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살아지게 된다, 어디서든

기사 요약글

대중적으로 알려진 여성학자이자 방송 진행자,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오한숙희. 그녀는 50대에 악화된 건강과 삶의 무게로 방황하다가 과감하게 삶의 공간을 옮긴 이후 비로소 한 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치열하고 에너지 가득한 도시가 제법 잘 어울렸던 중년의 여성학자가 도시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지천명을 깨닫게 되기까지 어떤 사연이 있을까?

기사 내용

 

 

 

 

똑 부러지는 말투와 유머러스한 화법으로 유명하셨습니다.

 

 

라디오와 TV, 베스트셀러 등으로 유명해진 게 불과 30대 중반이었지요. 제가 열일곱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살아 계시는 동안에 일찍이 중요한 것들은 다 가르쳐주셨어요.

 

어려서 꼼꼼하고 물건 챙기고 내 것에 집착하는 편이었는데, 중학교 3학년 때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제가 모아놓은 물건을 아버지가 다 버리셨더군요. “이런 쓸데없는 것들에 집착하지 말아라” “여자는 살림하는 습성을 버려야 한다” “죽으면 다 소용없는 것인데 왜 그것들을 옆에 끼고 집에 처박혀 있니” “네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나비처럼 세상을 날아다녀라”라고 하셨지요.

 

일찍 유명해진 게 제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노력한 것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저만큼, 아니 저보다 더 말 잘하는 사람은 많아요. 그런데 운명적으로 주어진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명성같은 것을 한 번도 제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제 역할이었을 뿐이지요.

 

 

그렇게 활발한 활동을 통해 여성학이라는 학문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친근하게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는데, 왜 갑자기 제주로 떠나셨나요?

 

가장 큰 이유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작은딸아이가 고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서 삶의 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는 거지요. 저도 너무 바빴던 삶과 도시 생활에 지쳤고요. 마침 제주에 올레길이 생겼고, 그 길을 만든 서명숙 이사장이 절친한 선배라서 기댈 곳이 되어주었기에 가족들과 자연 속에서 힐링하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지요.

 

죽을 때까지 살 거라고 믿고 직접 설계해서 지은 집을 놔두고 쉰 여섯의 나이에 방랑길을 떠난 거죠.

 

 

누구나 한 번쯤 새로운 곳에서 살아보는 것을 꿈꾸지만 사실 쉬운 일은 아닌데요. 이러한 결정을 한 데 에는 50대라는 당시의 나이도 작용을 했나요?

 

 

친구들도 어쩌면 그렇게나 쉽게 삶의 거점을 옮길 수 있었냐고 물어요. 하지만 전 오히려 나이가 들어서 쉽게 옮길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요.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었는데 뭘 못 해 보겠어’ 하 는 배짱이 있었던 거죠. 나이가 주는 뱃심이랄까요? 그런데 실제로 물리적 공간이 바뀌니 삶의 관점도 백팔십도 바뀌더군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사물도, 사람도, 제 인생도 돌아보게 됐어요.

 

제가 아직 서울에 살았다면 여전히 지하철역에서 뛰면서 3분 후에 또 올 지하철을 1분이라도 먼저 타려고, 앞사람을 제치고 있었을 겁니다. 저도 남에게는 짐이 되는 존재일 텐데 다른 사람을 짐처럼 여기면서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야!’라고 불평했겠지요.

 

 

그래도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에 대한 걱정이 없지 않았을 텐데요.

 

 

저는 프리랜서예요. 전국을 다니며 방송도 하고 강연도 했지요. 낯선 장소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은 없어요. 전형적인 A형이지만 후천적으로 O형이 됐다고 할까요. 새로운 장소나 공간에 갈 때의 즐거움과 장점을 일찍부터 알았지요.

 

사람들은 마음이 움직여도 몸이 안 따르는 경우가 많은데 일종의 관성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번만 몸이 가보면 움직이는 게 그렇게 힘이 들고 엄청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되지요.

 

 

연세(年貰)로 집을 얻은 것으로 압니다. 집을 소유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사람들은 계속 제주에 살 거면 집을 사는 게 좋지 않느냐, 집값도 오르는데 불안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제가 제주에 사는 이유는 아름다운 풍경을 누리기 위해서예요. 제 소신 중 하나가 ‘누리되 소유하지 않는다’입니다. 집을 사는 순간 그 집에서만 살아야 될 것 같잖아요. 하지만 전 집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게 여기저기에서 살아볼 수 있는 것이지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Nowhere(아무 데도 없다)는곧, Now here(지금 여기)라고.

