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얼굴 조재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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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색깔이 점점 선명해지는 걸 느끼고 보니 50대가 설레더라고요.

기사 내용

조재현

 

‘그렇게 됐으면’ 하던 바람이 어느새 삶을 비집고 들어와 문득문득 사람을 감개무량하게 만들 때가 있다. 조재현도 요즘 그런 감개무량을 느낀다. 세상을 떠난 형과 자신의 이름을 따 1년 전 ‘수현재씨어터’를 세운 그는 계획대로 무대 위에 중년을 위한 연극을 올렸다. ‘저런 것도 할 줄 알아’ 소리를 듣는 신기한 배우가 되고 싶다던 목표는 장르를 넘나드는 연기로, 분야를 가리지 않는 업무로 이미 이뤄낸 지 오래다. 가상의 극본이 무대에서 연기로 되살아나듯 그의 꿈은 점점 현실이 됐다. 

 

만나면 제일 먼저 물어보고 싶었어요. 자장면 좋아하세요?
드라마 <펀치> 얘기죠?(웃음) 좋아하긴 하는데 촬영 때마다 하루 4그릇씩 먹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자장면을 하도 맛있게 먹어서) 매출이 올랐다고 중국집 사장님들한테 인사를 들은 것까진 좋았는데 그만큼 배가 많이 나왔어요.

이렇게 몸이 좋은데요?
그래도 예전 같지 않아요. 젊을 땐 대충 다녀도 멋있어 보일 거라 착각했는데 요즘은 신경을 좀 써야 멋있을까 말까예요(웃음). 옷을 좀 잘 입고 다녀야겠다는 생각도 최근에 들기 시작했어요.

그러고 보니 올해 딱 50세가 됐는데 감회가 어땠나요?
편안했어요. 10년 전 마흔이 됐을 때랑은 전혀 달랐죠. 그때 한 1~2년간 사춘기 못지않은 방황을 했는데 한여름이었다가 갑자기 가을, 겨울로 바뀌는 느낌이더라고요. 저는 마흔이 정말 먼 훗날의 얘기인 줄 알았거든요. 그래도 고민을 거듭하면서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내 색깔이 점점 선명해지는 걸 느끼고 보니 50대가 설레더라고요.

연기로든 극단 대표로든 승승장구하는 이유가 있었네요.
조재현 씨 덕분에 50+가 다시 대학로 연극을 보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있어요. 1년 전 ‘수현재씨어터’를 세우면서 ‘중년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어요. 그만큼 우리 또래가 즐길 만한 문화시설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특히 대학로가 10대 20대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게 참 싫었는데 중년들이 점점 대학로 연극과 멀어지는 이유가 그런 데서 오지 않았나 싶어서였어요. 그래서 이순재, 나문희 선생님 같은 원로 배우들<황금연못>), 김성령(<미스 프랑스>), 이광기, 임호(<민들레 바람 되어>) 같은 중년 배우들을 무대로 끌어들여 관객을 유도했죠. 공연 자체도 중년의 향수와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들이었고요. 그 결과 대학로에 중년 관객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어요. 어떤 날은 관객 평균 나이가 50대 이상인 적도 있었죠.

연극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을 갖고 있는데 조재현 씨가 처음 접한 연극은 뭐였어요?
1년 전 ‘수현재씨어터’를 세우면서 ‘중년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중학교 3학년 때 누나랑 같이 본 이강백 작가님의 <결혼>이에요. 배우들의 연기도 신기했지만 연극이 끝나고 관객에게 빌린 소품을 되돌려주며 했던 배우의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여러분한테 손수건, 만년필을 빌렸고, 또 돌려드렸죠. 그런데 처음과 달라진 게 있나요? 잘못 쓴 흔적이 있나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로 누군가로부터 빌려 쓰는 겁니다. 깨끗이 쓰고 돌려줘야죠.” 나도 저렇게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게 제 배우 인생의 시발점이었어요. 영화나 책, 드라마랑 다르게 연극이 가진 힘이 있는데 그건 자아 성찰일 수도 있고 동기부여일 수도 있어요. 그렇게 중요한 문화인데 자칫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연극은 싸고 웃기고, 맨날 사랑 타령이나 하는 공연’이라는 왜곡된 인식이 생길까 봐 걱정이죠.

