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후반기를 ‘나답게’ 살아야 하는 이유

기사 요약글

제2의 인생은 나를 위해서, 주변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우주를 위해서 살아보면 어떨까 합니다. 인간은 번식을 멈추고 가장 오래 사는 종이 되었으므로, 인생을 아예 ‘두 번 기획해서 살자’는 것이죠.

기사 내용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쓰고 있는 ‘인생 2라운드’, ‘인생 후반기’라는 말을 한국 사회에 처음 던진 사람이 있다. 바로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다. 2005년 저서 <당신의인생을 이모작하라>를 통해 고령화 시대를 대비한 인생 후반기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그 책이 나온 지 16년이 지나 고령화사회를 넘어 고령사회가 된 지금, 최재천 교수를 다시 만났다.

라이나전성기재단 전성기 활동가로 참여하고 있는 고려대 인문학부 신미경 교수가 인생 2라운드를 준비 중인 ‘2준생(2라운드 준비생)’을 대표해 ‘어떻게 해야 나답게 살 수 있을까’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자연 속 하나의 생물종(生物種)으로서 인간의 후반기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생물 중 인간처럼 생의 후반기를 사는 종은 없습니다. 대부분의 생물은 번식을 위해 존재하고, 번식이 끝나면 생을 마감하거든요. 인간도 얼마 전까지는 그러했습니다. 나이 60이 되면 성대하게 환갑잔치를 베풀고 축하했잖아요. 그만큼 오래 사는 분이 많지 않았으니까요. 특히 여성의 경우 묘하게 진화해왔습니다. 여성은 태어날 때 양쪽 난소에 평생 쓸 난자를 다 가지고 태어납니다. 사춘기 때 절반을 걸러내고, 그중 가장 좋은 난자를 성숙시켜 임신을 하지요. 임신이 되지 않으면 매달 한 번씩 월경으로 쏟아내는데, 50대 초·중반이 되면 가지고 태어난 난모세포를 다 써 임신이 불가능해집니다. 번식이 다 끝난 60대가 되면 생을 마감하는 것이죠.

 

 

인간도 원래는 번식을 위해 살다 가는 생물학적 종이었군요.

 

고려 시대 때 인간의 평균수명은 마흔 살이 채 안 됐습니다. 예순 살까지 살면 꽤 오래 살았다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90세, 100세를 넘겨 살게 된 거예요. 우리가 생각을 달리해야하는 시점이 온 겁니다. 예전처럼 ‘육십 평생’이라는 개념대로 살다 보면 60대 이후 남은 30년, 40년, 혹은 50년을 시간 때우듯이 살다 가게 되지요. 그러니 아예 '인생을 두 번 살아보자’고 제가 주장했던 겁니다. 첫 번째 삶은 자식을 키우느라 열심히 살고, 자식이 둥지를 떠나고 난 후 제2의 인생은 나를 위해서, 주변을 위해 서, 국가를 위해서, 우주를 위해서 그렇게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겁니다. 인간은 번식을 멈추고도 가장 오래 사는 종이 되었으므로, 인생을 아예 ‘두 번 기획해서 살자’는 것이죠.

 

 

‘번식 이후 가장 오래 사는 종’이라니, 이 사실이 과연 축복일까요?

사실 많은 사람에게 고령화는 축복이 아닌 재앙입니다. 중환자실에서 돌아가시는 분도 있고,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힘든 분도 많습니다. 우리 사회의 경제구조가 제1의 인생에만 맞춰져 있다 보니 특히 이 문제가 심각하죠. 우리나라는 잘산다는 나라 중에서도 노인 자살률이 가장 높습니다. 평생 혼신을 다해 자식을 키웠음에도 자식에게 폐가 된다고 생각하면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체념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도 있습니다. 자식을 위해 평생을 봉사하고, 비로소 편안하게 살아야 할때 자식 눈치를 보다가 목숨을 끊는다는 건 어떤 측면으로 봐도 너무나 불행하죠. 두 번째 인생을 스스로 준비하지 않으면 누구나 이런 재앙에 맞닥뜨릴 수 있습니다. 반드시 두 번째 인생을 기획해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두 번째 인생을 기획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실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2의 인생이 밀어닥치기 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던 일을 멈추고 ‘나는 어 떻게 살 아야 하 지?’ 생 각한다면 굉 장히 어 려운 문 제가 될 수 밖에 없어요. 좀 부지런한 분들은 퇴임 몇 년 전부터 나름대로 준비하기도 하지만, 상당히 많은 분이 준비하지 못하고 어느 날 덜컥 오갈 데 없는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중년들이 제대로 준비하도록 돕는 제도가 전혀 없으니까요.

 

 

인생 전반기는 확실히 제도 교육이 책임지고 개인적으로도 배움에 집중하지만, 후반기에는 국가도 개인도 그냥 놓아버리는 것 같아요. 대안이 있을까요?

