방영 중인 <가족을 지켜라>의 복수자 역은 아들을 위해 애쓰는 살림꾼 주부예요. 그간 다양한 역을 맡았는데 왜 사람들은 이휘향 하면 <야망의 세월> <천국의 계단>에서 맡았던 화려하고 도도한 이미지만 떠올릴까요?

그렇죠. 호텔 사장도 했고 운전수도 했고 간호사도 했고, 정말 많이 했네요. 아무래도 그런 역할을 연기한 드라마의 시청률이 높았고, 역할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악역만 해서 어떡해요’ 하기도 하는데 전 재미있고 만족해요.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영역 중 이런 것도 있구나 놀라기도 하고요. 어떻게 보면 한계가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뭇거리거나 두려워했던 역할도 있었겠죠?

가장 머뭇거렸던 역은 <야망의 세월> 젤소미나였어요. 원래 남의 집에서 가정부를 하던 시골의 순수한 여자지만 어쨌든 극 중에서는 다방 마담으로 비춰지죠. 그때 제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였어요. 아이 때문에 고민했죠. 내가 이 역을 과연 해야 하나? 이런 역을 하면서 배우를 해야 하나? 이 역을 통해 내 잠재의식 속에 있는 무엇을 끄집어내야 하나? 나 자신과 부딪힌 거죠. 그때 정말 많이 고민하고 갈등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래, 나도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한번 해보자’ 싶더라고요.

 

그 결과는 만족스러웠을 것 같아요. 화제도 많이 됐고 상도 받았죠?

그때 당시엔 스스로에게 만족하기보다는 ‘내가 이만큼 할 수 있구나’ 정도였어요. 배우 생활을 하면서 100% 만족은 없어요. 만약 내가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한다면 그때도 아마 100% 만족 못한다고 할 걸요. 지금도 난 부족해요. 그 부족함을 아니까 끊임없이 노력하는 거예요.

 

몸매 관리를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하죠?

트레이너와 하루에 1시간 30분씩 운동해요. 승마도 하고요. 승마는 시작한 지 3년쯤 됐는데 온몸의 근육을 다 써야 해서 좋더라고요. 먹는 것에도 신경을 많이 써요. 단백질 위주로 하루에 4~5번 먹어요. 하루에 달걀 5~6개와 바나나 2개 먹고 우유와 채소를 많이 먹어요. 밀가루나 튀긴 음식은 전혀 안 먹죠.

 

 

연기하지 않고 쉴 때 개인적으로 즐기는 문화생활이 있나요? 전 그림을 좋아해요. 유화도 그리고 가끔 스케치도 해요. 드라마<연인> 때 미술가 역을 맡았었어요. 그때부터 그리기 시작했으니까 오래됐죠. 연기처럼 뭔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있을 때 그리게 돼요. 음악 듣는 것도 좋아해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들어요. 자메이카 음악, 쿠바 음악 같은 월드 뮤직도 듣고 피아노곡도 들어요.

데뷔 이후 계속 그렇게 자기 관리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나요?

책임감 때문이죠. 시청자들이 원하는 나의 이미지가 있잖아요. 어떤 배우에게는 편안하고 포근한 이미지를 원한다면 나에게는 뭔가 세련되고 화려한 걸 기대하잖아요. 그 이미지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시청자들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건 그런 게 아닐까 싶은 거죠. 언제나 다른 사람을 만나 작업하고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크지만, 배우로서 가장 큰 즐거움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많다는 거죠. 그게 아파도 누울 수 없게 하고 슬퍼도 덜 슬프게 하는 것 같아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역을 주로 맡다 보니 촬영할 때와 쉴 때 삶의 무게를 맞추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아요. 어떻게 균형을 맞추나요?

악역을 하고 나면 몸이 안 좋아져요. 편안하게 쉬고 운동하면서 몸을 원상태로 복귀시켜야 해요. 하지만 몰입했을 때는 내 안의 몰랐던 내가 나와요. 생각과 행동이 자유로워지고 어떤 틀에 갇히지 않는 순간이죠. 그때의 희열은 말도 못해요. 저는 역할에 빠져 있을 때는 친구들도 잘 안 만나요. 동료들 사이에서도 유명해요. 일 이외의 약속은 잡지도 않죠.

외롭지 않나요?

일할 때는 외로움을 못 느끼니까 괜찮아요. 친구는 현재 나랑 같은 뜻을 가지고 같이 가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 저에게 최고의 친구는<가족을 지켜라> 팀이죠. 매일 만나고 매일 밥 먹고 매일 대사를 주고받는 사람들이잖아요. 죽어서 무덤에 갈 때 제 옆에 옛날 친구들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이 친구죠. 죽을 때 무덤 앞에 친구 두세 명 있으면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하잖아요. 맞는 말 같아요. 끊임없이 같이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늘 두세 명 있었다는 얘기잖아요.

그럼 후회 없이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나요?

네. 지난 일을 잘 기억 못해서 문제가 되기도 하죠. 가장 힘들 때가 돈을 얼마 썼는지 정리할 때예요(웃음). 제가 만족해서 잘 썼으면 된 거 아니에요? 전 어떻게 되어야겠다고 목표를 정하고 살지 않았어요. 저에게 부족한 걸 그때그때 채워가다 보니 지금까지 온 거예요. 그러니 저 역시도 앞으로 제가 어떻게 변해갈지 몰라요.

더 나이 들어서 연기하는 모습을 떠올려본 적이 있나요?

없어요. 그냥 단지 오래 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에요.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그런 이유예요. 전 사실 내성적인 학생이었어요. 내성적이지만 사람들 앞에 서고 싶어서 합창단에 들어가려고 했어요. 사람들 틈 안에 있으면 눈에 안 띄면서 남 앞에 설 수는 있으니까요. 근데 노래를 못해서 떨어졌어요(웃음). 그때 담임선생님이 ‘넌 예쁘니까 배우를 해봐라’며 연극반에 가보라고 했죠. 애거사 크리스티가 쓴 <쥐덫>의 케이스웰로 무대에 섰는데 하나도 안 떨리고 재미있는 거예요. 그때 배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배우가 천직으로 느껴져요.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책임감도 느껴요. 저 혼자 기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기쁠 수 있잖아요.

전성기가 언제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가장 행복할 때, 그러니까 오늘이 내 전성기라고 생각해요. 전 ‘늘 오늘처럼’ ‘지금처럼’이란 말을 좋아해요. 인간은 항상 뭐든 영원할 거라고 기대하고 거기서 오는 실망 때문에 슬프고 우울하잖아요. 지금에 충실하다 보면 지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만큼만 기대하니까 실망도 없어지고 행복해져요. 오늘이 그만큼 소중한 거죠. 저에겐 지금이 전성기고 오늘이 전성기예요.

인간은 계속 변화해야 한다는 의미 같기도 하네요. 네, 맞아요. 인간은 변화해야 해요. 머물러 있으면 안 돼요. 전 늘 변하고 싶어요.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오자룡이 간다>의 이기자가 불렀던‘생일 축하’ 노래를 해보라고 하는데 전 못해요. 생각이 안 나요. 다 잊고 털어버렸거든요. 후배들에게도‘너희들의 단점을 다 보여줬을 때가 가장 예쁠 때다’라고 말해요. 누구나 아는 장점이 아니라 단점을 드러냈다는 건 그 사람이 크게 변화했다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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