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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 오솔길 옆 책방
숲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이곳은 1층은 책과 커피를 파는 북 카페, 2층은 살림집, 3층과 4층은 누구든 하룻밤 묵고 갈 수 있는 북스테이 공간이 마련돼 있다. 1층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앞치마를 두른 중년 여성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시골 책방 주인 임후남 씨다.
그녀는 이곳에 책방을 차리기 이전부터 책과 관련한 일을 했었다. 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글로 썼고 기자를 그만둔 이후에는 1인 출판사를 운영하며 시집과 여행책을 펴냈다. 이렇게 책과 동행하며 나중에 서점을 운영하겠다는 꿈을 키워 갔다. 물론 시골이 아닌 도시에서. 서점의 수식어가 도시가 아닌 시골로 바뀐 건 잠깐의 전원생활 영향이 컸다.
"경기도 광주 신현리라는 곳에 잠깐 살았어요. 아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살고 서울로 다시 올라갈 생각이었죠. 그런데 막상 서울을 떠나고 보니 삶이 너무 만족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남편한테 솔직하게 말했어요. 당신이 퇴직하면 지금처럼 시골에 살면서 책방을 내고 싶다고요. 남편도 전원생활이 좋았는지 쉽게 동의해 주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의 퇴직을 기점으로 1층엔 서점, 2층엔 살림집을 꾸릴 수 있는 시골집을 찾아다녔어요."
집을 찾아다닌 기간만 2년. 광주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동분서주했지만,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뜻밖의 지역 용인에서 운명의 집과 마주하게 됐다.
"사실 용인은 큰 기대가 없었던 동네였어요. 시골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냥 한 번 들러 보자는 마음으로 부동산 중개업자를 따라갔죠. 그러다 실수로 길을 잘못 들은 거예요. 공교롭게도 그 길이 예뻐서 넋 놓고 감탄하다가 그 길 끝에 있는 집과 마주하게 됐는데 '이 집이다' 싶었죠. 그게 바로 이곳이에요(웃음)."
운명처럼 끌린 집이었지만, 결정이 쉬웠던 건 아니다. 당초 계획은 이층집이었지만, 이곳은 사층집이었기 때문. 그럼에도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집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의 풍광 때문이었다.
"집만 봤다면 더 오래 고민했을 거예요. 그런데 집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니 이곳의 매력이 배가돼요. 집 앞으로는 용을 닮았다는 용담 저수지가 있고, 뒤로는 듬직한 산이 있고, 집으로 이어지는 좁은 샛길은 큰 느티나무들이 즐비하고, 집 마당에는 하늘로 치솟은 소나무 숲이 가득 펼쳐져요.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저를 설레게 했죠. 선택을 안 할 수 없었어요.”
시골 책방이 어때서?
그녀의 확신과 달리 주변 지인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시내 서점도 힘든 마당에 왜 하필 시골 책방이냐’며 걱정 섞인 말들을 늘어놓았고 ‘퇴직은 현실이고, 경제적인 문제를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런 말들이 그녀의 결정을 더욱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부동산 중개업자, 리모델링 업체, 주변 지인들까지 하나같이 전부 의아해했어요. 노후를 보내는 건 이해하지만 서점은 결국 장사이기 때문에 유동인구가 많은 시내나 길가에 하는 게 맞다는 거예요. 하지만 저는 남편과의 생활이 더 중요했어요. 도시에서 심심하게 사는 것보다 시골에서 매일 바쁘게 하루를 꾹꾹 눌러 사는 게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녀의 시골 책방엔 많은 책이 구비돼 있고, 책 읽을 공간도 마련돼 있고, 고소한 커피까지 준비돼 있다. 여기에 ‘손님’만 오면 성공 궤도에 오른 셈이다. 그런데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에게 서점에 사람이 많고 적음은 하나의 부산물일 뿐, 성공을 정하는 기준이 아니었다.
“손님이 한 명도 안 오는 날도 있어요. 그렇다고 실망하지 않아요. 손님이 왜 안 오나 계속 기다리는 건 온전히 내 시간을 누리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책방을 만들 때 누군가가 찾아오는 공간으로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공간만으로 만들진 않았거든요.
나만의 공간에서 책을 읽고, 책을 만들고, 사람을 만나는 거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날에도 이 공간이 살아 있는 이유는 제가 이곳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에요. 혼자 책을 읽거나, 풀을 뽑거나, 푸성귀를 다듬거나 그러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이 저에게는 안식이 되고 위로가 돼요.”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면, 그 어디라도
물론 <생각을 담는 집>을 알리려는 노력 또한 소홀하지 않았다. 세상의 중심에서 서점을 외치기 위해 택한 첫 번째 방법은 ‘블로그’였다. 먼저 온라인 이웃을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최근 입고된 책을 소개하거나, 책을 읽으며 깨달았던 인사이트들을 공유하고, 시골 책방 주변 풍경들을 사진으로 나눴다.
