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란 그저 나눔의 도구가 되는 것일 뿐

기사 요약글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주도하며 40여 년 동안 자폐성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살아온 김용직 변호사. 이 특별한 행보의 이유를 묻자 그는 그저 신의 도구로 살기를 기도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김용직 변호사가 걸어온 나눔의 길을 뒤따라가보았다.

기사 내용

 

 

 

한국자폐인사랑협회를 설립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고, 지금까지 17년째 협회를 이끌고 계십니다.

 

 

발달장애인, 특히 자폐성 장애는 스스로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기 어려워요. 그리고 같은 자폐라고 하더라도 그 양상과 정도가 다양하고 의사소통의 장애 등으로 사회 활동에 제약이 많죠.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을 합니다.

 

저 역시 아들을 만나면서 자폐라는 발달장애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들의 자립을 도울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었어요. 그러다 2005년에 영화 <말아톤>이 개봉하며 사회적 관심을 끌게 되면서 관련 전문가들이 함께 모일 자리가 마련되었고, 그 모임을 계기로 아이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대표할 수 있는 협회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관심이 고조된 시기라 할지라도 하나부터 열까지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마 지금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아요. 1년 가까이 의사인 아내와 함께 미국의 관련 콘퍼런스를 찾아 다니며, 설립부터 운영까지 해외 사례를 공부했어요. 당시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이고 조그마한 나라에도 협회가 있더라고요.

 

보다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저희도 부모 30%, 전문가 30%, 후원사 30%로 인원을 구성하기로 하고 매일 저녁 일을 마친 후 의사, 교육자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을 한 분 한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후원사도 물색했어요.

 

2006년 1월 창립총회 후 SK텔레콤을 비롯해 광동제약, 전세버스운송조합, EXR 등의 후원과 협찬을 받아 천안에서 사랑캠프를 열었지요. 협회 인가를 받기도 전에 전국에서 1000여 명의 자폐성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그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2박3일간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렀습니다.

 

그 모임을 위해서 사전에 300여 명의 자원봉사자를 모으고, 교육하고, 의료진과 강사 등을 초빙하는 등 사전 준비도 만만치 않았지요. 그 정도 규모로 열린 장애인 가족행사는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거예요. 보건복지부에서도 그 열의와 진행 내용을 보고 그 해 12월에 바로 협회 인가를 승인해 주었습니다.

 

 

협회 창립에 이어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이끌어내는 데도 큰 역할을 하셨는데, 법 제정까지 장장 10여 년이 걸렸습니다.

 

 

법을 만드는 건 정말 쉽지않은 일이에요.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사회적 공감대 형성만으로도 한계가 있죠. 정말 10여 년간 안 해본 게 없는 것 같아요. 협회를 만들 무렵부터 매달 정기적으로 법 제정을 위한 연구와 토론을 해왔어요. 결국 자폐성 장애인과 지적장애인까지 수혜자 숫자를 키워 발달장애인 법안을 마련했죠.

 

정말 수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법 개정이 폐기 처분 될 위기에 놓인 순간에는 조문을 바꾸고 국회의원들을 만나 설득해야 했고, 정부 각 부처에 예산과 법적 근거를 제시하기도 했죠. 입법 운동을 위한 시위와 삭발 투쟁도 불사하며 힘을 보탰습니다.

 

하지만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되어 있었죠. 그러다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던 ‘염전 노예 사건’이 또 터지면서 발달장애인법 제정이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칼럼을 썼어요. 이후 염수정 추기경 등 종교 및 사회 지도층 인사들과 장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여러 의원이 법안 통과 의지를 표명하며 힘을 보탰죠.

 

그리고 드디어 2014년 5월 20일,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습니다.

 

 

이 법률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요?

 

 

원칙적으로 ‘지체가 아닌 지적으로 장애가 있어 일반적인 의사소통이 어렵거나 사회생활이 제약이 있는 사람들’인 지적 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에 대한 개념부터 정리했습니다.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발달장애인들은 스스로 사회생활을 하기가 매우 어려운 특성이 있기 때문에 기존의 장애인복지법 외에 발달장애인 지원에 관한 법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특히 자폐성 장애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고 부르듯 그 양상의 정도가 매우 다양해서 개별적인 사례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발달장애인지원센터를 주요 기관으로 상정하였고, 다양한 특성에 적합한 지원을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최대한의 자기결정권 보장을 전제로 주거와 고용, 의료 등의 지원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장애의 특성상 전 생애에 걸쳐 부양하는 사람들의 각별한 지원이 필요한 장애라는 점에서 가족지원까지 규정하고 있습니다. 예산의 한계상 아직 적절하게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도 언급되고 있습니다만, 적어도 모든 부양 책임을 현재와 같이 부모 등 가족에게만 부담시키는 상황은 지양되어야 할 것입니다.