영화<한반도> 개봉을 앞두고“이번엔 박사 역할을 맡아 자식들에게 떳떳하다”는 우스갯소리를 했어요.‘센 역할’에 대한 고충이 만만치 않았나 보죠?
하하, 내가 그런 말을 했어요?(웃음) 장난삼아 한 소리겠지만 사실 가족들 생각하면 ‘센 역할’에 대한 부담이 있어요. 특히 애들 어렸을 때 집사람이 학부모 모임에 가면 사람들이 꼭 그렇게 “남편이 베드신 찍어도 괜찮냐”고 물어본다는 거예요. 그때마다 “배우인데 뭐 어때요” 하고 넘기려 들면 기어코 “나는 그러면 못 볼 것 같아” 하는 말로 꼭 염장을 질렀대요. 대중의 얄궂은 심리랄까요? 그렇게 소소하게 마음을 다치는 일들이 많아서 실제 <스캔들> <바람난 가족> 같은 영화는 고사하기도 했어요.

KBS 공채 탤런트로 선발되면서 배우의 꿈을 이뤘잖아요. 늘 만족했나요?
아니죠. 매번 단역만 하다 연달아 주연을 맡았는데 시청률이 저조하니까 바로 조연으로 강등시켜 버리더라고요. 별로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개성 강하고 웃긴 조연이 돼서 자유롭게 연기를 하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 뒤로 코믹 연기에 날개를 달았는데 그 시기가 내 배우 인생의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때 당시 시트콤 섭외가 엄청 들어왔지만 너무 코믹한 이미지로 굳어지는 건 싫어서 계속 고사하며 기회를 노리다 드디어 2001년 드라마 <피아노>를 잡게 된 거죠. 다음 해에 영화 <나쁜 남자>까지 잘됐으니 더 바랄 게 없는 시절이었어요.

 

 

연기를 하면서 가장 큰 고비는 언제였어요?
1995년도에 계속 배우를 하느냐 마느냐를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대하 사극에 고종으로 출연할 때였는데 공장에서 찍어 내듯 매일 비슷비슷한 연기를 하려니 지겹더라고요. 돈은 벌었지만 내가 이러다 ‘어? 얼굴은 봤는데 이름이 뭐더라’ 하는 배우로 살게 되진 않을까 무서웠어요. 설상가상으로 형(MBC 촬영감독 故 조수현 씨)이 사고로 세상을 뜨면서 아버지 사업을 제가 맡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죠. 나는 아직 배우로서 제대로 날개도 못 펴봤는데 여기서 접는 게 맞을까? 한참 고민하다 일생일대 작품을 만나게 돼요.

김기덕 감독의 <악어>겠죠? 여러 인터뷰에서 봤어요.
맞아요. 김기덕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했는데 친해져야 한다며 술도 잘 못하는 사람들끼리 여기저기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비록 관객 2천 명으로 흥행에는 참담하게 실패했지만 한강다리 밑에서 자유롭게 연기하는 동안 슬럼프는 극복이 됐어요. 몇 번을 물어도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은 <악어>예요.

짐작이 드는데, 연기에 영향을 줄 만한 특이한 경험을 한 적이 있나요?
제가 참 감성적인 사람인데, 어릴 적 대학로 판자촌에 살았던 시절이 저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6살 때 동네에 알록달록한 유치원이 있었는데 거길 너무 들어가보고 싶어서 담장을 넘었다가 수위 아저씨에게 두들겨 맞은 적이 있었죠. 형들이랑 쥐불놀이하다 산불을 내고, 껌 한 통 사면서 사탕을 슬쩍 하는 짓도 했고요. 실컷 뛰어놀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골목골목마다 맛있는 김치찌개 냄새가 났어요. 그 가난하고 아름다웠던 동네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살았어요. 그 후 아버지 사업이 잘되면서 이사를 갔지만 늘 잊지 못했죠. 지금 수현재씨어터 들어선 자리가 바로 판자촌에 살던 시절, 형과 매일 뛰어놀던 서울대 문리대학 운동장 자리예요.