 

미래학자들의 예측에 의하면, 앞으로는 직업을 대여섯 번씩 바꿔야 할 거라고 합니다. 피터 드러커는 “지식의 반감기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배워서 써먹고 또 빨리 배워서 써먹어야 한다”라고 지적했지요. 계속 배우고 직업을 갈아타야 하는데, 20대 초반에 몇 년 배운 걸로 과연 평생을 우려먹을 수 있을까요? 계속 배워야 하는 구조를 국가가 나서서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정원 미달로 문 닫을 처지에 놓인 지방대학이 많습니다만, 저는 오히려 대학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하지요. 30~70대를 위한 다양한 형태의 대학이 많아지고,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직업을 일고여덟 번씩 바꾸면서 정년이라는 한계 없이 쭉 일할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원하는 일을 찾는 것만큼 나답게 사는 것 또한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나답게 산다는 것, 교수님에겐 어떤 의미인가요?

 

나답게 산다는 건 자신의 개성을 지키고 사는 것입니다. 생물학에서 최근 늘어난 연구 분야 중 하나가 바로 동물의 개성 연구예요. 요즘 저희는 진딧물의 개성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개나 고양이를 여러 마리 길러보아도 한 마리 한 마리가 다 기가 막히게 다른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인간의 개성은 더 말할 것도 없죠. ‘퍼스낼리티(personality)’라는 영어 단어를 보면 개성은 인간(person)이 가진 거라고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스스로 인생을 돌아보면 참 고집스럽게 살아왔습니다.

제가 하는 공부는 연구비가 거의 없어요. 제 평생 국가에서 받은 연구비가 옆방 교수가 1년간 받은 것보다 적습니다. 양자역학을 공부하던 물리학자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국가 연구비가 몰리는 나노 기술 분야로 옮기는 것도 봤지요.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다지만, 저는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 지켜야 할 가치를 고집스럽게 지키며 살아왔고, 그게 나답게 사는 게 아닌가 해요.

 

 

그 과정이 쉽지 않았을텐데, 후회스럽진 않으신가요?

 

어떻게 보면 참 어리석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죠. 여차했으면 쫄딱 망했을 수도 있는데, 고집스럽게 해오다 보니 어찌어찌 살아남아 여기까지 왔구나 싶기도 해요. 만약 내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좀 다르게 살았을까요? 아니, 전 여전히 내가 원하는 대로 이렇게 살 것 같아요. 사회가 정해놓은 보편적 가치나 모두가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에 휩쓸리지 않고, 내 배짱대로 내 뜻을 펼치며 사는 것, 그게 최재천 식으로 사는 게 아닐까합니다. 하하.

 

 

 

  

평범한 사람들이 인생 후반기에 나답게 살기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방법을 알려주세요.

 

우리 시대에는 자기 적성과 맞지 않은 다른 길로 억지로 등 떠밀린 친구가 많았어요. 저도 완전히 문과 타입이었는데 이과 우선을 주장하던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고등학교에 문과반이 줄 었고, 그 조정 과정에서 희 생양(?)이 되어 이과로 가게 된 케이스죠. 수학도 못하면서 과학자가 되느라 엄청 고생했어요. 실제로 자기 적성과는 다른 일을 하고 있던 많은 친구가 중년 때 굉장히 방황하더라고요. 당시 우리 경제가 팽창하던 시기라 직장 문제는 어렵지 않게 넘어갔지만, 하고 있는 일과 실제로 마음속에서 원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괴로웠던 거죠. 개발도상국 시절의 불행한 과거 이야기인데, 이제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봅니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개인이 그렇게 희생해야 할 이유가 없거든요.

제가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유명한 슈바이처 박사는 원래 음악을 하던 분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프리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억지로 의과대학에 진학했다고 해요. 하지만 자서전에서 고백했죠. 자신은 의사로서 자질이 없어 사실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의학에 소질 있는 사람이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에 갔더라면 훨씬 잘했을 거라고. 사회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걸 맞추다 보니, 사실은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자기 고백이었던 셈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그런 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회가 원하는 일, 가족이나 부모가 바라는 인생을 대신 살아주고 있는 분들,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남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이군요.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먼저 찾아보세요. 청년들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냥 주어진 대로 살지 말아라, 악착같이 찾아라, 온갖 것을 다 뒤져봐라,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눈만 뜨면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뒤져보고 또 뒤져봐라,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을 찾아가보고, 그런 일 하는 사람이 쓴 책을 읽어보고, 그런 일하는 사람의 강연도 들어보고···. 두들겨보고 찢어보고 열어보고 막 해보라고요. 막상 찾아보면 ‘내가 원하던 건 이게 아닌데’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가 훨씬 더 많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어느 날 내 앞에 고속도로 같은 길이 뻥 하고 열릴 때가 있습니다. 그때부터는 좌우 보지 말고 그냥 신나게 달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성공도 따라오고 사회적 지위에 올라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청년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지만, 지금의 중년에게도 충분히 대입할 수 있는 말이지요.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살라는 말씀에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드는 중년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나는 헛살았네’ 하며 후회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100세까지 살 거니까요. 앞으로 남은 인생 30~40년을 그냥 보내면 너무 억울합니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서 달려나가기에 전혀 늦지 않았습니다. 자식만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나를 위해, 내 주변과 동네와 나라와 세계를 위해 한번 멋지게 살아보시죠.