 

 

이사하는 게 번거롭거나 염려되지는 않나요?

 

 

사람들이 다음엔 어떻게 할 거냐고 걱정하면, 전 오히려 1년 반 후에 어떤 집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설레고 기대된다고 말해요. ‘다음에는 이런 집이었으면 좋겠어’라고 상상하면서 남은 시간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기대와 희망을 품고 지내지요.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는게 아닐까요? 인생이란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는 것과 같아요. 계단을 하나 온전히 딛고 올라서면 그 높이만큼 보이는 게 달라지지요. 계단마다 충실히 올라서기만 하면 그다음 보이는 모습은 이미 준비된 것이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기에 미리 계획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2년 전부터는 언니가 제주에 집을 마련해서 현재까지 언니 집에 들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제주에서 보내는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아이가 아침 8시 40분에 주간활동센터에 가서 4시 40분에 와요. 정확히 8시간이 주어지지요. 그동안 집안일을 하거나 날씨가 좋을 때는 자연으로 나갑니다. 한라산이나 올레길을 걸어요.

 

약속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에요. 육지에 살 때도 저녁에 사람을 만나거나 모임을 갖지 않았어요. 굉장히 비사회적으로 보일 만큼. 의외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사람을 정말 좋아하고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저녁 시간에는 집에서 해야할 일이 적지 않거든요.

 

우선 저녁밥을 해서 먹고 딸아이와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같이 목욕하고 일기 쓰는 것 도와주고 하다 보면 어느새 10시가 돼요. 책도 읽고 글도 쓰고 TV도 보고, 그림일기 형태로 하루를 기록하기도 하고요. 그럼 금방 12시가 넘어요.

 

 

요즘은 무슨 생각을 하나요?

 

 

이곳에서는 나를 위한 시간을 많이 가지고 나를 돌보는 노력을 좀 더 많이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사는 게 참 좋다>(나무를 심는 사람들)라는 책을 내면서도 ‘힐링 방랑기’라는 부제를 달았어요. 이제 어느 정도 힐링이 되고 나니 ‘아 내가 이걸 해야 하는구나’ 하는 어떤 깨달음이 왔거든요.

 

50세를 일컫는 지천명이란 말도 생각해 보면 ‘하늘에서 이게 네가 해야 할 일이다’라고 명령을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뭔가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생겨난다는 뜻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그 일이란 것이 작은 의미의 ‘나’가 아니라 더 큰 ‘나’, 즉 ‘우리’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사람들에게, 특히 자기 인생이 자기 혼자 어쩔 수 없는 어떤 덫에 걸렸다고 느껴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선물할 수 있을까, 내가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그런 생각으로 2018년에 ‘사단법인 누구나’라는 단체를 창립했어요. ‘누구나 예술로 소통한다’라는 주제로 사회문화적 약자인 발달장애인, 시니어, 결혼 이주 여성들에게 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50대가 넘으면 대부분 은퇴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을 놓으면서 삶의 의미를 잃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직업과 인생은 엄연히 다른 것인데 많은 경우 직업과 인생을 동일시하게 되어 불안해 하는 거 같아요. 돈을 못 벌게 되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나 하고 염려하는 것은 너무 자본주의에 매몰된 생각 같고요.

 

직업은 백번 천번 바뀔 수 있고 직장을 그만둬도, 돈 버는 일을 안 해도 인생은 계속되거든요. 저도 프리랜서로 비교적 보수가 높은 노동자이긴 하지만 사실 일용 노동자이고, 여름과 겨울에는 일이 없는 계절 고용자 또는 계절 실업자예요. 퇴직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정년이 보장된 것도 아니고 퇴직금도 없어요.

 

저는 50이 넘으면 자기가 할 일은 자기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주로 이주하면서 기존에 하던 일을 전혀 못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뭘 해야 먹고살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시장 안에 자리 하나 얻어서 몇 가지 여성 필수품 같은 걸 팔면서 여성들의 인생 상담을 해주고 상담료를 받을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저에게 일은 생계비를 버는 동시에 보람이나 존재의미를 확인하는 기회예요. 사람들과 연대할 기회이기도 하고요. 일을 만들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안해하지 않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나요?