 

 

법조인으로서도 무료 법률 상담과 국선 변호 등으로 꾸준히 공익 활동을 해왔습니다. 기억에 남는 사건을 꼽는다면요?

 

 

우리나라 사법 역사상 처음으로 법정 중계방송을 한 사건이 있었어요. 베트남 국적의 여성이 한국인 결혼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남편의 승낙 없이 13개월 된 자녀를 데리고 베트남으로 가버린 ‘이주 여성 아동 약취유인 사건’이죠.

 

제가 피고인 베트남 국적의 여성을 변호했는데, 미성년자 약취죄는 기본적으로 미성년자 본인의 이익이 침해되었을 때 성립하는 것인데, 아이가 어머니의 보호를 받고 있으므로 약취 행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죠. 당시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을 맡고 있어 대법원에서 저에게 의뢰했는데, 다행히 모정을 높이 샀는지 무죄를 받았어요.

 

 

개인의 업적이 아닌 사회에 보탬이 되는 나눔의 삶에 앞장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어머님, 제 아내와 아들, 그리고 꽃동네 설립자이신 오웅진 신부님 등 제 인생의 여러 만남이 저를 지금의 길로 이끈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늘 봉사와 나눔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시는 어머님을 곁에서 보고 자랐어요. 그러니 저에겐 아주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죠. 

 

그러다 공군법무관 시절 아들이 태어났고, 제가 서울동부지법 판사로 임관하면서 아들이 자폐성 장애를 가졌다는 것을 처음 알았는데 저 역시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가장 먼저 기적을 바랐습니다.

 

그래서 꽃동네에 찾아가 간절히 기도를 드리기까지 했는데,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어느 날 오웅진 신부님이 제가 가진 역량을 아이를 통해서 사회복지 쪽으로 발휘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힘쓰다 보면 하나 둘 기적이 만들어지지 않겠냐고요. 그날 이후부터 제 기도는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 ‘나를 도구로 써주소서’가 되었습니다. 결국 그 기도가 씨앗이 되어 지금에 이르게 된 셈입니다.

 

 

최근 ‘KIST 미래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아 과학자들의 사회 공헌에도 함께 발걸음을 보태신다고요?

 

 

2012년부터 한국과학기술원(KIST) 직원들이 연봉의 1%를 기부하는 캠페인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왔어요. 그렇게 모인 15억 원가량의 기금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 KIST 미래재단입니다.

 

평생 법조인으로 살았으니 과학에는 문외한이지만, 분야를 막론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고자 하는 진심이 통했어요. 한국자폐인사랑협회를 비롯해 여러 공익 단체와 장학 재단 설립과 운영에 관여해 온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류 공동의 난제인 치매와 자폐 등 어려운 분야에 희망을 주는 도전적인 연구에 인적·물적 기반을 제공하는 데 힘을 보태려고 합니다.

 

 

그동안 많은 역할을 해오셨는데, 아직도 더 펼치고 싶은 나눔의 꿈이 있을까요?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부모들의 마지막 꿈이자 저희 협회의 목표 중의 하나는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장애인 자녀가 큰 어려움 없이 존중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현재의 성년후견제도는 의사지원제도라기 보다는 의사대체로 될 소지가 많아 그 대안으로 ‘장애인 특별수요신탁제도’를 제시했습니다. 쉽게 말해 부모가 장애인 자녀를 위해 특정 금액을 신탁에 넣고 세세한 사용 목적까지 지정해 놓는 것이죠. 증여세 등 세법적 이슈와 신탁재산의 장애연금 산정 시의 합산 문제 등 보완해야 할 사항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관련 전문가들과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회의감이 몰려올 때도 있었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때마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건네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던 일이 결국 이루어졌어요. 이렇게 할 수 있는 일이 계속 이어지니 이 끈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자폐인사랑협회

- 전화번호 02-445-5444

- 홈페이지 www.autism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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