조재현

 

드라마 같은 얘기네요. 어쩌면 삶이 허구를 뛰어넘을 정도로 아름다운지도 모르겠어요. 요즘 딸 혜정 양과 출연하고 있는<아빠를 부탁해>에도 그런 감동이 있어요. 어색했던 부녀 사이가 점점 가까워지니 뭉클하더라고요.
사실 예능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계속 고사했는데 우리 딸이 자긴 아빠랑 쌓은 추억이 별로 없으니 한 번 해보고 싶다는 거예요. 딱히 내키진 않았지만 애 뜻이 그렇다니 노력해봤죠. 제가 굉장히 무뚝뚝한 아빠처럼 비쳐지는데 사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저를 기준으로 좀 덜하거나 더한 수준이 아닐까 싶어요. 딸이 사춘기를 지나면서 급격히 거리감이 생겼는데 그렇게 성인이 되고 시집을 간다고 생각하니 새삼 안타깝더라고요. 이번에 딸이랑 둘이서 이것저것 하면서 정말 어색한 순간이 많았지만 그 과정에서 ‘애가 이런 걸 원했구나’ 하는 것들을 많이 깨달았어요. 의도적으로라도 가까워지려는 노력은 필요한 것 같아요.

혜정 양이 극단 청소는 물론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사실이 의외이긴 했어요. 유복한 환경에서 곱게만 자랐을 줄 알았거든요.
젊은 사람이 무의미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만큼 한심한 게 또 없더라고요. 혜정이가 자꾸 배우 오디션에 떨어지길래 그냥 대책 없이 쉬지 말고 뭐든 일을 하라고 시켰어요. 심지어 몇 월 며칠부터 어느 분식점을 찾아가 일을 하라고 정해준 적도 있었죠. 결국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는데 녀석이 ‘일을 하니 하루가 너무 일찍 간다’는 말을 하길래 내심 기특해했어요. 사실 방송이 나간 뒤 혜정이가 두어 군데 오디션에 합격을 했는데 그건 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본인의 진짜 실력이라기보다 인기에 묻어가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아들 수훈 군이 쇼트트랙 선수로 활동하고 있어요.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다는데 어떤 점이 비슷해요?
이건 내가 우리 아버지랑 닮은 점이기도 한데 실천력이 좋아요. 다만 우리 아들은 너무 사람이 발라. 그래서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 비뚤어진 사람이 너무 많은 게 문제예요. 약속을 어길 수 있는데 그런 상황을 되게 못 견뎌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지적을 많이 했어요.

그럼에도 아들이 대견해 보일 때는요?
겸손하고 성실한 모습이 보일 때요. 언젠가 경기에서 중도 탈락을 한 적이 있는데 다른 선수들 한가운데서 경기가 끝날 때까지 그냥 서 있더라고요. 헉헉거리며 땀 흘리고 선 모습을 보니까 아버지로서 굉장히 마음이 아팠어요. 어느 날인가는 자기가 만일 운동을 하지 않았으면 굉장히 자만심 강한 사람이 될 뻔했다는 얘기를 했는데 여러 번 부딪히고 깨지면서 ‘내 뜻대로 안 되는 일도 있구나’를 깨달았대요. 자식이 그렇게 어른스러워지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부모로서 참 뿌듯한 일인 것 같아요.

잠시 뒤면 상을 탈 텐데 수상 소감은 뭐라고 할 거예요?(그는 인터뷰 당일 한국PD대상 탤런트 부문 출연자상을 수상했다)
또 잘난 척할 것 같은데(웃음). 내가 원래 ‘잘난 척 그만해라. 겸손할 줄 알아라’ 소리 잘 들어요. 그게 내 스타일이라 말 때문에 손해도 많이 보죠. 그런데 가끔 겸손한 척하면서 뒤로는 오만한 사람들을 보면 정말 화가 나요. 그렇게까지 해서 도대체 뭘 얻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요. 저렇게 살면 행복할까? 뭐 하여튼 나랑은 안 맞아요. (그는 “심사위원분들께서 정말 냉정하고 정확하신 것 같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오랫동안 배우를 하는 것”이라는 수상 소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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