 

 

‘산 입에 거미줄 치랴’가 인생 모토예요(웃음). 절대 굶지 않아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역시 모토인데, 늘 실감합니다. 지금도 이곳의 1차 산업은 일손이 달려요. 낮에 일하고 저녁에 바닷가에 가서 맥주 한잔 마시고 살면 족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TV 드라마에 나오는 삶 정도는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저는 가난한 집 딸로 자랐지만 산 입에 거미줄 안 쳤고, 솟아날 구멍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아요. 그래서 크게 두렵지 않아요.

 

 

50이 됐는데도 여전히 자신이 지혜롭지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혜롭다는 의미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이 나이가 되면 실수도 안 하고 후회도 없이 살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 거라면 그것도 일종의 완벽주의 같아요. 그런 게 아니라면 점점 더 지혜로워질 거예요. 이미 전보다 지혜로워졌다고 봐요.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마흔이 넘으면 미모가 평준화되고, 쉰이 넘으면 기억력 떨어져서 학력이 평준화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인생이 다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면 이미 지혜로운 거죠.

 

나이 50을 지천명이라고 하는 것은 통계학적으로 50이 되면 대부분 그 정도의 지혜로움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봐요.

 

 

요즘 불행하다고 느낀 적은 없나요?

 

 

제주에 온 뒤로는 없어요. 물론 의기소침해지는 때는 있지요. 몸이 아플 때나 이달에 카드를 많이 썼는데 대금 결제는 할 수 있으려나 걱정될 때 불행감 같은 게 살짝 들긴 하죠. 그럴 때면 돈을 좀 꾸지 뭐, 이렇게 생각해요. 그 나이에 뭐 했냐고 하면, 그런 소리 듣죠 뭐. 사실이잖아요. 자신을 멋지게 보이기 위해 포장하려고 하지 않아야 불행하다는 생각을 안 하게 되는것 같아요.

 

가끔 ‘방송 나오는 분이 이렇게 민낯에 허름한 옷 입고 다녀도 되냐’는 얘기를 듣는데, 방송에 나오는 사람도 평소 ‘방송용’으로 꾸미고 다니지 않거든요. 게다가 저는 방송에 나오는 사람이 아니라 ‘나갔던’ 사람이고요. ‘요즘 왜 이렇게 방송에 안 나오세요’라고 하시는데, 그건 26년 전 제 나이 서른다섯 살 때나 들을 이야기예요. 그런 말들을 염두에 두지 않고 늘 현재의 저를 의식하며 사니까 불행하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있어요.

 

 

어머니께서 제주로 이주해서 1년 남짓 살다가 돌아가셨다고요. 이를 계기로 삶에 어떤 변화가 왔나요?

 

 

새벽 3시에 밤참을 드시고 저와 함께 침대에 누워서 영화 <쿵푸팬더3>를 보다가 조용히 돌아가셨어요. 어머니가 가시고 일주일 정도는 섭섭했지만 사십구재를 지내고 난 뒤에는 우리 어머니는 행복하게 삶을 마무리하셨고, 그런 분이 내 어머니였다는 것에 감사했어요. ‘다음이 내 차례구나’ ‘나도 잘 죽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해요.

 

전 아홉 살 때부터 죽음에 관심이 많았어요.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삶에 대한 집착으로 옮겨갔는데 명상을 시작하면서, 죽음이 삶의 연장이라는 개념을 갖게 됐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죽음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되어 기쁩니다.

 

 

삶의 속도와 방향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중년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제주도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이 있어요. “살면 살아진다”거든요. “너무 큰 걱정과 고민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말아라, 다 살아지게 된다”고 하세요.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다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제가 ‘목욕탕 원리’라고 부르는 게 있어요. 어차피 자기 등은 스스로 못 밀잖아요. 그러니 혼자 끙끙대지 말고 주변에서 멘토를 찾으세요. 운이 좋게도 저에겐 늘 멘토가 많았는데, 제주에 오니 주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저에게 멘토가 되어주시네요.

 

‘다 살아진다’는 이 한 마디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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