소통하는 이웃들이 늘자 여러 행사도 진행했다. 작가 강연과 북토크, 음악회, 그림 전시, 글쓰기 수업 등 단순히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닌 다양한 문화 활동이 공존하는 ‘문화 플랫폼’을 탄생시켰다.
“홍보는 블로그로만 했는데, 이웃이 벌써 2천 명 정도 돼요. 아무래도 문화 행사 효과가 컸던 것 같아요. 그동안 만나고 싶던 작가를 이곳에서 만나거나, 마음껏 책을 읽으며 숙박하는 북스테이를 하고 나면, 이곳이 그 사람에게 ‘행복한 장소’로 인식되는 효과가 있거든요. 그럼 또 오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죠. 손님 중 한 분은 저에게 ‘이런 시골에 문화 공간 만들어줘서 고맙다’면서 ‘이 공간을 마음에 간직하고 싶다’고 했어요. 정말 고마운 말이죠.”
시골 책방은 그렇게 지역의 문화 명소로 인정받았고, 이 과정들을 글로 기록했다. 최근 그녀는 시골 책방을 운영하면서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들을 담은 <시골책방입니다>를 펴냈다.
"책이 출간된 이후로 책을 읽고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었어요. 사람들이 관심 가져주고 직접 찾아오는 것도 고마운데,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도록 다양한 재료들을 공급해 준 시골 책방에도 감사해요.
나이 들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줄어드는데, 저는 시골 책방을 한 덕분에 이 사람 저 사람, 다른 목소리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책을 좋아하는 이유만으로 이곳에 왔기 때문에 수평적 관계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죠. 이곳에 온 모두가 이 책의 주인공이에요.”
시골 책방, 지역 주민의 문화 명소가 되다
지금도 여전히 ‘생각을 담는 집’에는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주말마다 온종일 책만 읽으러 오는 손님, 창문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바깥 풍경을 감상하는 손님, 가족들끼리 놀러 와서 하룻밤 묵는 손님, 잠깐 책만 사러 온 손님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시골 책방에 들른다. 중요한 점은 이곳에 한 번 왔다 간 손님보다 한 번 왔다가 또 들리는 ‘단골’들이 많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온라인 서점이 제일 편하죠. 시간도 절약되고, 할인 혜택도 받고, 적립금까지 쌓이잖아요. 다른 점이 있다면 저희 책방은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줘요. 자신의 생활 반경에서 벗어나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기만의 고요한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쉼터를 갖게 되는 거예요.”
시골 책방의 매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책방 내부를 가득 메우고 있는 책들의 종류부터 위치까지 그녀의 손을 안 거친 것이 없다. 이곳이 여타 서점과 다른 이유는 그녀의 안목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제가 읽고 싶은 책들만 갖다 놔요. 그래야 추천을 할 수 있으니까요. 이 책을 갖다 놓을까, 저 책을 갖다 놓을까 고민을 하면서 고른 책들이 진열돼 있는 것이죠. 책방의 큐레이션이 잘 돼 있다는 것은 그만큼 책방 주인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시골 책방에서 책을 구입하고 읽는다는 건, 단순히 한 권의 책을 사서 읽는 게 아니라, 이곳까지 오는 발길, 함께한 사람, 이곳의 나무와 숲과 흙냄새, 하늘, 바람, 커피, 음악 그 모든 것들이 함께 하는 거예요. 이것이 시골 책방만의 매력이죠."
‘앞으로 어떤 책방이 되고 싶나요?’라는 질문에 ‘그냥 시골 책방이요’라고 대답한 임후남 씨. 그녀가 말한 ‘시골 책방’ 이 네 글자 안에는 따뜻함, 포근함, 고즈넉함, 평안함, 정겨움이 담겨 있는 듯하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시골과 서점은 공존할 수 없지만, 자신의 막연한 꿈 하나로 기존의 문법을 거스른 그녀는 당차게 자신만의 2라운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녀의 삶이 더욱 빛나는 이유다.
생각을 담는 집
주소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로 59-11
문의 070-8274-8587
영업 시간 월~일요일(오전 10시~오후 9시), 화요일 휴무
기획 우성민 사진 지다영(스튜디오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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