 

 

라이나전성기재단에서는 ‘2라운드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2준생’이라는 단어를 자주 씁니다. 퇴직을 준비하는 2준생이 꼭 해야 할 것은 뭐가 있을까요?

 

일단 준비를 빨리 시작해야 합니다. 또 국가에서도 이들을 돕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고요.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노는 것도 준비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 교장 선생님이 들려준 말씀인데, 자신은 은퇴하기 10년 전부터 볼링 연습을 했답니다. 은퇴 후에 민폐를 끼치지 않고 젊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시작했는데, 은퇴한 지금은 동네 젊은 주부들보다 훨씬 잘 치신대요. 그러니 어디 가서도 “멋있다”라는 말을 듣고 환영받는다고 합니다. 퇴직하고 나서 취미생활을 시작하면 늦습니다. 그제야 잘하는 것을 만들려고 하면 이미 늦어요. 은퇴 10년 전부터 준비한다면, 그 이후의 인생은 진짜 신나게 살 수 있습니다. 노년기는 실버 에이지가 아니라, 인생 황금기인 골든 에이지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식과 사회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훌훌 벗어던지고 나를 위해 살 수 있으니까요. 은퇴 10년 전부터 준비해서 제2의 인생으로 자연스럽게 연착륙하시기 바랍니다.

 

 

 

 

생태학자로서 중년에게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나요?

 

이번 코로나19로 세계 인구 400만 명이 목숨을 잃는 전대미문의 경험을 했습니다. 흑사병 때도 유럽 인구의 3분의 1 이 죽 었는데, 나 머지는 살 아남았죠. 어 떻게 가 능했을까요? 인구가 줄 고 사람 간 거리가 벌어져 더 이상 감염시킬 사람이 없으면 바이러스는 사멸합니다. 아주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아무리 무서운 바이러스라도 우리나라 5000만 인구 중에 2000만 정도 죽으면 저절로 끝납니다. 바이러스는 인류를 멸종시키지 못하지만, 기후변화는 다릅니다. 기후 앞에서 인간은 숨을 곳이 없으니까요. 코로나19로 인해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조금이라도 경각심이 생겼다면, 그 뒤에 버티고 있는 기후변화 문제를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현대를 문명의 대전환기라고 학자들이 이야기하는데, 저는 생태적 전환이 가장 시급하다고 봅니다. 이제는 정말 인류가 죽느냐, 사느냐의 상황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우리의 노력을 집중해야 합니다.

 

 

기후변화는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인데, 특히 중년에게 강조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사실 중년들은 사고방식에서 이미 생태적 전환이 되어 있는 분이 많습니다. 젊었을 때는 못 느끼다가 나이가 들면서 대부분 자연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거든요. 그래서 시간적, 경제적 여력이 있다면 중년이 중심이 되어 생태적 전환에 더욱 앞장섰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퇴임한 선배 교수님의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손주가 태어나 요즘 그놈 안고 있는 재미로 사는데, 두 살 밖에 안 된 아이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걸 보고 있으니 너무 미안하더래요. 그래서 손주에게 사과했답니다. “할아버지가 진짜 미안하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이 모양이 꼴로 만들어놔서 정말 미안하다”라고. 우리 세대가 경제 발전시킨답시고 자연환경을 너무 망가뜨렸잖아요. 그걸 복구해놓고 가야 합니다. 그냥 가버리는 건 너무 무책임한 일이에요. 자연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어떤 사람도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 동참해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교수님이 꿈꾸는 ‘내 미래의 전성기’는 어떤 모습일까요?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에서 “누구나 두 번 살라”라고 말했지만, 사실 저는 생태학자로서 꾸준히 한길을 걸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하던 일과 좀 다르게 꿈꾸고 있는 바가 있어요. 사실 제가 어렸을 때 문학 청년이었어요. 한 번도 신춘문예에 응모하진 않았지만, 찬 바람만 불면 신춘문예 열병을 앓으면서 살아왔죠. 평생 쓰고 싶던 소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좀 더 시간이 많아지면 해야지 하고 미뤄두고 있는데, 날이 갈수록 바빠지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언젠가는 사회 활동을 과감히 접고 어딘가로 숨어들었다가 2~3년 후에 파격적인 소설을 발표한다면, 그때가 제 인생 최고의 전성기가 되지 않을까요? 하하. 그런 꿈을 꾸고 삽니다.

 

 

[이런 기사 어때요?]

 

>>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자꾸 되묻는 중년에게

 

>> 숲 속의 4층 집, 시골 책방 주인으로 2라운드

 

>> 억지로 웃기만해도 치유된다? 전문가 추천, 마음건강법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