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경험과 지혜를 길에서 나누다

기사 요약글

거리는 언제나 예술가들의 무대이자 철학자들의 연단이었으며, 모두에게 평등하게 열려 있는 객석이었다. 그래서 길거리 강연 단체 ‘지혜발전소’는 오늘도 거리로 나와 무대를 만든다. 지나는 길에 우연히,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서, 어쩌다 듣게 된 그들의 강연에 어떤 이는 왈칵 눈물을 쏟고, 어떤 이는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한다.

기사 내용

 

 

 

‘지혜발전소’라는 단체의 이름이 인상적입니다.

 

 

은퇴하고 2016년에 시니어브리지아카데미를 다녔습니다. 여기서 만난 수료생들이 의기투합해 커뮤니티를 만들자고 한 것이 지혜발전소의 시작이에요. 그해 11월에 시니어 사회공헌 활동 커뮤니티를 육성하는 사회연대은행과 연결되어 커뮤니티가 본격적으로 구체화되었죠. 우리가 모여서 사회에 어떤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떠오른 것이 ‘지혜를 나누자’였고요.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쌓은 경험과 삶의 지혜를 사장시키지 말고 젊은 세대, 지역사회와 공유하며 세대 간 원활한 소통에 기여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저희의 방향성이 선명하게 보이는 ‘지혜발전소’로 지었고, 지혜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택한 것이 강연입니다.

 

사실 대학교수, 박사 등 여러 명사들의 훌륭한 강연이 너무나 많지요. 그런 분들이 오랫동안 공부하고 연구해서 쌓은 지식을 전한다면, 저희는 살아온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를 전하는 강연입니다. 그래서 주부도, 떡집 아저씨도, 국밥집 할머니도 강사가 될 수 있고, 얼마 전 다녀온 환갑 기념 여행이나 시장에서 만난 손님 이야기도 강연 주제가 될 수 있지요. 실제로 많은 분이 저희의 길거리 강연에서 자신의 지혜를 나눴습니다. 다만 정치, 종교, 상업적인 주제는 배제합니다.

 

 

강연 장소를 길거리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때로는 비싸게 티켓을 구해서 본 음악회보다 길거리 버스킹에서 들은 노래가 더 감동적일 때가 있잖아요. 저희 강연도 지혜와 연륜이 있다면 누구나 강사가 될 수 있고, 어떤 경험도 강연 주제가 될 수 있는 만큼 객석의 문턱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열린 공간에서 누구나 청중이 될 수 있게 말이죠.

 

그런 생각으로 2017년 3월을 첫 번째 강연 날짜로 정하고 장소 답사를 다녔어요. 세종문화회관 옆 공원은 근처 직장인들의 왕래가 빈번해 청중은 많을 것 같았지만 비가 오면 강연이 불가능했고, 서울 시민청 열린 광장은 무대와 시설이 완비되어 있어 진행은 편할 수 있지만 오히려 너무 잘 갖춰져 있어 길거리 강연이라는 본질과 맞지 않아 보였어요.

 

그래서 선택한 곳이 마로니에공원입니다. 20~30대 젊은이들은 물론 대학병원을 찾는 시니어들도 만날 수 있고,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강연을 할 수 있는 아늑하고 작은 무대도 있었거든요. 그렇게 2017년 3월 23일에 첫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딱 100회를 해보는 것으로 1차 목표를 잡았지요.

 

 

그 목표는 언제 달성했나요?

 

 

2019년 12월 11일에 100회를 했어요. 3년이 채 안 걸렸지요. 그동안 지혜발전소가 거리에서 사람들과 나눈 삶의 지혜와 인생 이야기를 모아 <백번의 도전, 천가지 지혜>라는 책을 출판하고, 100회 강연은 북 콘서트 형식으로 꾸몄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나이 든 사람들의 강연을 누가 들으러 오겠냐고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강연을 연다는 목표 그 자체가 지혜발전소의 상징이자 원동력이 된 셈입니다.

 

 

매주 강연을 하려면 준비 과정도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강연이 직업인 사람들도 아니고, 청중이 정해진 것도 아니라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희 회원들은 강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얻는 것이 훨씬 더 많다고 얘기합니다.

 

강연을 위해 그동안 살아온 날을 돌아보고, 글로 써보고,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면서 인생을 정리해 보는 기회가 되거든요. 비바람이 몰아쳐청중이 거의 없는 날에도 실망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강연을 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비로소 하게 되는 시간이기 때문이지요.

 

 

 

 

강연만으로 무대를 채우는 것은 아니라고요.

 

 

보통 3명이 각각 15분 내외로 강연을 하는데, 얘기만 하면 지루하잖아요. 그래서 기획한 것이 음악 공연이에요. 50+세대로 구성된 음악 공연팀이 많은데 그분들과 협력해 하나의 무대를 완성해 가는 과정도 저희의 큰 보람이자 즐거움입니다.

 

처음에는 노래와 악기 연주가 대부분이었지만 강연 회차가 늘어나면서 시 낭송, 차차차, 태극권까지 다양한 퍼포먼스를 곁들이게 되었어요. 덕분에 저희의 네트워크와 경험도 풍성해졌지요.

 

 

그렇게 꾸준히 이어오던 강연도 코로나19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겠습니다.

 

 

2019년 12월에 100회 강연 목표를 달성하고 가속도가 붙는 시점이었는데 2020년 사회적 거리두기와 집합 금지 세상이 왔고, 마로니에공원 무대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죠. 그 누구도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희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에 맞추어 비대면 온라인으로 강연을 이어가면서 잠시 숨 고르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렇게 끈을 놓지 않고 이어온 덕분에 마침내 거리 두기가 해제된 올해 4월 27일에 120회 강연을 했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기분일 것 같습니다. 새로운 목표가 있나요?

 

 

처음 우리의 목표가 딱 100회 강연을 하는 것이었듯 지금은 200회가 목표예요.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예전에 혼자 오셔서 조용히 강연을 들으시던 한 여성분이 있었어요. 강연이 끝나고 잘 들었다며 직접 와서 인사를 하시기에 강사 분이 답례로 그 자리에서 유치환 시인의 ‘그리움’이라는 시를 낭독해 드렸는데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시더라고요. 알고 보니 남편이 이곳 마로니에공원 자리에 있었던 서울대학교 문리대학을 다녔는데, 몇 달 전 하늘나라로 먼저 가셔서 마음 둘 곳이 없어 마로니에공원에 종종 오셨던 거지요. 그런데 우연히 저희 강연을 듣고 위로를 받았다고 하시더라고요.

 

또 어떤 분은 근처 서울대병원에 가볍게 검진을 받으러 왔다가 예정에 없던 정밀 검사까지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의사가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 어디서 시간을 보내고 오라고 해서 심란한 마음으로 마로니에공원을 서성이다가 강연을 듣게 되었는데, 긴장되었던 마음에 위안을 받았다고 인사를 하시더군요.

 

지혜발전소가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고, 이어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분들이 있기 때문일거예요. 그래서 앞으로도 거창하진 않지만, 길 위에서 사람들에게 지혜가 되고 위안을 주는 삶의 이야기를 오래오래 전하고 싶어요.

 

 

지혜발전소

- 홈페이지 : roadcollege.modoo.at

- 네이버 밴드 : blog.us/band/71492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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